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소송, 산부인과 전문의 장롱면허 위기"
형사에 잇단 거액 민사 판결…"불가항력 사고 인정안하면 분만 인프라 붕괴"
2023.09.16 06:26 댓글쓰기

[기획 上] 최근 태아 이상을 발견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으나,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로 산부인과 의사에게 거액의 배상 책임을 물은 재판부 판결에 의료계가 공분하고 있다. 불가항력적 사고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은 산부인과 의사들 진료를 위축시킨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분만 기피현상이 짙어지는 상황에서 이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해 머지않아 '대한민국 분만 인프라가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분만이라는 의료행위에는 본질적으로 내재된 위험성이 존재하나 모든 사고 책임을 의사에게 전가하는 작금의 현실에 개탄하며 개혁이 필요하다고 성토했다. [편집자주]


지난 9월 15일 필수의료 중 하나인 산부인과 기피현상 주된 요인으로 지목되는 '의료소송'에 대한 각계 전문가들의 허심탄회한 논의의 장(場)이 열렸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주관으로 열린 이번 토론회는 최근 산부인과 의사에게 거액의 과실 책임을 묻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분만 관련 소송 실태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를 짚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전문가들은 불가항력적인 사고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은 산부인과 의사들 소신진료를 위축시키고, 특히 분만 인프라 붕괴를 야기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들은  분만 인프라 현실을 점검하고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안심하고 진료를 볼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한산부인과학회(이사장 박중신) 주관으로 열린 이번 토론회는 의료계·법조계 등 전문가들이 모여 분만과 관련 소송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고위험산모 진료에 대한 필수인력 붕괴와 대책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펼쳤다. 구교윤 기자

토론회는 총 2부에 나눠 진행됐다.


1부에서는 '분만 관련 의료소송 현실'을 주제로 산부인과 전문의를 비롯해 현직 판사, 변호사, 기자 등 각계 전문가들이 나서 불편한 의료소송을 논했다. 2부에서는 '고위험 산모 진료 필수인력 붕괴와 대책'을 주제로 최근 심각성을 더하고  있는 분만 인프라 붕괴 문제를 다뤘다.


이날 박중신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입장문을 발표하며 "불가항력적 사고를 인정하는 않는 재판부 태도가 분만 인프라 붕괴라는 재난상황을 야기할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너무나도 가혹한 처벌에 놓이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대한민국에서 분만을 담당하는 의사들이 없어지는 끔찍한 상황이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만간 분만 위해 병원 찾는 뺑뺑이 상황 도래 우려"


이어 "의료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소아과 의사를 찾지 못해 이른바 '뺑뺑이'를 돌고 있는 것은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머지 않아 분만하는 병원을 찾기 위해 뺑뺑이를 도는 상황이 올까 걱정스럽다"고 깊은 우려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저출산 시대 필수의료 살리기는 공허한 외침이 된 지 오래다. 이 시간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분만 현장에서 불철주야 애쓰는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주제 발표에서는 성원준 칠곡경북대병원 교수가 산과 의료 소송 증례를 소개하며 사안의 중대함을 설파했다.


성 교수에 따르면 분만 관련 민사소송은 평균 해결기간이 1435일(3.9년)로 최소 276일, 최대 12년이 소요됐다. 


주요 사고 원인은 '신생아가사'가 42%를 차지했으며 평균 원고청구액은 2억3000만원, 손해배상액은 7000만원이다.


성 교수는 "분만 관련 소송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소송 규모도 상식 이상으로 커지고 있다"며 "의료진 분만 관련 소송에 대한 부담은 분만 인프라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소모적인 의료소송을 줄이고 산모는 분만 관련 사고에 관해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보상받고, 의료진은 방어진료에서 벗어나 최선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안정적인 산과 의료진 확보가 가능하며 유사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지침 제공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성 교수는 "분만 관련 소송 증가는 의료진 뿐만 아니라 산모와 향후 출산을 원하는 국민 모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어  "임신은 질환이 아닌 본인 선택으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이다. 타 질환 의료 사고를 보상하는 것과는 다르다"며 "항상 위험을 안고 있는 출산을 적극 장려하기 위해서는 분만 관련 불가항력적 사고에 관한 국가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오상윤 예진산부인과 원장은 직접 경험한 분만 관련 의료소송을 공유하며 현실적 고충을 전했다.


오 원장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다른 과보다 돈을 못 버는 것도 있지만, 툭하면 소송에 걸리는 등 억울한 상황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답답함을 내비쳤다.


분만 경력만 26년을 자랑하지만 그에게도 분만이라는 의료행위는 늘 긴장의 연속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오 원장은 "분만을 공부하고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소송에 관한 법률을 공부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분만을 26년째 하고 있지만 '아침마다 오늘 태어나는 아기 호흡이 고르게 해주길 바랍니다'라는 기도를 할 정도로 불가항력적 사고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했다.


"의료감정 시 공정성 확보 위한 복수감정제 도입" 


이날 사법부에서도 분만 인프라 붕괴를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고유강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료감정 시 복수 감정인이 참여하는 '복수감정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교수에 따르면 의료 민사소송에서 손해배상 책임 범위가 확정되기까지는 ▲과실과의 인과관계 일상이익 책임제한 등 세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이 과정에서 의료감정은 손해배상액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와 모두 연관돼 소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현재 감정인 한 명이 의료소송을 판결하는 경우가 잦다.


이렇다 보니 의료감정 적시성 및 공정성, 정확성에 대한 신뢰도에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 교수는 "의료감정인은 의사 과실과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중요한 의견을 제시하고 일실이익 산정 기초가 되는 노동능력상실률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며 책임제한율 산정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명의 감정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복수 감정인이 참여하는 복수감정제를 도입해 의료감정 신뢰도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이때 분만이라는 의료영역 특수성은 손해배상책임 성립 단계와 범위결정 단계 모두에서 참작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김선욱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도 사법적 판단의 한계를 짚으면서 사회적 자금 투여 필요성을 설파했다.


김 변호사는 "손해배상액 산정 기초가 되는 도시일용노임은 법원도 자의적으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법원은 산과 기피현상 및 낮은 분만 수가 등을 고려해 분만관련 신생아 뇌사 사고 발생시 의사 책임제한에 반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책적인 효과를 단방에 낼 수 있는 방안이 분명히 있다"며 "무과실 분만사고에 대한 손해 배상은 현 의료분쟁조정법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금 지급 기준을 3000만원에서 현실에 맞게 대폭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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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실 09.16 09:17
    힘들게 수십, 수백명의 애를 잘 받아도 신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당하면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물거품되는게 분만 현실인데 젊은의사들이 지원할까. 요즘에는 부모들이 산부인과 전공한다고 하면은 더 반대한다.
  • 12억이 누구집 애이름 09.16 07:43
    한번 선택이 최소30년을 좌우한다. 최근 12억 판결기사를 보고 산부인과 선택한걸 후회하게 되었다. 판사들은 이 나라의 분만이 조선시대수준으로 후퇴하더라도 내알바 아니고 책임도 안지는 족속들이다.
  • 가짜판사 09.16 07:03
    여기나 오신 패널분들도 조심하시오. 본인 혹은 제자분들 손해배상에 감방 갈 확률이 있습니다. 판새들 의사에게 너무 편향적 판결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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