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숨결 고려대 의대…대한민국 의학사 재조명
한국 여성 최초 의학교육기관…미래의학 이어갈 정신 함양
2026.05.29 06:31 댓글쓰기

1928년 9월 4일 서울 창신동. 17명의 여학생이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조선여자의학강습소(朝鮮女子醫學講習所). 오늘날 고려대 의과대학의 출발점이다. 여성이 남성 의사에게 몸을 보이는 것 조차 쉽지 않던 시대였다. 이 작은 학교는 여성을 의료 ‘대상’에서 의학 ‘주체’로 끌어올린 첫 시작점이었다. 고려대학교의료원이 2028년 의과대학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1928년을 다시 꺼내 든 이유다. 조선여자의학강습소 탄생은 한개 학의 설립을 넘어 한국 여성 의학사의 결정적 전환점이자 대한민국 의학이 어떤 사회적 책무 위에서 자라왔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라는 평가다.


여성을 위한 의료, 여성의 손으로


19세기말 조선에서 여성은 의료 사각지대에 있었다. 유교적 관습이 지배하던 시대, 여성 환자가 남성 의사 앞에 몸을 내놓기는 어려웠다. 질병을 미루고 치료를 포기하는 일이 흔했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한 인물이 미국 의료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이다. 


그는 진료에 머무르지 않았다. 조선 사회 안에서 지속적으로 여의사를 길러내는 교육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여성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여성 의료인을 길러내는 일이야말로 조선 여성 의료를 근본부터 바꾸는 길이라는 판단이었다.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1913년 평양 광혜여원 부속 의학강습반, 1914년 조선총독부의원 부속 의학강습소의 청강생 입학으로 일부 여성이 의학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경성의학전문학교가 1926년부터 여자 청강생을 더 이상 받지 않으면서 길은 다시 좁아졌다.


로제타 홀은 멈추지 않았다. 60대 나이에도 인도·중국·일본 여자의학전문학교를 직접 둘러봤고, 1928년 9월 서울 창신동에 학생 17명과 교사 12명으로 조선여자의학강습소 문을 열었다.


작은 학교였지만 의미는 작지 않았다. 일제의 권세가 거셌던 시기 ‘경성’이 아닌 ‘조선’을 학교 이름에 붙인 것 자체가 강단 있는 행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성을 위한 의료사업은 여성의 힘으로(Medical work for women by women)’. 로제타 홀의 이 신념은 강습소의 설립 정신이었다.


민족 자본이 세운 의학교육기관


강습소 역사는 한 사람의 헌신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1933년 홀이 미국으로 돌아간 뒤 운영은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인 김탁원·길정희 부부에게 넘어왔다.


부부는 1935년에는 사재까지 털어 강습소를 관철동으로 이전하며 학교를 지켰고, 정식 의학전문학교로 승격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문제는 재정이었다. 이때 전남 순천의 자산가 우석(友石) 김종익(金鍾翊)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장녀를 결핵으로 잃은 김종익은 조선 의료의 열악한 현실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었다. 


1937년 5월 그는 임종을 앞두고 전 재산 175만원을 사회에 환원했다. 그중 65만원이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설립기금으로 지정됐다. 당시로서는 막대한 금액이었다.


그의 유언에 따라 1938년 5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가 정식 개교했다. 일제강점기 국내 8개 의사 양성기관 가운데 순수 한국인 자본으로 설립·운영된 유일한 의학교육기관이었다.


신규환 고려대 여성의학사연구소장은 “경성여의전 설립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에게 자부심을 심어준 장거(壯擧)”라며 “민족의 힘으로 의학교육의 미래를 세운 사건이었다”고 평했다.


여성의학사 100년 재조명


고려대 의과대학은 지난 2022년 12월 ‘여성의학사연구소’를 개소했다. 국내 최초의 여성의학사 전문 연구기관이다.


연구소는 한국 의학사에서 충분히 조명받지 못한 여성 의료인과 연구자를 발굴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식민지 시기 여성 위생학자, 해방 후 여성 예방의학자, 한국 최초의 여성 해부학자. 의학사 서술에서 빠져 있던 이름들이 하나씩 자리를 찾고 있다.


단순한 과거 복원이 아니다. 의학의 역사를 누구의 시선으로 써왔는지, 어떤 이름이 기록에서 빠져 있었는지, 오늘의 의학이 무엇을 더 성찰해야 하는지 묻는 작업이다.


신규환 여성의학사연구소장은 “1928년의 시작을 기념하는 것은 단순히 한 학교의 역사를 회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100년 전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이들을 향했던 따뜻한 시선이 오늘날의 의학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지 되묻는 것, 그것이 100주년의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100년의 역사, 100년 미래의 약속


2028년 고려대 의과대학은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1928년의 작은 강습소에서 시작된 역사는 고려대의료원 100년사이자 대한민국 의학사의 한 장면으로 자리 잡았다. 


이 역사의 무게는 ‘최초’라는 수식어에만 있지 않다. 더 중요한 질문은 그 최초가 무엇을 바꿨는가다.


조선여자의학강습소는 여성을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보던 시대에 여성이 의학을 배우고 환자를 돌보며 사회를 바꾸는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래서 고려대 의과대학 출발은 한 학교의 시작을 넘어선다. 한국 사회가 의료를 바라보는 방식의 전환이었고, 여성의 몸과 지식, 역할에 대한 인식을 바꾼 역사적 분기점이다.


지난 100년이 ‘누구를 위해 의학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었다면, 다음 100년의 질문은 ‘어떤 의학으로 그 약속을 이어갈 것인가’다. 


고려대의료원은 지난해 새로운 비전 ‘THE NEXT MEDICINE’을 선포하며 그 답을 내놓았다. 


정릉 메디사이언스파크의 정몽구 미래의학관과 백신혁신센터, 그리고 동탄에 들어설 제4고대병원을 축으로, 안암·구로·안산을 잇는 쿼드병원 체제로 다음 100년을 설계한다는 내용이다.


윤을식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지난 100년 동안 고려대의료원은 가장 아프고 가장 소외된 이들을 위한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 정신을 이어받아 디지털 헬스케어와 인공지능(AI) 기반 정밀의료, 융합연구를 가속화해 다음 100년에도 국내를 넘어 세계로부터 신뢰받는 의료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덧붙였다.


편성범 의과대학장은 “의학 지식과 술기는 물론 사회적 책무와 윤리의식을 겸비한 미래 인재를 양성해 다음 100년의 미래 의학을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100년 전(前) 열린 작은 문은 대한민국 의학의 큰 길이 됐다. 그 길 위에서 고려대의료원은 다시 묻고, 또 답한다. 


미래 100년 의학은 가장 아픈 이들을 향해, 그리고 모든 인류의 건강한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1928년 9월 4일 서울 창신동. 17명의 여학생이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조선여자의학강습소(朝). . . . 2028 100 19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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