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분쟁 새로운 언어 '중동태' 제시 주목
최상태 중앙대병원 교수, 의사 개인 중심 책임 논의 넘은 '포용적 의료문화' 제안
2026.02.10 15:47 댓글쓰기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지, 의료진 개인 과실로 사건을 규정해 온 기존 책임 논의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연구 결과가 나와 관심을 모은다. 


의료행위를 ‘누가 무엇을 했다’는 단선적 인과관계로 설명하는 기존 방식이 의료사고 본질과 의료문화를 동시에 왜곡해 왔다는 지적이다.


중앙대병원 류마티스내과 최상태 교수[사진]와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강철 객원교수는 최근 한국의료윤리학회에 의료사고와 책임 귀속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재해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 제목은 ‘의료행위 문법, 중동태 : 중동태 정의와 포용적 의료문화로의 전환(The Grammar of Medical Practice and the Middle Voice: Toward Middle-Voice Justice and a More Inclusive Medical Culture)’ 이다.


연구팀은 “의료사고를 둘러싼 기존 논의가 능동과 피동이라는 이분법에 갇혀 복잡한 의료행위 결과를 ‘가해자-피해자’ 구도로 단순화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서술 방식은 의료행위가 지닌 복합성과 상호작용성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의료사고의 구조적·시스템적 원인에 대한 성찰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의료행위는 의료진 판단뿐 아니라 첨단 의료기기, 인공지능(AI), 의료기관 운영 시스템, 환자 기저질환과 예측 불가능한 생물학적 반응 등 다양한 요소가 맞물려 형성되는 동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기존 능동태 중심의책임 논의는 이러한 복합 구조를 단일 행위자 결과로 축소해 왔다”고 분석했다.


가령 의료분쟁에서 ‘의사가 환자를 수술했다(능동태)’는 표현은 사건과 참여자를 기술하는 중립적인 형식이지만, 의료사고라는 사건에 적용될 경우 능동태의 ‘수술했다’는 표현이 행위자의 자발성과 의도를 부각시킨다. 


이 상태에서 환자에게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면 단순한 언어적 주어였던 의사는 ‘자발적이고 의도적인 행위 주체’로 재해석되고 발생한 손해는 그 행위 산물로 간주되는 것이다. 


그 결과, 실제 의료사고 원인이 환자 상태 및 약물 특성, 의료시스템 등 복합적인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능동태 서술은 ‘의사 행위→환자 손해’라는 책임 도식을 강화시켰다. 


"의료사고를 '관여와 상호작용' 관점에서 이해하고 개인 처벌 중심 책임 논의 극복"


이에 최상태 교수는 대안으로 ‘중동태(middle voice)’ 개념을 제시했다. 능동문에서 중동문으로 전환해야 의사뿐 아니라 환경 요인들이 비선형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다.


중동문 구조 서술 방식은 여러 요인이 얽혀 사건이 형성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약 C는 효과적이고 흔히 처방되기 때문에, 의사 B는 환자 A에게 약 C를 처방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의사 B가 처방한 약 C로 인해 환자 A에게 사지마비가 발생하게 됐다’라는 문장을 예로 들 수 있다. 


최상태 교수는 “의사 처방이 환자 사지마비를 촉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더라도 중동문 구조는 결과 원인을 하나의 요인으로 단순화시키기보다는 여러 내·외부 요인이 함께 작용한 결과, 즉 사건을 더 다층적이고 현실적이며 관계적인 구조 속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중동태를 단순한 문법 개념이 아니라 의료행위의 다중 행위자성과 상호 관여성을 드러내는 분석 도구로 제안, 의료사고를 ‘관여와 상호작용’ 관점에서 이해하고 개인 처벌 중심의 책임 논의를 넘어선 새로운 의료윤리적 책임 구성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최상태 교수는 “포용적인 의료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의료전문직과 법률전문직 모두에게  ‘중동태적 사건구조를 판단하는 역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법률가는 의료사고를 단일 행위자 결과로 환원하기 전에 사건을 형성한 조건과 상호작용을 다층적으로 복원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의료인 역시 과실 입증 여부에만 반응하는 방어적 책임에서 벗어나 의료행위 본질에 부합하는 의료전문직 윤리를 회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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