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외과 3년 차 전공의인 A씨. 오후 늦은 시간이지만 회진하는 교수를 보조하고, 수술을 마친 환자도 돌봐야 한다. 수시로 내원하는 응급환자도 전공의들 몫이다. 전공의특별법이 시행됐다고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전공의 권리 보호를 기치로 제정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 지난해 12월 23일 전격 시행된 가운데 수련병원마다 변화된 제도에 적응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하지만 전공의들의 수련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으로 인해 수련병원으로선 고민이 적지 않다. 추가 인력 고용에 따른 예산은 수련병원 입장에서는 떨쳐낼 수 없는 부담이다.
통합당직 등 대책 마련 안간힘
급격한 변화에 앞서 다각도로 방법을 모색해 온 서울 A대학병원. 이 병원은 제도 시행 후 우선 ‘통합당직’ 도입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다.
이 시스템을 통해 각 진료과로 레지던트들이 배치되는 형식이다. 인턴이 하는 일도 적잖은 변화가 이뤄졌다.
병원 내 전공의협의회로부터 의견 수렴 절차를 공고키로 한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병원 관계자는 “이제는 기존의 것만을 고수해선 안 된다. 무조건 결정하고 따라야 한다는 게 아니라 각 진료과마다 교육수련실과 간담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련환경 평가에 전공의들이 직접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최일선에 있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수련 시스템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들도 전공의다.
전공의특별법 시행과 함께 병원, 의사, 간호사, 전공의들의 인식이 달라졌다는 점 역시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이 법 시행을 모두 흡수하기에는 아직도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 병원은 전공의들 업무 목록에 포함돼 있던 채혈, 드레싱 등을 간호부로 완전 이관시켰다. 최근 간호인력이 대거 투입된 이유다.
이처럼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전국에서 수술 건수가 집중돼 있는 외과는 상황이 간단치 않다. 이식수술 건수가 평균 이상을 웃도는 대학병원에서는 외과 비중이 절대적인 만큼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고년차 당직시간 늘려야”
그나마 임상강사들이 역할을 해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전문의들을 무한정 채용할 수 없는 현실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통상 전공의들은 저년차에서 고년차로 올라갈수록 당직시간이 줄어든다. 예컨대 진료과 별로 차이는 있지만 1년차 당직시간이 가장 길고 2년차, 3년차로 가면 짧아지는 구조다.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는 4년차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서울 소재 B대학병원 관계자는 “응급상황 대비나 환자 진료에 있어서도 저년차보다 고년차 역할이 더 중요하다”며 “하지만 현행은 반대다. 저년차일수록 당직시간이 길다”고 짚었다.
그는 “당장은 어렵지만 고년차 전공의가 당직을 더 많이 서는 방법을 계속 고민 중이고, 신중히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며 “환자안전 측면에서도 1년차보다는 고년차가 더 적합하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이어 “무조건적인 도입은 힘들다. 중간 단계로 고년차 당직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라며 “대승적인 측면에서 차츰 변화를 끌어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일찌감치 ‘외과 당직 시스템’에 변화를 준 병원도 있다.
서울 소재 C대학병원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외과는 위장관, 간담도, 대장 등의 파트별로 당직을 서 왔지만 전공의특별법 시행에 대비해 몇 개 파트로 묶어서 당직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원 감축 또 한 번 대변화 예고
그 가운데 기형적인 전공의 수급 문제 해결을 위해 추진되던 정원 감축이 숨고르기에 들어간다. 전공의특별법 시행에 따른 진료공백 등 병원계 현실을 감안한 조치다.
다만 유예가 아닌 연장인 만큼 시일이 다소 미뤄질 뿐 당초 예정됐던 전공의 정원 감축 규모는 그대로 유지된다.
병원계는 당분간 대체인력 확보와 인건비 부담을 호소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병원계는 매년 전공의 정원이 감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수련시간 단축을 골자로 하는 전공의특별법까지 시행되면 진료공백이 불가피하다며 답답함을 호소해 왔다.
그러나 복지부는 전공의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지난 2013년부터 의사국시 합격자 수와 전공의 정원을 맞추는 정책을 전개 중이다.
앞서 복지부는 최근 2017년까지 5년 간 전공의 정원 감축 계획을 1년 연장해 오는 2018년도까지 줄여나가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2017년도 인턴 정원은 기존 3248명에서 31명 줄어든 3217명, 레지던트는 올해 3328명에서 75명 감소한 3253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서울 소재 C수련병원 관계자는 “수술이 많고 적고의 문제보다 기본적으로 전공의가 부족한 진료과가 있다”며 “전공의 수도 적은데 법까지 지켜야 하니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했다.
초음파·내시경 술기 교육 포함 등 핵심역량 강화
그런 가운데 학회 차원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대한내과학회는 수련기간 단축과 함께 수련 질 확보도 강조하며 내과 전공의들이 3년 동안 필수적으로 배양해야 할 핵심역량 160여 개를 선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내과학회에서 논의 중인 핵심역량에는 내시경 및 초음파 검사 등의 술기가 포함된다.
초음파, 갑상선초음파, 관절, 복부 초음파, 내시경 교육의 경우 50건 이상 받아야 한다는 세부 방침을 마련하고 있다.
서울 D대학병원 관계자는 “내과 수련기간 단축과 함께 초음파 및 내시경 교육 강화도 이뤄진다”며 “이와 관련해서 대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가운데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전공의특별법 시행을 계기로 전공의들이 직접 수련환경 개선을 건의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으며 각 학회들도 의견 수렴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도 같은 맥락에서 기획됐다.
대전협 관계자는 “외과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등 수련과정 개편 및 입원전담전문의에 대한 내용이 핵심으로 그 결과는 향후 수련환경 개선에 반영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번 설문조사가 전공의가 원하는 수련제도를 수립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내과, 외과에 멈
추지 않고 타과 전공의 목소리도 반영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