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기술 발달에 따라 ‘의사 종말론’이 화제다. AI와 로봇이 결합되면서 의사 업무가 사람보다 더 정확·빠르고 저렴하게 수행돼 의사가 모두 대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부에서는 종말론에 근거해 의대 증원이 불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의료 현장에서는 아직 먼 미래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진단은 고도화되고 있지만 환자가 실제 느끼는 불편감을 이해하는 과정 조차 변수가 많고 답이 없는 경우도 넘치기 때문이다.
특히 뇌에 해당하는 소프트웨어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나 인간 손의 미세한 움직임을 구현할 하드웨어 벽이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스크린 속 진단 AI를 넘어 환자를 직접 돕는 ‘피지컬 AI’ 의료 현장 미충족 수요를 정조준하고 있는 임준열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교수(메디스비 대표이사)를 만나 AI 기반 의료로봇 현주소를 짚어봤다.
현장에서 느낀 미충족 수요가 메디스비 창업 동기
환자를 진료하면서 의료 로봇 기업 ‘메디스비’를 이끄는 임 교수는 창업 동기는 진료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한 수술을 잘해도 ‘기능 회복이 따라오지 않는 환자들’이었다.
그는 “의사는 수술을 잘하려고 노력하지만 현장에서 느낀 미충족 수요가 있었다”면서 “의료 쪽으로 써보실 만한 솔루션을 제안해 달라는 아이디어 페어가 있었고 관련 아이디어를 제안하면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로봇을 사서 2016년에 만들고 5년 정도 실험실에서 개발을 이어가다 세상에 나와야 한단 결론에 도달했다”면서 “연구실에서 현장으로 넘어가는 고리를 만들기 위한 구조로 가게됐다”고 덧붙였다.
임 교수는 “겸직 허가는 연세대 총장에게 받아야 하고, 교육·연구·진료 중 어느 하나라도 지표가 많이 떨어지면 안 해준다”며 “그 전에 일이 10이었다면 12 정도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창업 이후의 삶을 “레지던트를 다시 새로 하나 하는 기분”이라며 “왜 했나 하며 괴로워하는 분들도 있지만 비교적 재밌어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 기능 구현 이후에나 의사 대체 전망 가능”
임 교수는 AI·로봇이 사람과 융합되는 형태로 의료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쪽에 가깝다고 봤다. 임 교수가 특히 경계한 것은 성공 사례가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과장되는 현상이다.
그는 “의료 현장에서 로봇은 이전부터 치료 영역에서 플랫폼 역할을 해왔다”며 “AI가 나오면서 더 자율적인 로봇이 기대되지만, 완전 대체되는 형식은 지금도 적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단해야 할 것이 천 가지라면, 사람보다 낫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3~5가지 정도라고 생각한다”면서 “모든 영역이 그렇게 무리 없이 쓰이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론 머스크가 촉발한 ‘의사 종말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췄다. AI의 역할이 커지고 있지만 문진과 맥락, 술기, 하드웨어 측면이 해결돼야 얘기할 가치가 있다고 봤다.
그는 “언제부터 아팠냐고 물으면 오래됐다는 답으로 시작되는 대화가 흔하다”면서 “의사는 앞뒤 맥락을 맞춰가며 질문을 여러 차례 바꿔 던지고, 환자가 표현하지 못한 불편감을 끌어내고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엑스레이를 찍으면 판독해주고 제안해주는 AI는 있지만 찍어야 하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것은 사업적으로 쓰임새가 없다”면서 “의료는 정답이 하나가 아닐 때가 많아 임상적 맥락과 가치 판단이 개입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AI가 강해지는 만큼, 의사의 역할은 사라짐이 아니라 재배치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임 교수는 AI가 의사를 대체하기 어려운 이유를 하드웨어, 즉 손의 기능 구현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사람 근골격계 기능에 대한 경외심을 가진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손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갖추는 것은 정말 풀기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론 머스크도 휴머노이드에서 제일 안 되는 건 손이라고 말한다”면서 “로봇이 덤블링을 하고 뛰는 ‘큰 근육’은 가능해도, 책 페이지를 조심스럽게 넘기고, 단추를 채우고, 바둑돌을 손끝으로 집는 미세 동작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도 국내외 많은 기업들이 과거부터 손가락 구현을 위한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대부분 손의 직접적인 구현은 실패해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면서 “손 기능 및 민첩성을 구현하고 나서야 의사 종말론에 대해서도 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수술은 바로 그 미세 동작 집합으로 하드웨어가 원하는 만큼 기능을 못하면 소프트웨어가 아무리 좋아도 안된다”면서 “손의 민첩성을 상용화 하기에는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평가했다.
의대 증원은 불확실한 혼돈에 투자
AI·로봇이 의료인력 수요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서 ‘의대 증원’ 논리 자체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의사 숫자가 의료의 질, 수요를 무조건 충족한다는 논리는 괴리가 있다”면서 “새 인력을 뽑아 혼돈과 불확실 요소를 추가하기보다 지금 있는 인원들에 투자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기존 인력과 의료 AI·로봇 같은 도구와 시스템에 대한 전문적 지원이 필요하단 설명이다. 기술은 인력을 ‘줄이는’ 도구라기 보다 인력 역량과 안전을 증폭시키는 인프라로 봐야 한다고도 했다.
임 교수는 “미래 의사들이 거대한 병원 시스템의 부속품이 되기보다는 각자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의료시스템을 설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면서 AI 발전에 따른 변화를 주목했다.
이어 “소수 정예로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경량 문명 사회’가 오고 있다”면서 “이제 의사 창업은 선택이 아닌 시대적 흐름이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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