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 주요 학회들에 따르면 대한의학회 주도로 시행령 보완을 위한 연구용역이 반환점을 돈 가운데, 연구에 참여 중인 필수과 학회들을 중심으로 하위법령만으로는 법의 근본적인 독소조항을 막을 수 없다는 부정적 중간 평가 성격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연구용역에 참여 중인 학회 임원들은 논의가 진행될수록 하위법령 보완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는 게 핵심적 우려다.
결국 조정법 시행 이후 연구용역에 참여한 학회들의 발목을 잡게 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공통적으로 목격된다.
현재 대한의학회는 보건복지부 의뢰를 받아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목록 제안 및 불가항력 의료사고 국가보상제도 확대 방안 등을 담은 연구용역을 수행하고 있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등 9개 필수의료 관련 학회가 주도적으로 참여해 오는 11월 30일 최종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해당 과를 중심으로 각 학회 법제이사와 법학 교수 및 전문가들이 함께 힘을 보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이렇게 도출된 의견 등은 국회에 지속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실제 최근 의료계와 정치권의 교감 과정에서도 아예 새로운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한 학회 임원은 “최근 국회의원과의 면담 자리에서도 하위법령 제정이나 현행법 개정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며 “아예 국회를 통해 새로운 법안을 발의해 의료분쟁 제도의 근본적인 뼈대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이야기도 오갔다”고 귀띔했다.
이렇듯 연구가 거듭될수록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됐던 “의학회의 연구용역을 통해 하위법령을 잘 만들면 개정법의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는 낙관론과 의료계의 시각은 더욱 멀어지고 있다.
실제 의학회는 최근 산하 26개 전문학회에 안내문을 배포해 “연구용역은 현재 법체계 내에서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일 뿐, 법률 개정이 필요한 문제를 하위법령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의사이자 변호사인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은 “의료사고를 비범죄화해야 한다는 대원칙에는 모든 학회가 동의하고 있다”며 “중과실을 일일이 나열하거나 불가항력의 범위를 시행령으로 정하는 것은 한계가 뚜렷해 결국 법 자체를 개정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의료행위는 일반적인 교통사고와 엄연히 다르다”며 “본래 사망 위험성이 높은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결과를 단순 과실 법리로 똑같이 처벌하려는 것은 큰 문제”라고 부연했다.
필수진료과 위기감 확산…“자동개시가 오히려 분쟁 조장”
특히 소송 위험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중환자의학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학회들 우려는 최고조에 달해 있다.
이들은 사망이나 중증 상해 시 의료분쟁조정이 ‘자동 개시’되는 조항이 오히려 소송을 부추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환자의학회 임원은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환자의 약 20%는 사망에 이르는 등 결과가 안 좋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이들이 모두 분쟁조정의 자동 개시 대상이 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며 “어디까지를 불가항력적 필수의료로 볼 것인지 실시간으로 변하는 응급 상황에서 명확히 규정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배상과 법적 처벌 절차가 분리되지 않고 혼재돼 있어, 결국 ‘아니면 말고’ 식의 무분별한 분쟁 조정 신청만 늘어나 제도의 본래 취지가 훼손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필수의료의 핵심이자 이번 분쟁조정법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산부인과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로 보고 있다.
현재 산부인과학회의 공식적인 의견이 도출되지는 않았지만, 임상 현장에서 근무하는 한 대한산부인과학회 임원은 산부인과 의사들의 공통적인 우려를 전했다.
그는 “분만 과정의 불가항력 사고에 대해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만에 하나 의사의 작은 부주의라도 인정돼 불가항력 판정에서 탈락하면 곧바로 꼬투리를 잡혀 거액의 민형사 소송으로 직행하게 된다”며 “자동 개시 조항은 결국 소송의 문턱을 낮춰 이전에 걸리지 않았을 소송까지 모두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구용역 중반부 현장 우려 증폭…근본적인 대책 미비 우려
각 학회가 하위법령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에 참여해 논의를 거듭할수록 법안 모순과 현실적 괴리가 명확해지고 있다.
의료현장의 실태를 시행령에 담아내려 할수록 상위법 자체가 가진 한계에 계속 부딪히고 있는 셈이다.
한 학회 관계자는 “현재 의학회 주도로 연구용역 워크숍 등이 한창 진행 중인데, 이 과정에서 지속해서 확인된 하위법령의 한계점들이 결국 상위법 자체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형욱 의학회 부회장은 의료사고에 대한 대대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형욱 부회장은 “‘면책’이라는 표현을 쓰면 국민이 의사들에게 특권이나 특혜를 주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매우 높다”며 “하지만 세계의사회나 해외 선진국 사례를 보면 의료사고를 아예 형사 범죄 대상으로 삼지 않는 추세이며, 우리나라와 법 체계가 비슷한 일본 역시 의료사고로 형사처벌을 하는 경우가 거의 사라지는 등 비범죄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특혜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의료행위의 비범죄화가 국회 차원에서 신중히 재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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