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간호법·의사면허법 저지를 위한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특별위원회가 지난 3월 4일 발대식과 함께 공식 출범했다. 박명하 비대위원장을 필두로 비대위원을 인선하며 조직 구성을 완료했다.
이후 비대위는 국회 본회의 일정에 맞춰 빠르게 전략 수립에 들어갔다. 장고 끝에 투쟁 로드맵이 탄생했다.
야심차게 내놓은 로드맵을 살펴보면 3월 23일 국회 본회의가 열리기 전까지 비대위는 간호법·면허취소법 철회를 요구하며 철야 농성, 더불어민주당사 앞 전국 동시 집회, 단식 투쟁 등을 이어간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의료계의 간절한 호소와 분노의 목소리를 듣고 해당 안건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거나 상정한다고 하더라도 숙고하길 바라는 투쟁 의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의료계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당 법안들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가결될 경우 전국 대규모 집회 및 보건의료직역 단체장들의 단식투쟁이 예정돼 있다.
이와 달리 해당 법안들이 본회의에 미상정된다면, 추후 있을 국회 일정에 따라 투쟁 행보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하지만 비대위 투쟁 로드맵을 들여다보면서 '이것으로 충분할까'라는 우려가 상당하다.
'국회 압박→국회 법안 논의 및 결정→법안 통과 시 투쟁'은 기존 의협 이필수 집행부가 해온 투쟁 방식과 사실상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여기에 이필수 집행부는 '소통'을 한스푼 가미했다.
문제는 이 패턴이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 '법안의 무덤'이라 불리는 법안심사 2소위에서 두 법안이 부활하는 충격적인 광경을 모두가 목도했다.
분노한 의사들은 기존 집행부로는 해당 법안 저지가 어렵다고 판단, 비대위 체제 전환을 요구했다. 이런 맥락 속에서 탄생한 비대위 전략은 기존 집행부와 차별화돼야 한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꾸린 새 부대가 기존 군대와 유사한 방식으로 전투한다면 승리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간호법과 의사면허법 투쟁에는 외부 변수도 있다. 고래 싸움에 낀 새우 신세처럼 여야 간 또는 야당 내 정쟁의 격랑 속에 휩쓸려 곤혹을 치르고 있는 측면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구명하기 위한 법안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이에 의료계 일각에선 해당 법안들이 가결되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기대를 건다는 의견도 상당히 있다.
비대위 로드맵에도 투쟁 무대를 국회에서 용산으로 이동한다는 계획이 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공짜 점심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의료계가 가장 우려하는 의대 정원 확대 및 의대 신설과 맞교환하는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당이 수세에 몰린다면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쓰일 수 있다.
보건복지부 역시 의료계와 정부 간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의대 정원 확대 안건을 논의하고 싶어 한다. 지자체들마다 의대 유치에 목을 매고 있으며, 카이스트 의대 신설에 윤 대통령도 관심을 내비쳤다.
이런 정치공학적인 측면까지 고려한다면 비대위는 현행 투쟁 로드맵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물론 투쟁 로드맵이 대외용 버전이라 오픈되지 않은 중요한 내용이 비장의 카드로 준비돼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공개된 내용과 비공개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전략 보강이 필요하다. 의료계가 간호법, 의사면허취소법을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는 각오가 있다면 말이다.
1인 시위, 삭발, 철야 농성, 궐기대회, 단식, 파업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으려면 비대위는 더 치밀하게 계산하고 판세를 읽으며 움직여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