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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처가 대용량 수액제를 중심으로 무균의약품 GMP 관리체계를 ‘시험 위주’에서 ‘공정과 시스템 중심’으로 전환한다.
오는 30일부터 시행되는 무균 GMP 개정에 맞춰, 대용량 수액제에 한해 ‘매개변수 기반 출하(Parametric Release)’를 실제 제조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허가·심사 기준과 GMP 가이드라인 전반을 정비했다.
이번 제도는 무균시험을 없애는 방식이 아니다. 무균성을 담보하는 핵심 공정지표와 관리 요소를 사전에 설정하고, 이를 일관되게 충족했을 경우 반복적인 무균시험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한 고도화된 GMP 운영 모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김정연 의약품품질과장은 식약처 출입 전문지 기자단과 23일 진행한 간담회에서 “무균시험을 생략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 수준 무균 보증이 이뤄진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체계”라고 설명했다.
무균 GMP 개정 이후 대용량 수액제는 로트별, 경우에 따라 서브로트별 무균시험 횟수가 대폭 늘었다.
생산 규모가 크고 보관 기간이 긴 대용량 수액제 특성상, 결과가 나오기까지 14일 이상 소요되는 무균시험을 기다리는 동안 보관 공간과 관리 인력이 과도하게 투입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1L~3L 이상 대용량 제품의 경우, 전체 용량이 아닌 일부만 여과·배양하는 기존 시험 방식 자체가 무균성 판단에 한계를 지닌다는 문제의식도 업계에서 제기됐다.
김 과장은 “무균시험은 모집단 전체를 대표하기 어려운 소수 샘플에 의존하고, 배지와 배양 조건에 따른 검출 한계도 존재한다”며 “시험 결과만으로 무균성을 보증하는 데는 구조적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SAE·CPP 체계적으로 관리, 기존 무균시험보다 더 높은 수준의 무균성 확보 가능"
식약처는 지난해 11월부터 업계 의견을 수렴하며 제도 도입 준비에 착수했다. 그러나 올해 6월까지만 해도 매개변수 기반 출하는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업계 역시 취지에는 공감했지만, 실제 적용에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전환점은 식약처,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대용량 수액제 3개사(HK이노엔·JW중외제약·대한약품공업)가 참여한 공동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찾아왔다.
연구의 핵심은 무균성을 보증하는 요소를 체계적으로 정의하고, 이 요소들이 무균시험 결과와 실질적으로 연계된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있었다.
이를 위해 EU와 FDA, 국내 GMP 가이드라인을 종합 분석해 ‘무균보증요소(SAE, Sterility Assurance Elements)’ 19개를 도출했고, 여기에 멸균 공정의 핵심 관리지점인 CPP(Critical Process Parameters)를 포함한 통합 관리 모델을 설계했다.
각 사는 동일한 프로토콜로 배지충전시험과 공정 밸리데이션을 수행했고, SAE와 CPP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경우 기존 무균시험보다 더 높은 수준의 무균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김 과장은 “이제는 제도를 충분히 설명하고 적용을 논의할 수 있는 단계에 왔다”고 평가했다.
경쟁사가 손잡은 첫 사례…GMP 수준 상향
이번 프로젝트의 또 다른 특징은 경쟁 관계에 있는 대용량 수액제 3개사가 공동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각 사는 내부 기준서만 20건 이상을 개정하며 GMP 시스템을 전면 재정비했다.
천청운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정책본부 연구위원은 “경쟁사들이 각자의 강점을 공유하며 동일한 목표를 향해 협업한 첫 사례”라며 “개별 기업을 넘어 산업 전체의 GMP 수준을 끌어올린 계기”라고 평가했다.
단순한 규제 대응을 넘어, 국내 제약산업이 선진 GMP 제도를 ‘따라가는 단계’에서 ‘실질적으로 적용·내재화하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설명이다.
매개변수 기반 출하는 새로운 규제를 도입한 것이 아니다. 기존 GMP 규정에 존재하던 제도를 실제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구현한 사례다.
GMP 실사가 강화되거나 별도 추가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실사 담당자가 매개변수 기반 출하의 개념과 관리 포인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별도의 GMP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지방청 대상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김 과장은 “매개변수 기반 출하를 적용한다고 해서 특정 제조소가 표적 실사 대상이 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며 “제도 이해 부족으로 불필요한 혼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가 변경, 제도 전환 마지막 관문
제도적 기반과 GMP 준비가 갖춰졌다고 해서 자동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현행 허가사항에는 모든 무균 주사제에 무균시험이 명시돼 있어, 매개변수 기반 출하를 적용하려면 품목별 변경 허가가 필요하다.
대용량 수액제 3개사가 신청해야 할 변경 허가는 총 117건으로 집계됐다.
식약처 품질심사부는 전담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변경 허가에 대한 신속 심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허가 이후에도 품목별로 6개월간 무균시험과 매개변수 기반 출하를 병행하는 ‘더블 검증’ 기간을 두어 제도 전환 과정의 안전성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대용량 수액제는 퇴장방지의약품이자 군수물자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전체 수액제 생산량의 약 85%를 3개사가 담당하고 있는 구조에서, GMP 부담으로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경우 의료 현장에 미치는 파급력은 크다.
김 과장은 “유예는 근본적인 해답이 될 수 없었지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은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매개변수 기반 출하는 단기적 부담 완화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품질 수준을 끌어올리면서 공급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구조적 해법으로 제시됐다.
다른 무균제제로의 확산 가능성
이번 제도는 최종 멸균 공정을 거치는 대용량 수액제에 한해 적용된다. 무균 충전 공정을 거치는 일반 무균 주사제에는 기존대로 무균시험이 요구된다.
다만 김 과장은 “최종 멸균 제품이라면 대용량 여부와 관계없이 선택지로 검토할 수 있다”며 “이번 사례는 다른 무균의약품 분야에서도 참고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식약처는 이번 사례를 ▲국내 최초 매개변수 기반 출하 실적용 ▲경쟁사 공동 참여 ▲규제당국과 업계의 전 과정 협업이라는 세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단순한 제도 변경을 넘어 GMP 분야에서 정부와 산업이 협력하는 방식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김 과장은 “내년에도 예산을 확보해 이러한 협업 플랫폼을 확대할 계획”이라며 “GMP는 여전히 개선해야 할 영역이 많은 만큼 이번 경험을 다른 분야로 확산시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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