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과 기업이 한 공간에서 연구하고 기술을 실증하며, 상용화까지 이어가는 ‘개방형실험실(Open Lab)’ 사업이 보건의료계 혁신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병원은 임상시험 인프라와 연구 역량을, 창업기업은 아이디어와 기술을 제공하며, 상호 보완적인 협업 구조를 통해 의료기술 산업화를 추구한다. 2025년도 보건복지부 개방형실험실 운영사업에는 6개 병원이 새롭게 선정됐다. 이 중 인하대병원은 ‘로봇‧우주‧데이터’에 특화된 독자적 모델을 제시하며 주목받고 있다. 후발 주자임에도 빠른 기업 유치와 실적 확보를 통해 개방형실험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인하대병원은 국내 유일 민간 우주항공의학센터를 포함해 전주기 R&D 인프라, 교원 창업 문화 등 차별화된 자원을 기반으로 인천 지역 바이오산업 생태계 거점 병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병원은 송도 전임상센터, 인하대학교, 인천광역시와의 협력체계를 통해 기업 유치, 임상 자문, 공동연구, 기술 사업화까지 전주기 연계를 구현 중이며, 20개 이상 스타트업이 참여해 운영되고 있다. 데일리메디는 유준일 인하대병원 의생명연구원 전임상평가센터장을 만나 ‘인하형 오픈이노베이션’의 구체적 내용과 향후 비전을 청취했다. [편집자주]
“실증 기반 차별성, 기업 유치로 증명”
“인하대학교병원은 실질적인 차별성과 실증 기반 모델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유준일 센터장은 인하대병원이 개방형실험실 첫 네트워킹 행사에서 참여기업 20개 외에도 10개 기업이 추가 참여 의사를 전달한 사례를 언급하며, 기존 기관들과는 다른 접근방식을 설명했다.
그는 “기존 병원들은 과거 입주기업을 연장하거나 유지하는 방식이 많았지만 우리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 빠르게 참여 수요를 끌어냈다. 인프라와 맞춤형 자문 구조가 주효했다”고 말했다.
현재 인하대병원 개방형실험실에는 수술로봇, AI 기반 진단, 전임상 실험 등 고도화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20여 곳이 입주해 있으며, 임상현장과 연계한 실증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우주·로봇·데이터 등 실질적 공동연구 강화”
유준일 센터장은 인하대병원의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항공우주 기반 특화 R&D ▲수술·물류 중심 로봇 기술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연계 등 3개 축으로 설명했다.
그는 “한진그룹, 대한항공이라는 산업 기반과 연계해 우주의학, 자동화 물류 등 다양한 산업기술과 접점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를 병원에 접목시켜 수술 자동화, 정밀진단, 스마트병원 구현 등 협업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입주기업들은 수술 자동화 시스템, 전임상 실험 플랫폼, 클라우드 기반 AI 분석 등을 중심으로 병원과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며, 실제 질환 예측모델 개발과 실증 실험도 이뤄지고 있다.
“넥스트바이오 이후 교원 창업 문화 확산 추세”
인하대병원의 또 다른 강점으로 교원 창업 문화를 꼽았다.
대표 사례인 ‘넥스트바이오메디컬’은 소화기내과 이돈행 교수가 창업한 기업으로, 코스닥 상장과 글로벌 수출까지 이뤄낸 바이오벤처다. 지난해에는 대한의학회 이민화 창업학술상도 수상했다.
그는 “넥스트바이오 이후 병원 내 창업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확산됐다. 실제 창업을 경험했거나 산업화에 참여한 임상의들이 기업과의 중개연구 및 실증 설계에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 역시도 전임상센터장, 의료기술산업화단장, 개방형실험실 부단장을 겸직하며 기업 수요에 따라 병원 인프라와 교수진을 연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유준일 센터장은 “전임상센터 및 창업지원단, 인하대학교, 산업체가 병원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가능한 구조”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창업 플랫폼 목표로 병원 중심 네트워크 조성 추진”
인하대병원이 지향하는 개방형실험실 최종 목표는 ‘글로벌 바이오 창업 플랫폼’이다. 보스턴 ‘LabCentral’, 토론토 ‘MaRS’ 등에 버금가는 창업의 출발점이자 연결 허브가 된다는 목표다.
유 센터장은 “송도는 단일 도시 기준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 생산기지다. 인하대병원 단독 역할 보다는 서울대병원, 청라아산병원, 길병원 등과 네트워크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병원 성과를 넘어 국내 바이오산업 생태계 전반에 창업 인프라를 확산시키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기술사업화 주체로서 병원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그는 “병원이 공간과 인력, 데이터를 제공하지만 병원 자체가 얻는 혜택은 제한적이다. 기술지주회사 설립 및 창업 지원기구 확대, 교원 창업 규제 완화 등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특히 공공의료 재정과 R&D 재원의 분리 설계 필요성도 강조했다. “의료는 공공성과 시장성이 공존한다. 병원이 기술개발에 참여하려면 재정 구조와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개방형실험실은 단순한 인큐베이팅 공간이 아니라 병원이 연구, 교육, 산업화를 아우르는 전략기관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라며 “인하대병원 시도가 향후 모범이 되길 기대한다”고 작은 희망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