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열풍 식었지만 의료 융합기술연구 지속"
정용기 의료메타버스학회장 "진료현장 적용 등 옥석 선별되는 과정"
2026.02.04 12:10 댓글쓰기



“메타버스 열풍이 식은 것은 사실이지만 의료 현장에서 융합 기술 연구는 멈춘 적이 없습니다. 의료는 유행이 아니라 환자 생명을 전제로 발전하는 분야입니다. 기대가 걷힌 지금은 실제 쓰일 기술들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정용기 의료메타버스학회 회장은 최근 데일리메디와 만난 자리에서 메타버스 가치를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불과 4~5년 전 사회 전반을 휩쓸었던 메타버스 열풍이 빠르게 식으며 ‘거품’ 논란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의료 현장에 적용 가능한 가상 의료 기술 연구는 중단된 적이 없다는 설명이다.


정 회장은 “의료는 환자 생명을 담보로 발전하는 분야인 만큼 기술 도입 속도가 신중할 수밖에 없고 지금은 오히려 옥석이 가려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인 정 회장은 이달 제4대 의료메타버스학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임기는 2년이다.


의료메타버스학회는 의료계뿐 아니라 공학계, 산업계, 공공기관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다학제 학회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술의 의료적 적용 방안을 모색하고 미래 의료 산업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2022년 설립됐다.


학회가 출범하던 시점은 우리 사회가 가상 기술에 본격적으로 주목하기 시작한 흐름과 맞물린다.


특히 의료계에서는 미국 존스 홉킨스 병원(Johns Hopkins Hospital)이 척색종 수술에 증강현실 기술을 적용한 사례가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았고, 국내에서도 수술 가이드와 의료 교육, 디지털 치료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가상 기술의 의료적 가치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다만 이후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급격히 소비되며 기대와 실망이 반복됐고, 관련 분야 전반이 위축된 것처럼 비쳐졌다. 의료 메타버스 역시 같은 프레임에 놓였다.


하지만 정 회장은 이 지점에서 ‘의료 메타버스’라는 개념에 대한 오해부터 짚었다.


정 회장은 “학회 창립 당시 단체 성격을 설명할 수 있는 용어를 찾던 과정에서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이를 차용했을 뿐 시대적 유행을 좇은 것은 아니”라며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메타버스라는 키워드가 새롭게 등장한 것은 맞지만 의료 분야에서 3D 모델링, 가상화, 시뮬레이션 연구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돼 왔다”고 설명했다.


"메타버스, 의료 자원 한계 보완하는 미래 기술"


정 회장이 정의하는 의료 메타버스의 본질은 ‘의료 자원의 한계를 보완하는 기술’이다.


환자 설명과 의료진 교육, 치료 과정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시간과 숙련도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의료 현장은 점점 더 척박해지고 교육과 설명에 충분한 시간을 투입하기 어려운 구조로 바뀌고 있다.


그는 “단순히 인력이 부족한 문제가 아니라 훈련된 인력이 부족한 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라며 “가상 기술은 이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특히 의료 메타버스가 가장 빠르게 적용될 수 있는 영역으로 의료 교육을 꼽았다.


정 회장은 “의학 교육이 아니라 의료 교육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교육에서도 가상 기술의 유용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3D 기반 가상화 교육은 기존 교재나 2D 영상 대비 이해도와 몰입도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축적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치료 영역에서는 디지털 치료기기(DTX)가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상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치료는 불면, 안정, 일부 감각 장애 등에서 치료사가 상시 개입하지 않아도 기존 치료와 유사한 효과를 보였다는 근거가 축적되고 있다.


정 회장은 “치료사가 계속 붙어야 하는 구조는 현실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가상 기술은 치료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의료에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수술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숙련된 의사에게만 의존하는 구조는 한계가 있다”며 “절개 지점, 기구 삽입 위치, 절골 부위를 시각적으로 가이드하는 가상·증강현실 기술은 수술의 표준화와 안전성 확보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험 많은 의사에게는 보조 수단이지만, 초심자에게는 수술 품질 격차를 줄이는 핵심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술은 준비됐지만 제도와 발전은 숙제"


그럼에도 의료 메타버스 기술이 현장에 빠르게 확산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수가와 보상 체계가 꼽힌다.


정 회장은 “가상화 기술 개발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고, 대부분 스타트업이 이를 감당한다”며 “기업 입장에서 충분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단일 보험 체계에서 이를 그대로 수용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시장 진입을 위한 마중물을 제공할 필요는 있지만 모든 기술을 급여화하는 것이 해법은 아니다”라며 효과 입증 문제의 중요성을 짚었다.


정 회장은 “교육 영역은 비교적 우월성 입증이 쉬운 반면, 치료 영역은 동등성·우월성 검증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환자에서 우월하다고 주장하기보다 어떤 환자군에서 가상 기술이 더 적합한지 세부 적응증을 찾아야 한다”며 “디지털 치료 역시 정밀의학처럼 환자 맞춤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서울병원이 국책과제 일환으로 진행한 '메타버스 기반 가상환경 병원'

최근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와 스마트 글래스 등 하드웨어 발전은 의료 메타버스가 다시 현실과 맞닿을 수 있는 흐름으로 읽힌다.

 

정 회장은 “과거에는 ‘진짜 같지 않다’는 사용자 경험이 확산을 가로막았지만, 최근 기기들은 사람들이 상상하던 수준에 가까운 현실성을 구현하고 있다”며 “의료진이 디바이스 특성을 이해해야 개발자와의 협업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학회장으로서 역할을 ‘연결’로 규정했다. 그는 “의료 메타버스 산업은 의료진과 디바이스, 콘텐츠 개발자라는 세 축이 맞물려야 형성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학회는 연구 성과를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의료진·개발자·기업·정책 담당자를 엮는 장(場)”이라며 “임기 동안 사회에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정부를 향해 원천부터 실증까지 단계별 연구가 끊기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 메타버스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학회가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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