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성췌장염 환자 치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결과까지 의료진이 설명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질환의 일반적 경과와 치료 방법에 대한 설명이 이뤄졌다면, 발생 가능성이 매우 낮고 예측하기 어려운 치명적 합병증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취지다.
광주지방법원 제4민사부(재판장 박상현)는 지난 15일 급성췌장염 환자 사망과 관련해 유족들이 병원과 의료진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항소심에서 원고 항소를 기각하고 1심 판결을 유지했다.
망인 A씨는 2018년 6월 7일 상복부 통증과 두통, 발한 증상으로 B병원에 내원해 혈액검사와 동맥혈가스검사, 복부 CT 등을 거쳐 급성췌장염 진단을 받았으며 의료진은 금식과 수액 공급, 통증 조절 등 보존적 치료를 시작했다.
입원 이후 A씨 통증은 한때 호전되는 양상을 보였고, 9일 새벽 다시 복통을 호소했으나 같은 날 오전 혈액검사에서는 췌장 효소 수치 등이 이전보다 호전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오후까지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를 보였다가 같은 날 밤 9시경 갑작스러운 복통과 함께 혈압이 급격히 저하되는 쇼크 증상이 나타났다.
의료진은 수액과 승압제를 투여해 혈압을 회복시킨 뒤 상급병원 전원을 결정했고, A씨는 응급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다시 복귀했다.
이후 심폐소생술과 기관삽관, 약물 투여가 이뤄졌고, 복부 초음파와 CT 검사에서 복강 내 출혈이 확인돼 대학병원으로 전원됐으나 이송 과정에서 심정지가 발생해 동맥 파열로 사망했다.
이에 유족들은 병원 의료진이 급성췌장염 치료 과정에서 항생제 투약과 검사, 응급조치 및 전원 판단을 적절히 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급성췌장염의 위험성과 금식의 중요성, 치명적 합병증 가능성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며, 병원 측을 상대로 배우자에게 5631만4452원, 자녀 2명에게 각각 3007만410원씩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합병증 예견·조기 진단 의무 인정 어려워"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의료진 과실과 설명의무 위반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은 2023년 11월 "유족 측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B병원 의료진이 망인에 대해 급성췌장염을 진단하고 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상장간동맥파열을 조기 진단하거나 적절한 치료를 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같은 1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항생제 투여와 관련해 “망인의 증상은 경증 내지 중등증의 급성췌장염에 해당하고, 일반적으로 단순 급성췌장염에서 감염성 합병증 예방을 위한 항생제 사용은 추천되지 않는다”며 “곧바로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치료가 부적절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사 및 진단 지연 주장에 대해서도 “CT 검사결과 췌장 괴사나 상장간막동맥에 관한 특이 소견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망인은 만성췌장염이 아닌 급성췌장염에 해당했고 증상은 경증 내지 중등증이었으므로 당시 혈관 합병증과 사망의 위험성을 미리 예견하기는 매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쇼크 발생 이후 응급조치와 전원 판단과 관련해서도 항소심 재판부는 “저혈량성 쇼크가 발생한 상황에서 응급수술이나 추가 검사를 시행하기는 사실상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며 “의료진이 혈압 유지를 위한 응급조치를 하거나 전원 조치를 함에 있어 과실이 있었다거나 전원 조치가 지체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설명의무 위반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의료진이 망인에게 일반적인 급성췌장염 증상과 치료 방법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망인의 증상이 중증 급성췌장염이 아니고, 급성췌장염에서 상장간막동맥의 직접적인 파열은 매우 드물게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망 가능성이나 상장간동맥파열 가능성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해서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밖에 감염성 췌장염 악화, 대량 출혈에 대한 응급조치, 전원 지연, 외출 시 요양방법 지도, 상장간막동맥 폐색 진단 지연 등 유족 측이 항소심에서 다시 문제를 제기한 쟁점들도 의료진에게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유지하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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