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은 일주일 168시간 내내 돌아간다. 중환자실 하나를 의사 1~2명에게 맡기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분만실을 비롯해 중환자실, NICU 등은 최소 4명 이상이 참여하는 팀제로 전환해야 한다.”
대한중환자의학회 나성원 회장(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은 중환자 진료체계 위기 해소 방안으로 안정적 재원 투입과 전일제 환산 근무시간(Full-Time Equivalent·FTE)을 반영한 팀 단위 진료체계 구축을 제언했다.
미국 등 해외 국가들은 의사인력 산정 과정에서 단순 인명 수가 아닌 국가가 정한 일정 시간 노동을 전일제(Full Time) 기준으로 환산한 값 ‘FTE’를 대입, 산출 적용한다.
우리나라 역시 환자 수에 따른 단순 인력 배치 기준을 넘어 중환자실을 주 7일·24시간 안정적 운영에 필요한 총근무시간을 전일제 인력으로 환산하는 FTE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신생아중환자실(NICU)과 분만실, 중환자실처럼 24시간 운영이 필요한 필수의료 분야를 의사 한 두 명 사명감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24시간 운영 필요 중환자실, 의사 한 두명 사명감 의존하는 구조 탈피 시급”
나성원 회장은 “한국 의료가 가진 문제가 중환자 진료에 집약돼 나타나고 있다”며 “현재 정부가 얘기하는 지역·필수·공공의료 핵심에도 중환자 진료가 자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의료진 1명이 중환자 진료를 책임지다가 결국 지쳐 떠나는 사례가 반복된다”며 “일주일 168시간을 2명이 나눠 맡아도 한 명당 84시간, 일주일 내내 12시간씩 일해야 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전북대병원 신생아중환자실(NICU) 교수가 과로를 견디지 못하고 사직 의사를 밝히며 호남 지역 분만 인프라 붕괴 우려를 키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분만실이나 신생아중환자실, 중환자실 운영에 의사 1명만 배치하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오산”이라며 “최소 4명은 있어야 휴가, 교육, 연구 등을 병행하며 진료 질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환자 진료 범위가 단순히 중환자실 내부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다는 점도 팀제 전환이 필요한 이유로 제시했다.
대한중환자의학회 김임경 기획이사(세브란스병원 외과)는 “최근에는 ‘중환자 치료 연속성’ 개념에 따라 중환자실 입실 전부터 퇴실 이후까지 환자를 연속적으로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일반 병동에서 상태가 악화되는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는 신속대응팀 활동부터 중환자실 치료, 일반 병동 전실 후 추적관찰과 재활까지 중환자 진료 영역이 확대됐다는 것이다.
그는 “외과에서도 의사 4~5명이 중환자실을 담당하지만 4명으로도 168시간을 모두 커버하기는 쉽지 않다”며 “중환자실 진료 외 환자 관리, 수술, 교육 등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중환자실 수가를 지속 개선했지만 환자 수용 능력을 높이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김 이사는 “2024년부터 중환자실 수가가 병상 수 중심에서 실제 진료 환자 수 대비 의료인력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개선됐고, 인력 수준에 따른 차등도 확대됐다”고 전했다.
다만 “현재 수가가 필요한 인력을 충분히 채용해 중환자실을 운영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느냐고 하면 부족한 부분이 있다”며 “특히 대기인력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환자실과 응급·소아외과 분야는 환자가 발생하면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의료진을 대기시켜야 하지만 현재 보상체계는 실제 진료행위가 이뤄진 경우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환자가 오면 대응할 수 있도록 의사와 간호사를 대기시키고 예비인력을 유지하는 노력은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병상은 15개지만 최대 수용량 70% 정도만 운영할 수 있는 인력으로 버티는 병원도 있다. 병상은 있어도 운영할 사람이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국 중환자실 데이터 구축…“실제 수용 능력 파악 차원”
대한중환자의학회는 전국 중환자실의 실제 수용 능력을 파악하기 위한 데이터 구축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학회는 정부 용역을 통해 전국 의료기관 중환자실 병상과 환자 현황, 가용 의료장비 등을 수집해 레지스트리로 구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나 회장은 “현재 참여 의료기관은 전체 30~40% 정도이고 참여 병원에서도 모든 중환자실이 아닌 일부 유닛만 데이터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다”며 “향후 참여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응급의료정보망인 NEDIS에서도 중환자실 병상 정보를 확인할 수 있지만, 수술 후 입실이 예정된 환자가 있는지 또는 보유 장비가 실제 가동 가능한 상태인지까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그는 “시스템에 병상이 비어 있다고 표시되더라도 수술 후 들어올 환자가 예정돼 있다면 응급환자를 받을 수 없는 병상”이라며 “장비 역시 보유 정보만으로는 가용 여부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중환자실 데이터 사업이 활성화되면 실제 가용 병상과 장비 등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응급환자 배치 및 전원 과정이 지금보다 원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학회는 통합관리체계가 구축된다고 해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완전히 해소될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평했다.
나성원 회장은 “NEDIS 구축 이후에도 마지막 단계에서는 의료진이 직접 전화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환자실 데이터로 개선은 기대할 수 있지만 전원 문제를 해소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지역에 갈 동기를 만들면 의사는 있다…시니어 의사 활용 공감”
지역 중환자의료 인력 확보를 위해서는 시니어 의사 활용과 함께 지역 근무에 대한 금전적·비금전적 보상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나 회장은 “저 역시 은퇴 후 지방에서 일할 생각이 있다”며 “서울에서 필수의료를 담당하던 시니어 의사가 지방에 내려가 진료와 후배를 양성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은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역에 갈 의사가 없다고만 할 게 아니라 지역에 있을 동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금전적 보상뿐 아니라 이러한 의료진을 사회적으로 존중하는 비금전적 보상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역의료가 유지되려면 공급자와 정부 정책뿐 아니라 환자들의 의료이용 행태도 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밝혔다.
그는 “지역 병원이 활성화되려면 환자부터 이용해줘야 되는데 서울로 향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의료진, 병원,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인식까지 함께 바뀌어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년 5월 대한중환자의학회 취임한 나성원 회장은 임기 중 학회 운영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의정갈등 이후 위축된 지역 지회 활동 회복, 2030년 세계중환자의학회 국내 유치 등도 추진한다.
나 회장은 “학술대회가 수도권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의정갈등 이후 지회 활동도 크게 위축됐다”며 “지방에서도 개최해 지역 활동을 독려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세계중환자의학회를 개최하려면 재정이 탄탄하고 건강해야 한다”며 “임기 동안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해 국제학술대회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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