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출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자궁이식"
삼성서울병원 박재범 교수, 국내 최초 35세 여성 성공…"최종 목표 임신 준비"
2023.12.04 05:49 댓글쓰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사실 걱정은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국내 최초로 자궁이식 수술에 성공한 삼성서울병원 다학제 자궁이식팀 박재범(이식외과) 교수[사진]는 팀을 꾸리던 당시를 이렇게 술회했다. 


삼성서울병원 다학제 자궁이식팀은 최근 열린 대한이식학외 국제학술대회에서 자궁이식 성공 소식을 발표하며 의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1월 MRKH(Mayer-Rokitansky-Küster-Hauser) 증후군을 가진 35세 여성에게 뇌사자 자궁을 이식해 10개월째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안정적으로 이식 상태를 유지 중이다.  


현재 환자는 월경 주기가 규칙적인 만큼 이식된 자궁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최종 목표인 임신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궁이식팀은 지난 2019년 박재범 교수가 우연히 접한 해외 뉴스에서 시작됐다.


그는 "이식외과에 몸을 담고 있지만 자궁이식까지는 생각을 못했는데 해외 사례를 보고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식팀을 꾸리기로 결심한 뒤 산부인과를 찾았다. 이식외과에 몸담으며 여러 과와 협진을 많이 했지만 산부인과 의료진과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신장이나 간(肝) 등 이식을 받은 환자가 출산을 하는 경우 '고위험 산모'에 해당한다. 오수영 산부인과 교수가 고위험 산모 출산을 도운 경험이 많아 함께하게 됐다"고 밝혔다.


다만 산부인과의 경우 이식수술을 하지 않아 경험이 없었던 탓에 박재범 교수는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시작 단계에서는 경험이 없어 걱정이 많았지만 망설이지 말고 모여서 공부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오수영 교수와 함께 팀을 꾸렸다"라고 말했다.


"개인 비용으로 심포지엄 개최하고 후원자 기부로 연구 지속"


다학제 자궁이식팀을 꾸린 뒤 여러 진료과 교수, 임상강사, 간호사가 함께하게 됐지만 병원 내 공식 팀은 아니었고, 지금도 그 지위는 여전하다.


자칭 '다학제 자궁이식팀'이라 명명하고 호기롭게 출발은 했지만 정식 조직이 아니었던 만큼 여러 한계에 부딪쳐야 했다.


박재범 교수는 "2019년 말 처음 모여 기술적인 의견을 공유하는 등 의욕적으로 뛰어들었지만 당장 실행에 제한이 있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 좀 시들해졌다"고 회고했다.


자궁이식팀이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2021년 온라인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부터다.


그는 "당시 핵심 멤버가 6명이었다. 비용을 각출해 온라인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후 환자들이 관심을 갖고 연락을 줬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이게 우리나라에서 되겠어?', '우리가 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점점 '해낼 수 있지 않을까?'로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첫 걸음을 내딛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에서 새로운 수술 시도는 '임상연구'라는 형태를 취할 수 밖에 없는데 막대한 재원 마련이 걸림돌이었다.  


박 교수는 "이식을 위해서는 이식 전 스크리닝 검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검사가 급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시작부터 비용이라는 난관을 마주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때 자궁이식을 통해 새 생명을 품으려는 환자 모성과 의료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의료진의 열정에 공감한 뜻있는 후원자들이 기부로 힘을 보태줬고, 연구에도 속도가 붙었다.


"첫 시도 실패로 시련 맞았지만 두 번째 기증자 기적처럼 나타나 재도전"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자궁이식 연구를 시작하게 됐지만 첫 시도에서 시련을 맞았다. 


2022년 7월 처음 이식 때 생체 기증자의 자궁을 환자에게 이식했지만, 이식 자궁에서 동맥과 정맥의 혈류가 원활하지 않아 2주만에 제거를 해야 했다. 


박 교수는 "수술은 아주 순조로웠다. 많은 시뮬레이션과 리허설을 했고, 수술 직후에는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약 일주일이 되는 시점에서 실패를 인정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환자를 보기도 힘들었고, 기증자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며 "수술에 대해 묻는 게 금기어는 아닌데 병원에서 아무도 안 묻는 분위기였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환자의 적극적인 의지에 다시 힘을 냈다. 첫 이식 실패 6개월 여 만인 지난 1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뇌사 기증자가 나타나 두 번째 이식수술을 시행할 수 있게 됐다.  


그는 "한 해 전체 기증자가 400명 정도인데 이 중 환자와 혈액형이 같고, 출산 경험이 있는 30~40대 여성을 찾아야 했다. 또 임상시험 형태라 타 병원 기증자를 받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본원 기증자를 따져 보니 조건에 맞는 뇌사 기증자를 찾는 게 3년에 1번 있을 수 말까 한 일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운 좋게 6개월 만에 기증자가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뇌사자 가족에게 기증 동의를 받았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뇌사자 노모를 직접 만나 설명해드렸는데, 눈을 한 번도 안 마주치고 땅만 보셨다. 그래서 '동의를 받기 어렵겠구나' 싶었는데 설명이 끝나고 난 뒤 '100% 성공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이미 실패한 경험이 있었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답했고, 기증에 동의해주셨다"고 말했다.



"다른 환자들도 기회가 마련돼 건강한 출산 스토리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재도전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환자는 이식 후 29일 만에 생애 최초로 월경을 경험했으며, 이후 규칙적인 생리주기를 유지 중이다.


이식 후 2, 4, 6주, 4개월, 6개월째 조직검사에서 거부반응 징후도 나타나지 않아 이식한 자궁이 환자 몸에 완전히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남은 과제로 환자와 자궁이식팀 모두 아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박재범 교수는 "단기 목표는 환자가 이식된 자궁을 잘 유지해 출산에 성공하는 것이고, 장기 목표는 다른 환자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서 건강한 출산 스토리를 이어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MRKH(Mayer-Rokitansky-Küster-Hauser) 증후군 환자 상당수가 출산을 포기하지만 자궁이식으로 가정과 자녀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환자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자궁이식 성공 사례를 늘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도움이 자궁이식팀 가동의 원동력이 된다"며 "두 번째, 세 번째 환자한테도 새로운 희망을 안겨줄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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