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인 자격 규제부터 진료 과정에서 성범죄 판단 기준, 그리고 의료기관 운영의 법리적 한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표들이 제시됐다는 분석이다. 이를 통해 소위 ‘사법의학’이 의료기관 운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현실이 확인되고 있다.
이동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대한변호사협회 ‘학회지 인권과 정의’에 2025년 의료법 중요판례평석'를 공개하고 보건의료 관련 최상급심 판결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동진 교수는 “2025년 주요 판례들은 의료행위 개념적 정의와 더불어 환자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 그리고 의료기관 개설 주체의 실질적 귀속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뤘다”고 평했다.
치과의사 자가처방 ‘자기결정권’…“무면허 의료행위 단정 어려워”
치과의사가 면허 범위를 벗어난 전문의약품을 스스로 처방하고 복용한 행위가 무면허의료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전향적인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치과의사가 탈모치료제를 구입해 스스로 복용한 사건에서 검사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이를 두고 헌재는 의료법상 의료행위가 의료인과 환자라는 관계를 전제로 한다고 봤다.
의료인 자신을 환자로 스스로에게 행하는 의료행위는 타인에 대한 위해(危害) 우려가 적으며,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일반적 행동자유권과 행복추구권에 속하는 기본적 권리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다만 헌재는 “이러한 자가 복용 과정에서 진료기록부 작성이나 처방전 발급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별개의 위반죄 성립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진료 중 성추행 판단, ‘사전 설명과 동의’ 핵심 기준
진료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인 신체 접촉이 성추행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구체적이고 엄격한 기준이 대법원 판결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대법원은 한의사가 환자 가슴과 음부 부위를 촉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강제추행 사건에 대해 유죄를 확정하며 의료계에 실천적 지침을 제공했다.
판결에 따르면 의료인 행위가 추행인지 여부는 환자 성별과 연령뿐 아니라 진료 필요성, 의학적 타당성, 그리고 시술 전(前) 환자에게 접촉 필요성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특히 내밀한 신체 부위를 접촉할 때는 간호사를 입회시키거나 사전에 상세히 설명하는 절차가 의료행위 순수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간접 증거가 된다고 봤다.
이는 개정 의료법에 따라 성범죄로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을 경우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의료현장 불안감을 해소하고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의료법인 중복 개설, 법인 ‘규범적 본질’ 부정 시 ‘위법’
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를 이용해 복수 의료기관을 실질적으로 지배·운영하는 이른바 ‘중복 개설’ 문제도 대법원의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제시됐다.
대법원은 “단순히 의료인이 의료법인 결정 권한을 보유하고 업무를 처리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의료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관련 판단에 대해 “법인 명의 의료기관 개설이 1인 1개소 원칙 위반이 되려면 실질적인 재산 출연이 없어 실체가 인정되지 않거나, 법인 재산을 부당하게 유출해 비영리성을 일탈하는 등 법인의 규범적 본질이 부정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는 사단법인과 달리 재단법인 형태 의료법인은 한 사람의 실질적 지배가 허용될 수 있다는 법리를 인정한 결과다.
이 교수는 해당 판결을 두고 “재단법인 명의 의료기관 개설에 관한 입법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약국 개설 등록 취소 소송, “인근 약사 원고적격 폭넓게 인정”
의료기관 인근에 약국을 개설하는 것을 제한하는 약사법 규정과 관련해 인근 약사들의 소송 제기 권한이 대폭 확대됐다.
대법원은 신규 약국 개설로 인해 조제 기회를 상실하게 된 기존 약국 개설자는 해당 처분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고 판시했다.
특히 기존 약국의 매출 감소가 상당하지 않더라도, 해당 의료기관의 처방전을 한 번이라도 처리한 적이 있다면 조제 기회 감소를 예상할 수 있으므로 원고적격이 인정된다고 보았다.
이는 의약분업의 취지를 살리고 약국의 독립성을 보호하기 위해 인근 약사들이 행정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법적 길을 열어준 것으로 해석된다.
콜린알포세레이트 선별 급여 ‘적법’
이밖에 치매 외 질환에 대한 콜린알포세레이트 처방 시 본인부담금을 30%에서 80%로 인상한 보건복지부 고시가 적법하다는 판결이 확정됐다.
법원은 요양급여 기준 설정이 고도의 정책적·전문적 영역이며 보건당국에 광범위한 재량이 있음을 인정했다.
또한 의료과오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건보공단이 피보험자로부터 승계 받는 ‘대위’고 시점에 대해 대법원은 요양기관이 요양급여를 실시한 때라고 보았다.
이는 본인부담금 상한 초과금의 경우에도 사후 환급 시점이 아닌 진료 시점에 공단이 대위권을 취득한다는 법리를 세웠다.
다만 이 교수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합의와 지급 절차를 고려할 때 이러한 법리 적용이 실무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2025년 판례들은 의료법의 세부 쟁점을 촘촘히 짚어내며 의료현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법 해석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중복개설 및 재단법인 운영 문제 등에 대해서는 향후 입법적 보완 논의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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