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우, 내일은 교수될까···기약없는 기다림
불투명한 미래·살벌해지는 개원 등 녹록치 않은 환경으로 답답
2016.04.06 20:45 댓글쓰기

[기획 2]대한민국에서 의사가 되기 위한 작업은 초등학교부터 시작된다. 초중고 내내 경주마(馬)처럼 눈가리개를 하고 앞만 보고 달린다. 이때는 부모가 보호자이자 감독이다. 의과대학 입학 후 의대생, 전공의, 군대, 전임의를 거쳐 교수를 향하는 길목마다 나름대로 각기 다른 종류의 고충이 따른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전임의 세상은 말 그대로 ‘정글’이다. 심지어 의대생은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전공의는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그들의 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교수는 학교가 정년 등을 보장하며 보호막을 쳐주지만 전임의는 독자생존 해야 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기다림은 필수다. 그들의 고단한 기다림을 인터뷰를 기반으로 재구성했다. 
 



#. 4년 차 전임의 A씨 : “오늘도 기다리는 이유는”

과마다 상황이 많이 다를 것이다. 내과는 개원하면 다룰 수 있는 질환이 한정적이다. 뭔가 의심스러워 추가적 정보가 필요해도 그 안에서 충족하지 못한다. 그저 더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밖에 못한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한정적 역할에 그치는 의사가 되고 싶지는 않다. 또, 요즘은 내과 의원이 너무 많다보니 환자들의 태도가 예전과 많이 다르다. 의사도 서비스직으로 점차 변해가고 있다. 그나마 여기 있어야 “교수님” 소리 들으며 나름의 명예와 자존감을 갖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개원가에 나가면 근처 병원과 처절하게 경쟁해 살아남아야 한다. 곧 교수자리가 나지 않을까...


#. 3년 차 전임의 B씨 : “남자 동기 경력과 왜 엮이지?”

최근 몇 년 전부터 남자 군의관 기간이 경력으로 인정되며 덩달아 여자 전임의 경력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남자의 군복무 동안 여자는 전임의 경력 3년을 채운 후 조교수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남자 군대 기간이 경력으로 인정되며 그들이 임상에서 적응할 수 있는 1~2년의 시간이 더 필요해졌다. 형평성 차원 때문인지 덩달아 여자 전임의 기간도 늘었다. 그 전에는 사실 여자여서 혜택을 보는 부분이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새 이렇게 바뀌다보니 조금은 억울하다. 또한 같은 경력이라면 여자보단 남자를 더 선호한다. 전임의 기간도 늘었는데 선택 또한 받기 어려워졌다.


#. 2년 차 전임의 C씨 : “똥차는 언제 빠지나”

위아래 모두 견제된다. 같이 고생하는 처지지만 모두가 교수 자리를 노리고 있다면 경쟁자일 수 밖에 없다. 바로 위 선배가 교수 자리를 얻는다면 다시 TO가 생기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정말 능력 있는 선배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선배가 먼저 교수가 되면 배가 아플 것 같다. 정말 미안한 생각이지만 가끔은 선배가 개원가로 나갔으면 하는 마음도 생긴다. 가끔은 교수님과 진행 중인 논문 이야기를 부풀리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한다. 속보이는 일이라도 어쩔 수 없다. 동시에 1년차 후배가 교수님에게 갖은 아양을 떨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그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 4년 차 전임의 D씨 : “가장 쫄깃한 기다림”

가장 쫄깃한 기다림은 역시 논문을 제출한 학술지의 답변 메일이다. 연차가 쌓이고 다른 과나 병원 동료들이 교수에 임용되는 과정을 보며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논문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그간 1년에 한 편씩은 꼭 쓰려고 노력했다. 질도 질이지만 양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논문을 완성하면 1급 학술지부터 아래로 내려오며 차례로 제출해본다. 동시에 두 곳에 투고할 수 없기 때문에 한 곳에 보내고 거절 답변 받고, 또 다른 곳에 보내는 작업을 반복한다. 나의 경우 등급이 높은 곳일수록 답 메일도 빨랐다. 느린 곳은 3개월까지도 걸린다. 그러다 리뷰어(reviewer) 답변이 오면 쾌재를 부른다. 학술지에 실릴 가능성이 큰 것이기 때문이다. 리뷰어 주문을 보완하며 두세 번 메일을 주고받으면 그제야 학술지에 실린다. 좋은 학술지에 실릴수록 책임 저자인 교수님의 만족도도 높다. 나도 교수님도 윈윈(win-win)이다.


#. 5년 차 전임의 E씨 : “교수님! 학회장 되시면...”

재직 중인 곳은 BIG5 병원이 아니다. BIG5에서 전임의를 하면 다른 병원 교수직이 났을 때 지원해서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 곳에서 자리가 나지 않으면 다른 병원이라도 물색해야 하는데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가 높은 학술지에 실린 논문도 없다. 전임의 생활을 5년 정도 하다 보니 이제 교수님 인맥을 기대하게 된다. 그동안 교수님 진료, 연구 수발 모두 전적으로 담당했다. 교수님이 학회 등에서 다른 교수님과 활발히 교류하시며 지금의 내 고민을 덜어주길 기다릴 뿐이다.


#. 2년 차 전임의 F씨 : “무급 전임의, 하염없는 기다림”

담당교수가 정형외과 분야 명의(名醫)다. 교수님 밑에서 일하려는 전임의가 워낙 많아 무급으로 일하고 있다. 원래 무급 전임의가 좀 있었는데 이제는 외과 쪽에 좀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년 만 더 일하고 개원할 계획이다. 개원에 앞서 교수님 성함과 병원 이름, 경력이 필요했다. 우리나라 사회가 워낙 간판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는 필수 과정이다. 물론 지금 경제적 상항은 좋지 않지만, 미래를 보고 일한다. 유급 전임의들 역시 내가 개원을 원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견제가 없다. 경제적 압박은 있지만 마음은 편하다.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