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의사들이 보내는 새해 '희망 편지'
2024.01.03 11:58 댓글쓰기




[신년특집 下] 

"새벽에 걸려 온 환자 전원 전화"

이대목동병원 대장항문외과 정순섭 교수


어제도 새벽에 대장암 천공 환자가 전원 온다는 전화를 받았다.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있는 병원에 근무하는 외과의사 숙명이다. 야간이나 휴일 응급수술 절반 이상은 장천공, 장폐색, 장출혈 등 외과의사, 특히 대장을 전공하는 대장항문외과 영역이다.


분초를 다투는 초응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50대 후반인 내가 외과의사를 지망할때는 그래도 사명감도 있고 나름 인기가 있는 분야였다.


하지만 이제 의료환경이 변해 지원을 꺼리는 전공이 되고 말았다. 응급수술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그 고생에 비해 대가가 너무 참혹하기 때문이다.


올해 대장항문외과 분과전문의가 겨우 10명 배출됐다. 외과를 지원하는 의사는 확연한 감소세다. 그들마저도 대부분 응급환자가 없는 유방, 갑상선 분야를 선택하고 있다. 우리나라 필수의료 앞날이 암울할 뿐이다. 필수의료 관련 수술 수가를 대폭 인상해 지원자가 늘어 병원에서 더 많은 고용을 하고 당직이나 응급수술 강도와 빈도를 분산시키는 길만이 필수 응급수술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2024년 갑진년 새해에 세 번째 개정된 상대가치제도가 새로이 시작된다. 외과 의사들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인다. 이제 기존의 틀을 깨고 새 판을 벌여야 할 때가 됐다. 새해에는 외과 의사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 전해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필수의료 현장 회생되기를 새해 소망해본다"

일산차병원 산부인과 김의혁 교수


필수의료 붕괴는 사실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필수의료인 산과를 일선에서 담당하는 의사의 체감도는 실로 참담하다.


임상현장에서 분만을 하려는 산과 의사를 찾기 어렵다. 또 의대 졸업생들 중에서 산부인과를 지원하는 비율은 점점 줄고 있다.


필수의료 붕괴 이유는 ▲수가 ▲의사 정원 ▲척박한 진료환경 등 다양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의료분쟁으로 인한 문제들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해결할 방법을 모색해 주길 바란다.


불리한 의료환경 속에서도 맡은 바 일들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산모와 신생아 건강을 위해 애쓰며 일하고 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면 의사로서 사명감과 의지가 꺾일 수 밖에 없다.


필수의료 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방법은 없겠지만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의 개인적 희생만을 요구하지 않고 앞으로 보건의료 인프라가 잘 구축되게 하고 제도가 보완돼 많은 의사가 지원하는 산부인과가 되길 바란다.


"소아과만의 행복 가능할까? 10년 후 희망 기대"

중앙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이대용 교수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된 지 20년 동안 그 어떤 때보다 힘든 한 해였다.


진료 자체의 어려움이라면 당연히 감당할 수 있으나 부족한 인력과 그로 인해 진료를 제한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과 쉬지 않고 반복되는 구인·구직 어려움은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였다.


그럼에도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한 것을 단 한번도 후회해본 적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외래 진료실에 들어오는 아기들은 여전히 사랑스럽고, 이제 막 말을 배우는 꼬맹이들은 너무나 예쁘다.


진료과 특성상 초중고 학생들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 학업 등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 모습은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들을 진료하고 치료하는 자체는 보람된 일이다. 단순히 수명 연장이 아닌 아픈 생명을 지키고 70~80년 삶을 지속하고, 또 다른 생명을 반복할 수 있게 한다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도 있다.


2024년 새해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당장 1월, 2월 응급실과 병동 운영을 어찌해야 할지, 당직은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해결책이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가 지나 소아청소년과에 입문하는 새내기 의사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10~20년 뒤에는 나아질 거라는 믿음도 있다.


"필수의료는 365일 24시간 국민들을 지키는 필수 분야"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윤유석 교수


지난해는 대한민국 의료체계 지속가능성에 대해 정말 많은 담론이 오간 한 해였다.


덕분에 우리 사회에 ‘필수의료’라는 화두가 던져지며 많은 사람들이 의료계의 어려움을 알기 시작했고, 정부나 시민사회 등 각계에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사실 필수의료라는 게 특정한 의료 영역을 뜻하기 보다는 365일 24시간, 수도권, 산간벽지 그 어떤 시간과 장소든 국민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데 필요한 분야라면 그 모두가 필수의료다.


그런 의미에서 2024년 새해에는 우리 사회가 필수의료에 대해 보다 폭넓은 관점으로 다가서서, 외과를 비롯해 제도적·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모아지고,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됐으면 하는 소망이다. 


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에서 헌신하는 의료진을 제대로 지원하고, 이들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항상 환자들을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는 일선의 필수의료·응급의료 의료진들, 외과의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2024년 갑진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장 응급의료 전문성 존중 상실돼 너무 안타까워"

동아대병원 응급의학과 정진우 교수


재난현장에 투입된 여러 직종 전문가들은 제한된 정보와 혼란 속에서 빠른 판단을 강요받는다. 상황이 종료되고 난 뒤에 일어났던 일을 되짚어 보면 아쉬운 점들을 발견할 수 있고, 그런 반성을 통해 다음에 발생할 수 있는 재난에 대해 더 잘 준비할 수 있다. 


응급환자, 중증환자를 병원 내에서 진료하는 과정도 비슷하다. 최종 진단이 나오기 전까지는 제한적인 정보에 의존해서 진단과 치료 방침을 세워야 하고, 그 와중에 급격한 상태 악화를 막으면서 환자의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소위 ‘바이탈’이다. 


최근 인천지법은 긴급한 처치를 시행하는 15분 동안의 활력 징후를 차트에 기재하지 못한 것을 두고 환자 감시를 소홀히 한 '과실'로 판단했다. 이제 환자 치료보다 차트 작성을 중요시하라는 말이다. 응급의학을 하는 모든 의사들이 어이없어 하고, 분노하고 있다.


응급처치 교육에서는 가장 먼저 현장이 안전한 지를 확인하고, 안전하지 않으면 접근하지 않도록 가르친다. 응급환자와 중증환자를 진료하는 의료현장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 의사들이 떠나간다면 막을 도리가 없다. 


사명감을 갖고 응급의료를 선택했던 이들이 떠난 자리를 ‘낙수 의사’로 채울 수도 없을 것이다. 2024년 청룡의 해에는 응급의학 현장 전문가들의 전문성이 더욱 존중받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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