
[수첩] 매년 5월 말이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건강보험 요양급여비용 계약(수가협상) 줄다리기가 올해도 크고 작은 진통을 남긴 채 마무리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공급자 단체 간 2027년도 수가협상은 타결과 결렬이 교차하며 각 직역의 복잡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줬다.
먼저 고물가와 고금리, 그리고 지속적인 인건비 상승 속에서 일차의료를 책임지는 개원가는 ‘1.65%’ 역대 최저라는 결과를 받고 고심 끝에 결렬을 선언했다.
반면, 건보재정의 건전성을 수호해야 하는 건보공단과 가입자단체 역시 한정된 재정 안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협상에 임했다.
누구 하나의 일방적인 잘못이라기 보다는 공급자와 가입자 모두 각자 영역에서 국민 건강과 의료 체계 유지라는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로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재정 안에서 파이를 나눠 가져야만 하는 현행 제로섬 게임 구조는 매년 협상 당사자 모두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제도를 끌고 가려는 건보공단 노력에도 불구하고, 물가 상승률을 온전히 반영하기 힘든 구조적 한계는 의료전달체계 뿌리인 의원급의 아쉬운 결렬로 이어졌다.
타 직역이 막판 극적인 합의에 도달했다고 해서 현재의 수가 결정 구조가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이제는 매년 소수점 이하 인상률을 두고 밤샘 줄다리기를 벌이는 소모적인 방식을 넘어 보다 발전적인 대안을 함께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이번 협상 결과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병원 유형 타결이다. 병원계는 예년 1.9%보다 크게 줄어든 1.2%(요양 및 정신 1.3%)라는 수치를 받았다.
단순하게 보면 소수점이지만 줄어든 밴드까지 고려하면 작년과 비교해 최소 1000억원 이상 추가 재정을 가져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병협은 대승적 차원에서 도장을 찍었다. 이를 두고 의료계 안팎에서는 병원들이 직면한 현실적인 부담감과 전략적인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는 중증 및 응급 환자를 위한 필수의료 보상, 지역의료 살리기 기금, 그리고 대대적인 병원 구조전환 지원금 등 굵직한 재정 지원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병원계로서는 수가협상이라는 단일 사안에 매몰되기 보다 병원의 장기적인 운영과 직결된 거시적인 지원금 논의를 원활하게 이어가기 위해 한발 물러서는 타협점을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단순한 협상 실패가 아닌 의료체계 큰 틀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파열음을 최소화하려는 병원계 나름의 고육지책이자 무거운 책임감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공급자 단체가 경영상 압박을 감내하며 합의를 도출하고 있는 만큼 정부 역시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현행 건강보험법에 따르면 정부는 매년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를 국고에서 지원해야 하지만, 이 법정 지원 기준은 온전히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미지급된 건보 국고지원금이 누적되는 상황은 한정된 파이를 두고 다투는 공단과 공급자 모두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든다.
정부가 앞장서서 미납된 국고지원금을 적시에 투입해 건강보험 재정 규모를 키워준다면 건보공단은 보다 유연하게 협상에 임할 수 있고 공급자 역시 최소한의 원가를 보전받으며 진료에 매진할 수 있다.
국민 건강권 수호라는 대원칙 아래 정부도 법으로 정해진 재정 지원 약속을 이행해서 화답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 이번 수가협상과 향후 보상체계 개편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열쇠는 실질적인 ‘부대조건’ 실질적인 실행이다. 수가협상 과정에서 등장하는 부대조건은 단순히 공급자를 압박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제한된 재정 탓에 공급자가 요구하는 적정 인상률을 맞춰주지 못할 경우 이를 다른 방식의 제도적 지원이나 보상체계 개편을 통해 상쇄하고 보전해 주고자 마련된 보완 장치다.
낮은 인상률을 감내한 공급자들에게는 일종의 안전망이자 미래를 위한 약속인 셈이다.
문제는 어렵사리 합의된 부대조건들이 협상 타결 이후 구체적인 후속 조치로 이어지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환산지수와 상대가치점수를 연계해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거시적인 방향성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이를 임상현장에 안착시킬 정교한 실행 방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부대조건이 본래의 긍정적인 취지대로 작동하려면 타결 직후부터 정부와 공단, 그리고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현장 수용성을 담보할 수 있는 세부 실행 로드맵을 신속하게 구축해야 한다.
진료현장의 목소리가 꼼꼼히 반영돼 정책적 지원으로 온전히 이어질 때 부대조건은 공급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족쇄가 아닌 상생을 위한 든든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가입자, 공급자, 그리고 정부까지 수가협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모든 주체는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동일한 목적지를 향해 뛰고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의 한계로 갈등이 부각되는 현 상황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상호 어려움을 이해하는 시각을 바탕으로 정부의 국고지원금 이행 및 부대조건의 철저한 후속 조치 마련 등 합리적인 의료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을 함께 찾기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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