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원 진료실에는 '녹음기' 수술실에는 'CCTV'
대학병원 설치 분주…"의료진 방어진료 불가피하고 기피과 전공의 지원율 악영향"
2023.11.03 05:09 댓글쓰기

의료법 개정에 따라 국내 의료기관들이 수술실 CCTV 설치 작업으로 분주한 가운데, 병원계에서 “득보다 실이 크다”는 불만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전신마취 등 환자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하는 국내 의료기관들은 오는 25일부터 시행되는 의료법 개정안에 따라 의무적으로 수술실 안에 CCTV를 설치 및 운영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CCTV 설치 위치는 물론 녹화시점, 녹음 여부, 열람, 보관 등 내용이 담긴 세부적 운영기준안을 마련해 전국 의료기관 및 유관단체에 전달했다.


이에 전국의 대학병원들은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수술실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설치·운영기준’안에 기반해 기존 설치된 CCTV를 변경하거나 새로 설치했다.


의료계 “이 정책은 득(得)보다 실(失) 크다”


서울의 대표적인 A상급종합병원은 최근 수술실 31대, 분만실 내 수술실 1대 등 총 32대의 CCTV 설치를 완료했다.


A병원 관계자는 “현재 CCTV 설치 등 하드웨어 부분에 대한 준비는 끝났다”며 “의료법을 준수하기 위해 시행일에 맞춰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완이 철저해야 하는 만큼 영상물 관리에도 많은 신경을 쓰려 한다”며 “환자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내부적인 프로세스를 점검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수도권의 또 다른 B상급종합병원 역시 수술실 CCTV 설치를 완료해 준비를 마쳤다.


이들은 “최근 모든 수술실에 복지부 기준에 맞는 CCTV를 설치해 운영 대기 중”이라며 “병원에 CCTV 설치 의무화 관련 게시물을 부착하고 환자들에게도 안내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대학병원 수술실 내 CCTV 설치가 의무화되며 병원 곳곳에서 교수들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B병원 관계자는 “CCTV 설치와 관련해 교수진들 사이에 부정적 의견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CCTV로 수술 과정을 녹화하면 방어진료를 피할 수 없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라고말했다.


그는 “특히 수술실 CCTV 설치는 제약회사 및 의료기기업체 영업사원 등의 대리수술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 큰데 이러한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대학병원까지 왜 의무적으로 CCTV를 설치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분위기에서 먼저 수술 과정을 녹화해달라고 요청하는 환자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며 “결국 대학병원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는 득(得)보다 실(失)이 많은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수술실 CCTV 설치, 필수의료 붕괴 가속화 부채질”


수술실 CCTV 의무 설치는 특히 고난도 수술이 많은 외과의사들 반발이 크다.


서울 C상급종합병원 외과 교수는 “지금도 환자 치료 결과를 두고 의사에게 잘못을 물어 거액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는 상황 속 수술실 CCTV 설치는 필수의료 붕괴 가속화에 부채질을 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진료실에 녹음기를 켜고 들어오는 환자가 늘고 있는데 의사 입장에서는 더욱 조심스러워지고 소극적으로 진료에 임할 수밖에 없다”며 “녹음기도 영향이 큰데 CCTV 설치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게다가 지금도 전공의들에게 인기가 좋은 대형병원 몇 곳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수련병원이 외과 전공의가 없어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며 “수술실 CCTV 의무 설치가 외과 전공의 지원율을 더욱 떨어트릴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한의사협회는 이러한 의료계 반발을 고려해 지난 5일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서와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법안이 시행된다면 의료인은 후유증 등의 발생 위험을 염려해 적극적인 치료를 기피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우리 국민이 최선의 진료를 통해 건강을 회복하거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