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영원한 화두 '학점·순위&의사국시 응시료'
연대·성대의대 등 '절대평가' 도입···대한민국 의학교육 혁신 계기
2018.12.21 11:28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기획 上]대한민국 최고 수재들이 모이는 의과대학. 입학만으로도 ‘성공 인생’을 호언하지만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그들만의 힘든 속사정은 존재한다. 내로라하는 인재들의 집합인 만큼 내부 경쟁은 이전 학창시절과 견주기 어렵다. 전국 상위 0.1%에 속하는 이들 역시 순위 경쟁을 치러야 한다. 1등을 놓치면 2등이 되고, 2등이 존재하면 3등으로 밀려나는 상대평가의 가혹한 현실에 좌절하는 이들이 적잖다. 하지만 최근 의과대학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ABCD’, ‘1234’로 점철되던 의과대학 평가 시스템은 지난 2014년 연세의대의 파격적인 행보로 변화의 소용돌이를 맞았다. ‘Pass’와 ‘Non Pass’라는 간단명료한 절대평가 방식으로의 변화였다. 전국 상위 0.1%에 속하는 우수한 인재들에게 순위를 매기는 기존 상대평가는 무의미하다는 자성의 시발이었다. 그로부터 4년. 의학교육 현장 곳곳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순위가 아닌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간단명료한 절대평가 방식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한창이다.
‘의사 국가시험 응시료’는 의대생들에게 또 다른 화두다. 우리나라 의사국시 응시료는 100만원에 육박한다. 변호사 20만원, 공인회계사 5만원 등과 비교하면 어마무시한 금액이다. 올해 초 의사국시 시험장에 등장한 ‘흙수저는 환자를 볼 자격도 없나요?’라는 피켓이 의대생들의 심정을 말해준다. 사실 의사국시 응시료 문제는 지속적으로 논란이 됐지만 좀처럼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당사자인 의대생은 물론 국회의원들까지 나서 응시료 현실화를 지적했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다. 특히 의사국시를 담당하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 법인화만 되면 국고지원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매년 시험 시즌만 되면 반복되는 의사국시 응시료 문제, 이번에는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편집자주]

 

지난 2014년 연세의대가 상대평가를 버리고 절대평가 도입을 결정했을 당시만 해도 의학계는 우려감이 지배적이었다. 등급과 등수가 당연시되던 분위기에서 연세의대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였다.

의과대학은 물론 국내 모든 대학 중에서도 최초의 시도였던 만큼 우려가 상당했다. 특히 상대평가에 익숙한 선배나 스승들의 반감이 컸다.

기성세대들은 절대평가를 도입할 경우 학생들이 단지 ‘Pass’를 받는 것에만 안주해 의학지식들을 온전히 습득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합격과 불합격만 존재하는 평가체계에서는 대규모 유급 사태 가능성이 있고, 하향평준화로 인해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손해를 볼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4년 간의 추적관찰 결과 연세의대 학생들의 자기주도학습, 학업동기 등 학습태도가 유의미하게 높아졌다.

성적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와 상대적 좌절감 해소는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절대평가 도입 후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한 연세의대는 의사 국가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그간의 우려와 의심어린 시선들을 말끔히 씻어냈다.

실제 지난 1월 치러진 의사국시에서 연세의대 합격자의 평균 점수는 301.2점으로 전체 합격자 평균점수 286.3점 보다 높았다. 합격률 역시 97.7%로, 전국 평균 95%를 웃돌았다.

“연세의대 졸업장을 의사가 되기에 충분한 역량을 갖췄다는 보증수표로 만들겠다”는 공언이 확인된 셈이다.
절대평가 가능성을 확인한 다른 대학들도 잇따라 평가시스템 개혁을 선언하고 나섰다.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이 지난 2016년 연세의대에 이어 두 번째로 절대평가를 도입했고, 2018년에는 울산의대와 성균관 의대가 절대평가 도입을 선언했다.

의과대학의 성공에 고무된 연세대학교는 오는 2019학년도부터 아예 모든 학과에서 상대평가를 없애고 과목별 특성에 따라 성적 평가 방식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성균관의대 최연호 학장은 “의사로서 최소한의 자질을 갖췄는가만 확인하는 절대평가를 통해 불필요한 경쟁을 없앨 것”이라며 “의대에 들어온 우수한 인재들을 성적으로 줄세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선구자 연세의대, 철저한 준비로 제도 안착

연세의대가 절대평가를 안착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철저한 사전준비에 있었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우려가 적잖았던 만큼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연세의대는 교육과정개발사업단을 발족시켜 3년 동안 준비 했다. 교수 등 연구진만 60여 명이 참여했고, 절대평가를 시행 중인 미국 상위 25개 의대와 일본 주요대학들을 벤치마킹했다.

무엇보다 교육의 질 제고에 집중했다. 우선 평가기준은 모두 과목별로 책임교수들에게 맡겼다. 필기시험의 경우 90점 이상을 맞았더라도 반드시 알아야 할 부분에서 틀리면 불합격 처리했다.

임상실습교육도 강화했다. 본과 3학년부터 시작됐던 임상 실습을 본과 1학년으로 조정했다. 학년별 실습 커리큘럼을 만들어 단계를 통과해야 진급이 가능하도록 했다.

학생들의 연구역량 강화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본과 1, 2학년에 집중됐던 기초의학 교육을 전학년으로 확대, 실시했다.

모든 학생들에게 1학년 2학기부터 2학년 2학기까지 교수의 지도를 받아 연구계획서를 제출토록 했고, 이 중 우수한 계획서에 대해서는 연구비를 지원했다.

또한 학생들은 잘한 부분과 부족한 부분, 보완·발전 계획 등을 담은 ‘자기성찰보고서’ 작성을 통해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키우도록 했다.

공동학습, 생활, 진로를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각 학년별로 30명씩 묶인 학습공동체 LC(Learning Community)도 운영했다.

LC는 총 4개 그룹으로 운영되며 교수 1인 당 학년별로 6명씩 총 24명에 대한 진로지도를 담당시켰다. 변별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보완책도 마련했다. 대학은 ‘Pass’와 ‘Non-Pass’외에도 상위 25% 내에 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Honor’ 등급을 하나 더 마련했다.

학업 성취도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 Honor를 받는 비율도 과목별로 정하도록 하되 최대 25%를 넘지 않도록 했다.

대량 유급 사태 방지책으로는 ‘Non-Pass’를 받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계절학기를 통해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불완전 이수(Incomplete)’ 제도를 신설했다.

유급생에게도 ‘선이수제도’를 통해 따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모든 수업을 미리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전체 수업의 50% 미만으로 진급사정위에서 정해준 과목만 가능하다.

연세의대 고위 관계자는 “절대평가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 사전에 충분한 보완책을 마련했다”며 “현재까지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라고 말했다.

이어 “연세의대의 교육 혁신이 일개 의대의 시도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의학교육 전반에 걸쳐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공감대 확산과 풀어야할 과제

연세의대가 보여준 가능성은 치열한 학점 경쟁시대의 종식을 예고했다. 물론 아직 절대평가로의 전환을 선언한 의과대학 수는 적지만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는 모습이다.

의과대학 교육자들의 모임인 한국의학교육학회 이영환 회장은 “절대평가는 반드시 가야하는 길”이라며 “객관화라는 프레임에 갇혀서는 결코 절대평가를 도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의학교육의 패러다임 변화를 선언함 셈이다.
그는 “의과대학 내 평가만으로 학생들의 우열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환자치료에 필요한 전문영역과 기본역량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성적순으로 의학교육이 이뤄지면 적잖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각 대학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절대평가 도입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의학교육 기관으로서 단순한 지식 전달뿐만 아니라 환자에게 필요한 인재를 배출시킬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고, ‘절대평가’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견해다.

패러다임 변화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국내 단일 의료기관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서울아산병원의 기반인 울산의대도 일찌감치 절대평가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울산의대 채희동 학장은 “1등부터 40등까지 줄을 세우는 현 시스템은 그야말로 자고 일어나면 쏟아지는 의료정보와 의학지식 속도를 따라가기에 맞지 않은 제도”라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교수들이 교육을 하고 있는 성균관의대도 절대평가 도입 방침을 정했다. 대신 ‘인성기반’이라는 전제를 달아 차별화를 시도했다.

인성기반 절대평가제는 그동안 소홀했던 의대생들의 인성교육 강화 차원에서 성적 외에 출석, 학교생활 등을 전반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현재까지 절대평가를 도입했거나 전환을 선언한 의대는 연세의대, 인제의대, 울산의대, 성균관의대 등 4곳으로, 향후 동참 행렬이 이어질 것이라는 게 의학계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더욱이 소위 빅5 병원 중 3곳이 후학들의 평가방식 변화를 선언한 만큼 절대평가로의 패러다임 변화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다.

다만 기성세대 교수들의 절대평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과 평가방식 전환에 따른 교과과정 개편 등은 풀어야할 과제다.

한 의학계 인사는 “절대평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되고 있지만 성공적인 도입을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교수와 학생들의 인식 변화”라고 말했다.

이어 “절대평가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됐다면 커리큘럼 개편, 국가장학금 선정기준 등 외부평가 기준도 동반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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