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가운 뒤 삶 녹여낸 세계 최고 '심장 명의(名醫)'
박승정 서울아산 석좌교수, 사진 에세이 '그래서 우리의 삶은 반복되어도 싱그럽다' 출간
2023.09.21 05:39 댓글쓰기



지난 2008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건축물을 모습을 박승정 교수가 사진에 담았다. 사진 궁편책


‘국내 최초’, ‘세계 최초’란 수식을 34년간 달고 지낸 박승정 서울아산병원 석좌교수가 의사 가운 뒤에 감춰놓은 한 직장인으로서, 또 한 가장으로서의 삶을 사진에 담았다.


박승정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석좌교수가 최근 사진 에세이 ‘그래서 우리의 삶은 반복되어도 싱그럽다’를 출간했다.


박 교수는 지난 1989년 서울아산병원이 개원하면서 합류해 심장내과, 특히 스텐트 시술의 지평을 열었고 이후 우리나라 심장스텐트 역사를 새로 쓰고 궁극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1년 관상동맥 스텐스 시술을 국내 최초로 시작했으며, 1994년부터 시작한 좌관동맥 주간부 스텐트 시술은 전 세계 심장내과 진료 지침을 바꿨다. 지난 2003년 약물스텐트 연구로 국내에서 처음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제1저자로 논문을 등재한 이후 현재도 후배 의사들과 함께 창의적인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박승정 석좌교수(오른쪽)가 금년 4월 7일 열린 제51회 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뒤 박민식 보건복지부 제2차관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서울아산병원

이런 그가 카메를 잡은 건 20여년 전이다. 명석한 두뇌로 삶을 온전히 기억하겠다는 치기가 시간의 흐름 앞에 좌절하는 상황을 맛봤기 때문이다.


박승정 교수는 “낯선 사물을 대할 때나 누군가와 생각을 나눌 때 머릿속에 남겨 놓는다고 항상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기억에서 사라지다 보니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적으로 한 건 아니지만 학회를 가거나 여행을 갈 때 사진기를 꼭 챙겨서 하루 정도는 '사진 여행의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20여년 동안 한 곳에 묵혔던 사진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건 ‘우연히 웨스 앤더슨’ 덕이다. ‘우연히 웨스 앤더슨’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잘 알려진 미국 감독 웨스 앤더슨의 작품에 나올 법한 장소 사진들을 일컫는다. 전 세계 여행자들이 이 같은 사진을 활발히 공유하며 지난 2021년에는 국내에서도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박 교수는 이 사진을 보고 “내가 간 곳들의 기억도 한 번 정리해보고 싶어졌다”며 “늦둥이 딸에게도 아빠의 젊었을 때 기억을 전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밝혔다. 박승정 교수는 딸이 셋있는데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막내가 늦둥이다.


박 교수의 이런 마음은 사진 곳곳에 담겨 있다. 지난 2008년 이탈리아 로마 성베드로광장에 발을 딛고는 “이 낯선 역사의 긴 시간 앞에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걸까”라고 자문했던 기억, 같은 해 일본 삿포로에 들렀을 때 당시 3살배기였던 딸을 보며 “늦둥이 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한 기억이 사진 속에 있었다.


그의 연구인생도 담겨 있다. 미국 올랜도와 산타모니카, 러시아 모스크바 등 바쁘게 달렸던 해외 학회 중에도 쉴 틈을 쪼개 그곳에선 평범하지만 박 교수에겐 낯선 모습을 사진으로 기억했다.


사진 궁편책
박 교수는 “지난 사진들을 정리하며 희미한 기억들을 불러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 무척이나 즐거웠다”고 밝혔다.


부단히 달려온 그의 삶은 사진뿐 아니라 이제 후배들 기억 속에도 전해지고 있다. 박 교수가 후배들을 이끌고 진행한 스텐트 치료 연구는 지난달 유럽심장학회 메인세션에서 발표되기도 했다.


아끼는 후배인 박덕우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가 발표자로 나섰다. 


박승정 교수는 "그간 연구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매듭을 맺어가는 과정에 있다. 이제는 박 교수를 비롯한 후배들에게 이 시스템을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연결시켜줄 지를 고민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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