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떠나는 교수들…"명예·자부심 상실"
중증환자 마지막 보루 위태…줄사직 이어지면 '필수의료' 타격
2023.12.22 11:01 댓글쓰기



대학병원 교수들의 사직이 줄을 잇고 있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에 비유되던 대학병원 잔류는 옛말이 된지 오래다. 


명예와 자부심의 표상이던 매력이 상실되면서 젊은의사들은 아예 교수 꿈을 꾸지 않고, 애써 버티던 현직 교수들마저 속속 대학병원을 떠나는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이는 대학병원 교수들이 진료와 연구에 치여 워라벨을 포기해야 하는 게 일상이고, 개원의와의 수입 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자괴감에 빠지는 구조에 기인한다. 중증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대학병원 의사들의 줄사직은 결국 필수의료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대학병원을 떠나는 교수들, 그 먹먹한 현실을 조명한다.


스승도 제자도 ‘개원시장’ 진출 러시


대학병원 교수들의 사직행렬이 심상찮다. 후학에게 의술을 전수해야 할 중년교수부터 임상현장에서 발군의 역량을 발휘해야 할 젊은교수까지 광범위한 이탈에 우려가 큰 상황이다.


과거 대비 확연하게 높아진 업무 강도에 개원가 대비 낮은 수입, 교수를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 변화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대학병원 교수들의 줄사직 현상이 특정 진료과나 지역과 무관하게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부분이다.


대학병원 교수들 사이에서는 “먼저 나간 사람이 승자”라는 말이 나오는 만큼 향후 교수들의 이탈은 계속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 올 상반기 서울 대형병원 소속 마취통증의학과 의료진이 대거 이탈하면서 필수의료 핵심인 수술실 마취 공백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서울 소재 빅5 병원 중 한 곳인 상급종합병원에서 한 학기동안 5명의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병원을 떠났다.


뿐만 아니라 인근 대학병원에서도 마취통증의학과 의사 2명이 사직하는 등 수술실을 등지는 마취과 의사들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격무의 연속인 수술실 마취를 포기하고 미용·통증 분야 등 개원가로 향하면서 남은 이들은 과로에 시달리다가 사직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이 심화되면 결국 대학병원 수술이 줄어들 수 밖에 없고 이는 긴급수술 및 암(癌) 등 국민들 건강과 직결될 수 있어 우려를 자아낸다.


지방 대학병원들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개원가는 물론 수도권 대학병원으로의 이탈이 이어지면서 공동화 현상에 신음하는 중이다.


대전의 한 대학병원 원장은 “과거에는 누구를 남겨야 할지 고민했다면 최근에는 누가 남겨질지 걱정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개원을 택하는 교수들은 물론 수도권 대학병원으로의 이동까지 겹치면서 그야말로 지방 대학병원들은 정상적인 진료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우러름→측은함, 바뀐 시선 느끼며 절망


이러한 대학병원 교수들의 사직행렬은 과거 대비 현격하게 달라진 상황에 기인한다. 병원과 스승으로부터 선택받는 게 영광이던 시절은 옛날 얘기가 된지 오래다.


진료와 연구에 대한 압박은 날로 심해지고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당직은 일상이 돼 버렸다. 우러름의 대상이던 대학병원 교수가 이제 측은함의 대상이 된 상항이다.


그렇다고 이를 상쇄시킬 정도의 보상이 뒷받침 되지도 않다 보니 대학병원을 등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일찍이 개원의 길을 택했던 선후배들과의 수입 격차에서 오는 자괴감을 극복할 수 있었던 ‘명예’와 ‘자부심’마저 무너지면서 대학에 남아있을 이유가 사라진 셈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과거에는 보람과 사명감, 자부심으로 버텼지만 최근에는 이 마저도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삶의 질을 내던지면서 계속 잔류를 해야할지 고민”이라고말했다.


대학병원을 떠나는 교수 상당수가 진료와 교육, 연구의 정점에 있는 50대 중후반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는분석이다.


후학들에게 의술(醫術)을 전수하고 연구를 지도해야 할 핵심 인력들이 이탈하면서 ‘진료, 교육, 연구’라는 대학병원 고유 기능이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대학병원 교수는 “의과대학에서 교수는 단순한 진료자원이 아닌 의료인 양성의 중요한 존재”라며 “그들의 이탈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젊은의사들 역시 의과대학 교수 선호도가 확연히 떨어지고있다.


의과대학 교수 직함을 얻기 위해 지방도 마다하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개원을 하거나 종합병원 봉직생활을 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방 국립대병원 교수는 “내과 교원 자리가 비어 충원 중이지만 지원자가 없다”며 “펠로우들을 설득해 보고 있지만 모두 고사하는 모습을 보며 자괴감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종합병원 보다 낮은 급여에 업무 강도는 더한 의대교수를 고사하는 것은 당연한지 모르겠다”며 “기존 교수들도 떠나는 마당에 젊은의사 지원을 바라는 게 욕심”이라고 덧붙였다.


중증 치료 의료체계 붕괴 시작…의료대란 임박


문제는 중증환자를 진료해야 할 대학병원 교수들의 사직행렬은 향후 의료체계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는 점이다.


대학병원 교수 감소는 국민의 생명권과 직결되는 것은 물론 의료질 저하로 인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한국의료의 위상도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특히 수술 등 필수의료 부분이 가장 걱정이다. 이미 의사들의 수술실 이탈이 가속화에 따른 의료공백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한 대학병원에서 중증 응급수술을 하던 교수 2명이 잇따라 사직하면서 해당 병원은 부득이 해당 수술을 중단해야 했다.


이후 인근 종합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면서 의료진의 업무 과부하가 이어졌고, 결국 해당 종합병원 의사들도 그만두면서 이 지역에서는 더 이상 수술받을 곳이 없어졌다.


수술실 마취도 심각한 상황이다. 필수의료 영역인 심장 및 소아, 중환자, 분만 등의 수술실 마취를 기피하면서 수술대란 상황에 직면했다.


특히 분만 및 소아마취 분야는 이미 붕괴가 시작된 상황이다. 


분만 특성상 24시간 대기가 일상이고, 무과실 의료사고로 인한 소송이 빈번해 마취과 의사들 사이에서는 기피 0순위다.


또한 저출산 여파로 소아마취를 경험하고 수련할 기회가 부족해지면서 전문의 육성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고, 마취과 전공의들도 고난도 마취 분야를 기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만간 중증수술을 받기 위해 해외로 가야 한다”는 의사들의 푸념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대학병원 교수 사직행렬에 따른 의료공백 문제의 해결책을 단순한 의사수 확대에서 찾으려는 정부희 행보에 강한 반감을 나타냈다.


지금도 중증의료, 필수의료를 수행할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그들이 본연의 영역을 등지려는 이유를 들여다 보고 그에 맞는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의료계 한 원로는 “대학병원 교수들의 이탈현상은 국내 의료체계가 막다른 길에 봉착해 있음을 의미한다”며 “더 늦기 전에 바로잡지 않으면 의료대란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의사수 확대와 같은 땜질식 정책이 아닌 본질을 꿰뚫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백년대계(百年大計) 각오로 작금의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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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2000
  • 마취과 12.24 09:20
    마취과 단체로 사직한 그 병원은 아직도 특정대학 출신을 뽑으려고 혈안인 그 병원이죠? 특정대학 출신 중 잘난 사람들은 그 대학에 남고 이류나 삼류쯤이 그 병원에 많이들 가는 것 같던데 그병원 출신들은 능력이 없나? 교수들이 수련을 못 시켰나?
  • Jijilee 12.25 08:13
    겸직교수가 임상교수에게 자기들이 하기 싫은 업무를 맡기는 등 갑질을 했다는 후문입니다. 요즈음 임상교수나 촉탁교수를 동료로 인정하고 함께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겸직교수도 있고, 촉탁교수는 일정량의 일만하고 퇴근하든지 incentive제도로 업무량이 늘어나면 봉급이 늘어나는 것이 당연한 것인대 이것을 시기하는 겸직교수때문에 불협화음이 벌어지는 병원이 있습니다.
  • ㅋㅋㅋ 12.24 09:18
    교수들의 자정노력. 수가현실화 노력도 필요할듯. 연구도 안하고 논문도 안쓰는 교수들이 수두룩하고, 학회에서는 특정세력이 학문의 다양성을 저해하고 아직도 학연으로 교수를 뽑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한 교수사회도 할말이 없을 겁니다.
  • 잘 되었네 12.22 19:23
    현 정권과 여당이든 야당 정치질하는 놈들  의대정원 늘리려하는데, 선생노릇 하는 교수할 사람조차 없는데 뭔 의대정원 타령이냐? 의협도 추운겨울날 쓸데없이 개고생하지말고 의협에 비협조하는 대학병원 공격하고 족치라! 대학교수가 죽을 맛일수록 의대정원문제는 스스로 해결될거같다.
  • 지질이 12.22 12:51
    대학교수가 되면 과거에는 권력, 재력, 경외심의 대상이었으나 김영란법으로 봉급 외에는 수입이 없고 수련의의 구너리 창조로 권력은 사라지고 의무만 남은 현실입니다. 더구나 연봉제 개념의 봉급으로 인해 응급수술을 하여도 왕복차비만 받는 현실에 워라벨은 남의 얘기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교수들의 봉급체계를 연봉제에서 수당제로 바꾸어 연장자가 아닌 일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또한 업무량을 정하여 정해진 일을 하고 나면 자유롭게 나머지 시간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젊은 사람들의 의견이 무조건 반영되어야 합니다.
  • 금감원 12.22 12:26
    모든게 금감원의 실손보험 덕분입니다.

    금감원께 경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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