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료 과정에서 필요한 수술의 ‘시행 여부’는 환자 선택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수술 순서’는 의료진 판단 영역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청주지방법원(판사 김현룡)은 지난달 16일 당뇨발 수술을 먼저 시행하면서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이 지연돼 환자가 사망했다며 유족이 A국립대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들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망인 A씨는 2023년 3월 오른쪽 네 번째 발가락 상처가 악화되고 통증과 팔다리 저림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고, 의료진은 당뇨 합병증으로 발에 상처가 생기고 조직이 썩는 상태로 판단해 입원 치료를 시작했다.
이후 하지 혈관 조영술에서 하지동맥 폐쇄 소견이 확인돼 혈관을 넓히는 시술이 시행됐고, 같은 날 관상동맥 조영술에서는 3곳에서 60~95%가 협착된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진은 입원 기간 중 당뇨발 수술을 우선 시행하고 퇴원 후 심혈관 스텐트 삽입술을 진행하기로 계획했다. A씨는 이후 수차례 상처 치료 및 봉합 수술을 받았다.
A씨는 같은 해 5월 11일 밤 병실에서 가슴 답답함을 호소했고, 병실 담당 간호사는 환자의 혈압과 맥박 등을 확인한 뒤 당직 의사에게 상태 변화를 알렸다.
그러나 같은 날 심정지가 발생했고 심폐소생술로 상태가 회복됐다. 이후 급성 심근경색 진단 하에 관상동맥 스텐트 삽입술과 체외순환보조장치 연결 등이 시행됐지만, 저산소성 뇌손상이 발생한 뒤 치료 중 사망했다.
유족은 의료진이 흉통을 호소한 이후 환자 관찰을 소홀히 했으며, 관상동맥 시술을 지연하면서 발생할 위험성 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의료진이 환자 상태 관찰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환자가 흉통을 호소한 직후 간호사가 생체징후를 측정했고 결과가 안정적이었으며 당직의사 보고와 상태 재확인 과정도 이어졌다"고 봤다.
특히 재판부는 설명의무 범위와 관련해 치료 순서 결정은 환자 선택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재판부는 “환자에 대한 설명의무는 수술에만 한정되지 않고 검사·진단·치료 등 진료의 모든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설명의무 위반으로 의사에게 위자료 지급 의무를 인정하려면, 의사가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 없이 수술 등을 시행해 예기치 못한 중대한 결과가 발생한 경우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에게 발생한 중대한 결과가 의사의 침습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거나,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문제되지 않는 사안이라면 위자료 지급 대상으로서의 설명의무 위반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안에서 심정지는 수술 자체가 아닌 급성 심근경색으로 발생한 점을 지적하며 설명의무 위반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수술 우선순위 판단과 관련해서도 환자 선택권 범위를 제한했다.
재판부는 "환자가 침습적 의료행위를 받을 것인지 여부를 선택하는 문제와 환자에게 필요한 두 가지 침습적 의료행위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시행할지를 정하는 문제는 동일한 차원의 사안이 아니"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여러 치료 가운데 시행 순서를 정하는 문제는 의료진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결정돼야 할 사항으로 환자 자기결정에 맡길 문제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법원은 병원 의료진 과실과 설명의무 위반을 인정하지 않고, 유족과 국민연금공단의 손해배상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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