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삼풍백화점·세월호·이태원…재난의료 태동
의료기관, 병상 비우고 현장출동…중앙응급의료상황실·DMAT 구축
2022.12.29 06:30 댓글쓰기

[기획 2] 이태원 참사는 과거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대규모 인명사고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20세기 서해 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21세기 대구 지하철 화재,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세월호 침몰, 밀양 병원 화재에 이어 올해 포항 침수·이태원 압사 사고 등이 있었다. 과거 재난이 있을 때 마다 권역 의료기관 차원의 각개전투식 대응은 지속돼왔다. 소방과 협조해 병상을 비우고, 지원팀을 꾸려 현장 구조에 나서고 피해자 신원조사에 협조했다. 경제 선진국으로 도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재(人災)가 반복되면서 시스템 개혁의 바람이 의료체계에도 불어닥쳤고, 2010년대 들어 국가 차원의 재난의료시스템이 뼈대를 갖추기 시작했다. 데일리메디가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안타까운 재난 속 권역 의료기관들 노력과 재난의료시스템의 태동 등을 정리해봤다.


성수대교·삼풍백화점 이어 대구 지하철 화재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낳은 재난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 있던 삼풍백화점 북쪽 건물이 20여초만에 무너지면서 502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다쳤다. 


구조 시작과 함께 현장과 가장 가까웠던 강남성모병원(現 서울성모병원)을 비롯해 영동세브란스병원(現 강남세브란스병원), 삼성의료원(現 삼성서울병원), 방배 제일병원, 강남제일병원, 테헤란병원, 서초병원, 김두순의료원, 선릉 필병원, 개포병원 등이 부상자를 바삐 치료했다. 


당시 최신식 대형 응급센터를 갖췄던 강남성모병원은 응급의학과장이었던 김세경 前 가톨릭의대 교수를 필두로 응급처치반을 꾸려 환자 중증도 분류에 우선 집중했다. 


의사·간호사·자원봉사자 등으로 구성된 20여 명을 사고 현장에 보냈으며, 응급센터 내 회의실을 임시 응급병실로 개조해 기존 환자들을 옮겨 밀려드는 사상자를 당일 밤까지 계속 받았다. 


구조 작업이 장기화되고, 긴급 상황은 지났지만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부상자 및 사망자가 늘면서 관련 의료기관들이 병실료·치료비 보험 청구로 곤혹을 치렀던 일화도 있다. 


강남성모병원은 250여명, 삼성의료원은 60여명 등을 치료했지만 한동안 상당수의 환자의 신원 확인이 불가했으며, 이름이라도 남겨 놓은 환자는 전화번호부 책자를 뒤져가며 연락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풍백화점 사고에 앞서 도심 한복판 참사는 불과 8개월 전에도 있었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렸다. 


당시 등교하던 무학여고 학생 및 출근 중이던 직장인 49명이 한강으로 추락해,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입었다. 


구조자들은 현재는 폐업했거나 이름이 바뀐 방지거병원, 민중병원, 성내중앙병원, 동부병원 등으로 분산 이송됐다. 사망자들은 가톨릭병원, 한라병원, 서울중앙병원, 한양대병원, 동부성심병원 등에 안치됐다. 


전년도인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 앞바다에서 362명을 태운 여객선 서해 훼리호가 침몰해 292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 해역에는 경찰 헬기·해경 헬기·해군 고속정 등이 출동해 구조에 나섰다. 


구조된 생존자들은 부안 혜성병원을 비롯한 전북대병원·예수병원·영동병원·고창종합병원·군산의료원 등에 분산 수용돼 치료를 받았다. 


1990년대의 대규모 재난이 부실 공사 및 규정 위반 등으로 일어난 인재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산 가운데, 적절한 이송체계 등 재난의료시스템 속 의료기관의 역할 및 의료체계의 개혁 필요성이 점차 부각됐다. 


그런 가운데 재난은 2000년대 들어서도 이어졌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2003년 2월 18일 오전 한 승객이 전동차 안에서 인화물질을 뿌리고 불을 질러 사망자 192명, 부상자 151명 등의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다. 


화상을 입거나 연기에 질식해 위독한 상태로 구조된 환자들은 경북대병원, 동산의료원, 곽병원, 영남의료원 등 대구 시내 병원들로 옮겨졌다. 


일례로 경북대병원 응급실은 한꺼번에 들이닥친 불에 그을린 환자들을 식별할 수 없어 발바닥을 닦고 펜으로 숫자를 적어 환자를 구분했을 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세월호 침몰…정부, 재난의료시스템 개혁 


재난 발생 시 조직적인 체계와 컨트롤타워가 부재해 대응이 미흡했다는 목소리는 커지기 시작했다. 현장 통제, 중증도 분류 및 환자 이송 등이 체계적이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지금의 중앙·권역 재난의료지원팀(DMAT) 활동 등을 포괄하는 재난의료시스템은 2015년 보건복지부가 재난거점병원 강화 대책을 발표하고 재난의료시스템 개혁에 나서면서 모습을 제대로 갖추기 시작했다. 


직전의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세월호 참사 등에서 현장 출동부터 이송체계에 이르는 전반적인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됐기 때문이다. 


2014년 2월 17일 오후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천장이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붕괴됐다. 신입생 환영회 중이던 대학생 9명 과 이벤트 직원 등 10명이 사망하고 105명이 다쳤다. 


사상자들은 가까운 울산시티병원을 포함해 울산좋은21세기병원, 계명대경주병원, 동국대경주병원, 경주굿모닝병원, 경주중앙병원, 동강병원, 침례병원, 좋은삼정병원, 해운대백병원 등에 이송됐다. 권역 응급의료센터였던 울산대병원은 현장에 출동하고 중증환자를 받았다. 


불과 2개월 뒤인 2014년 4월 16일 오전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고등학생 등 304명의 사망자와 142명의 부상자를 낳은 참사였다.


사고 인지 후 보건복지부는 재난의료 프로토콜을 발동, 권역응급의료센터인 목포한국병원과 인근 보건소들은 진도 팽목항에 DMAT을 꾸려 출동했다.


이와 동시에 인근 응급의료기관들은 중환자실과 병상을 준비했다. 구조된 부상자들이 중증도 분류에 따라 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안 전남대병원이 2차 DMAT을 파견했다. 


추가로 발견될 구조자 치료를 위해 현장에 설치된 응급의료소에 의료진이 대기했으며, 중증환자들은 헬기를 통해 목포한국병원에 이송됐다. 


밀양 병원 화재·포항 태풍 침수 DMAT 출동

 

지난 2018년 1월 26일, 경남 밀양 소재 한 병원 응급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에 인접해 있던 요양병원의 환자·보호자·직원 등 190명이 피해를 입고 30명이 사망한 사고였다. 


당시 경남119구급상황관리센터는 “병원 화재 특성상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대피하기조차 힘들다”는 판단에서 DMAT 출동을 요청,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은 현장에 DMAT 2개팀을 보냈다. 


양산부산대병원, 삼성창원병원 소속 DMAT은 현장에서 환자 응급처치 등을 수행하고 환자를 이송했다. 금세 밀양지역 내 병원들이 포화상태가 되자, 경남지역 전체와 부산까지 이송병원을 찾아 환자들을 보냈다. 


올해는 자연재해인 태풍으로 인한 침수 사고가 전국적으로 발생한 해기도 하다. 2022년 9월 6일 경북 포항에서 하천의 물이 불어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8명이 사망했다. 


경북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DMAT 출동을 요청했고,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은 포항성모병원 DMAT을 출동시켰다. 


당시 포항성모병원 DMAT은 현장에서 현장응급의료소 활동을 수행, 생존자 2명을 중증도에 따라 분류했다. 또 중앙응급의료상황실에서 제공한 병상정보를 바탕으로 인근 병원으로 생존자를 이송했다. 


2022년 10월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좁은 길에 몰리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 158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서울·경기 내 14개 재난거점병원에서 총 15개 DMAT을 파견하고, 서울·경기응급의료지원센터가 출동해 현장 의료지원에 나섰다. 


사상자들은 순천향대서울병원, 국립중앙의료원, 강남세브란스병원, 강동경희대병원, 강북삼성병원, 건국대병원, 고대안암병원, 보라매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여의도성모병원, 은평성모병원, 이대목동병원, 이대서울병원, 중앙대병원, 한양대병원, 한림대강남성심병원 등 18곳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대응 당시 통제 미흡으로 DMAT의 현장 진입조차 어려웠고, 가까운 병원에 사망자가 다수 몰리는 등 중증도에 따른 병원 이송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일면서 재난의료시스템 개혁의 목소리는 지금도 터져나오고 있다. 


사고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난 현 시점, 정부가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조사를 진행하고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이 국정조사 타깃에 올랐다. 책임소재 및 경위 파악에 사후 대응이 집중되면서 아직까지 재난의료시스템 개선 논의는 가려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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