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성 잃은 한국 의료, 생태계 복원 시급"
박종훈 건강한미래와 지속 가능한 의료환경 위한 포럼 상임대표
2023.10.06 12:28 댓글쓰기




“개원가보다 대학병원부터 몰락할 겁니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의 쓴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고대안암병원장과 한국원자력의학원장을 지낸 그는 대학병원과 의료 생태계 붕괴를 점쳤다. 


목소리는 커졌고 어조는 강해졌다. 이른 아침 수술을 마치고 피곤한 기색으로 시작한 인터뷰였지만 어느새 붉게 달아오른 얼굴은 대한민국 의료를 걱정하는 열정의 방증이었다.


그는 최근 의료계 위기 의식을 느낀 이들과 포럼을 만들었다. ‘건강한 미래와 지속 가능한 의료환경을 위한 정책 포럼(이하 건미포럼)’은 지난 9월 18일 창립총회를 열었다.


건미포럼은 '의료 생태계를 망치는 과다 의료이용'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의료 과소비'라는 첫 화두를 던진 그는 “과다 의료이용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여러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면 근본적인 원인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종훈 상임대표는 갖가지 비유를 들며 문제 뿌리와 자신이 느낀 위기감을 설명했다.


"고우영 화백이 ‘삼국지’ 유비를 묘사한 그림이 있습니다. 키가 팔척(八尺,약 2m40cm)에 팔도 길고, 귀도 크고 온갖 이상적인 요소를 다 갖췄죠. 그런데 완성된 모습은 영락없는 괴물이죠."


"한국 보건의료, 사회적 이슈 터질 때마다 덧대다 보니 앞뒤 안맞고 지속성 없는 상황 속출"


그는 근본적 문제로 의료정책 철학 부재(不在)를 꼽았다.


박 대표는 “의료를 유럽처럼 인간 기본권으로 볼 건지, 아니면 미국처럼 소비권으로 볼 건지에 따라 극(極)과 극(極)의 결과를 낳는다”며 “한국은 어느 방향성으로 정책을 펴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향점 없이 그때그때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들을 급하게 덧대고 덧대다 보니 앞뒤가 안 맞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덧붙였다.

 

단적인 예로 보건복지부가 지난 9월말 내놓은 소아청소년과 의료인력 확보방안을 꼽았다.


보건복지부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대상으로 매달 100만원 수련보조수당을 지급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박 대표는 “3000만원 더 받겠다고 소청과를 택하겠냐”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는 개인적인 지향점에 대해 “사회주의적 모델에 가깝게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최소한 의료 이용과 공급을 정부가 어느 정도 계획을 세우고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설파했다.


다만 현실적으로 영국식 의료제도를 국내에서 구현하기는 어렵다.


박종훈 상임대표는 “의대 교육체계가 미국식이라 전문의 과정을 다 밟다 보니 영국처럼 주치의 제도를 갖추기 어렵다”며 “정부 주도형에 미국식 제도를 조금씩 접목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늑대가 해롭다고 다 없애니 초식동물이 너무 번성해 숲이 박살이 났더군요. 늑대를 없애면 아주 평화로운 숲이 될 것 같지만 생태계 전체를 봤을 땐 그게 아니었던 거죠. 생태계는 늑대를 없앤 순간 붕괴하기 시작했는데 눈에 보여지는 결과는 수십 년이 지나야 나타나는 겁니다.


그는 “의료생태계가 완전히 붕괴된 상태”라고 단언했다. 그 시발점은 사라진 의료전달체계에 있다고 봤다.


박 대표는 “개원가와 대학병원 사이에 경계가 없다 보니 의료가 점점 수도권 대형병원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그 병원들이 비대해졌고, 자연스레 비급여 과잉진료가 만연해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비급여 진료가 어려운 소위 필수의료라는 과들이 무너졌고 이어 지방의료가 무너지기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가파른 고령화, 건보재정 이미 망가진 상태로 2030년 붕괴"


비급여 진료와 고령화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상황 속에 보험료는 정체돼있다 보니 건강보험 재정이 흔들리고 있다.


박 대표는 건미포럼에서도 “건보 재정이 이미 망가지고 있고 2030년이면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9월 18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건립포럼 창립총회와 과다 의료이용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박 교수는 포럼 상임대표를 맡았다. 사진 서동준 기자


#체중이 120kg 나가는 사람이 하루에 먹어야 하는 식사량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줄이지 않은 채 식료품 가격만 오른다면 굶을 수밖에 없겠죠.


대학병원은 2010년대에 수익적으로 호황이었다. 장비와 시설에 적극 투자했고, 환자들은 몰렸다. 그러나 이 같은 운영에는 최소한의 인력 투입이란 전제가 있었다. 


그는 “올해 간호법 파동 근간에는 간호사들이 계속 일을 못 하겠다는 데 있다. 앞으로 간호인력 늘어나면 인건비가 폭등할 것이다. 거기서부터 대학병원 문제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봉직의들의 인건비도 뛰고 있다. 개원의들 수준에 맞춰가다 보니 천정부지로 솟고 있다.


박 대표는 “지금이 대학병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거의 최대치에 와 있다. 이미 몇몇 병원들은 경영난이 닥쳤다. 특히 지방병원들은 인건비 맞는 의사들을 찾기 더 어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건보공단 "주도적인 장기계획 제시해야"


그는 정부가 충분히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고, 그 시작점은 '면밀한 조사'라고 제언했다.


박종훈 상임대표는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의료 총량과 공급 방식에 대해 고민을 하고 그걸 토대로 공급자 측과 협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앞으로 인구 추계가 어떻게 될 것이며, 거기에는 각 지역 인구는 어떤 양상을 보이고, 또 고령화지수는 어떻게 변하는 지 등 이런 것들 다 조사해야 장기계획을 세울 수가 있다”고 덧붙였다.


복지부가 설계 중인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듣기로는 또 멀리 보지 못하고 기본 개념이 없는 집에 인테리어 하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했다.


박 대표는 "건보공단은 환자 대표로서 미래의료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장기적으로 예측해야 한다"며 "정부가 제발 기본 철학을 갖고 장기계획을 세워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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