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이 없었다. 통상적 공직자들의 정중동 행보와는 확연히 결이 달랐다. 다소 민감한 현안에 대해 소신을 분명히 했고, 파장이 우려되는 대목에서는 비보도 조건인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를 요청하는 등 정책은 물론 대언론에도 한층 농익은 모습이었다. 그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보건복지부 박민수 제2차관(행정고시 36회, 서울대학교)은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보험정책과장으로 포괄수가제 확대를 놓고 의료계와 날선 각을 세우며 강인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당시는 의료계와 대척점에 섰지만 최근에는 무리한 간호법 추진에 우려를 표하는 발언으로 의료계 공감을 얻었다. 두 사안 모두 국민을 최우선 가치에 둔 그의 우직한 ‘소신’에 의한 발로였다. 박민수 2차관은 최근 보건복지부 전문기자협의회와 만난 자리에서도 △한의사 초음파 사용 △대형병원 분원 설립 △의료일원화 등 각종 의료 현안에 대해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醫-韓 의료일원화 공감, 가야할 방향”
먼저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과 관련해서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만큼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필요한 후속 조치에 나설 계획임을 천명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복지부가 의사, 한의사 등 의료인 면허범위에 대한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공감을 표한 셈이다.
복지부가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민수 2차관은 “대법원이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제도적 인식변화 등을 반영해 새로운 판단기준이 필요하다고 판시한 만큼 판결 취지를 감안해 필요한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첨예한 직역 간 갈등이 예상되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의료계 및 한의계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재조명 되고 있는 ‘의료일원화’에 대해서는 긍정론을 폈다.
의료자원 효율적 공급 및 환자들 진료 편의 증진, 학문 융합 발전 등의 측면에서 의료일원화는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박민수 2차관은 “의료계와 한의계 모두 일원화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다만 방식의 문제를 놓고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계는 흡수통합을 원하지만 한의계 생각은 다르다”며 “양 직역 모두 흡족할 일원화 방식을 찾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나아가야할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의 진료 보장성 강화에 대한 의지는 굽히지 않았다.
얼마 전(前) 발표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은 보장성 약화가 아니라 건강보험 낭비를 막고, 국민에게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라는 점을 부연했다.
그는 “국민에게 꼭 필요한 의료는 보장하면서도 건강보험 제도를 지속, 운영하는 것은 국가 책무”라며 “한의 진료라고 국민에게 꼭 필요하다면 보장성을 강화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수도권 대형병원, 잇단 분원설립 우려-전국적 병상 수급 기본시책 마련”
수도권 대형병원들의 잇단 분원 설립 열풍과 관련해서는 우려감을 감추지 않았지만 급진적인 대책 제시에는 신중론을 견지했다.
최근 병원계에서는 의료전달체계 재정립과 관련해 상급종합병원 분원 설립 등 병상 관리 주체가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복지부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
이에 대해 박민수 2차관은 “병상 자원이 지역 간 불균형적으로 분포돼 있는 것은 문제”라며 “복지부는 균형적 병상 관리를 위해 전국적인 병상수급 기본시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의료법인 퇴출구조 마련과 관련해서는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부실한 의료법인으로 인한 의료 질 저하를 방지하기 위해 제한적인 합병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의료법인의 경영 유지가 어려워도 △해산사유 발생 △파산 △허가취소 외에는 퇴출이 불가능하다”며 “이들의 퇴로를 마련해 줌으로써 의료 질 저하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의료법인 인수합병 관련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기는 하지만 합병 시 지역주민 의견 청취, 시·도지사와의 협의 등 제도적 장치도 필요”고 덧붙였다.
“의약분업 정신 존중, 선택분업 불가”
의약분업 재평가 및 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내놨다. 특히 국민들이 병원이나 약국 중 선택적으로 약을 받도록 하는 ‘선택분업’에 대해서는 불가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의사의 전문적인 진단․처방과 약사의 조제․투약을 통해 의약품의 합리적 사용을 도모할 목적으로 도입됐고, 20년간 유지, 운영돼 온 만큼 이를 지속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민수 2차관은 “국민 선택분업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정립된 의약분업을 무력화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수용하기 어려운 제안”이라고 못박았다.
아무리 당찬 그였지만 병원계의 가장 큰 고민인 의료인력 문제와 관련해서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앞으로 각종 의료정책 수립 시 인력 상황이 고려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올해 수립 예정인 ‘보건의료발전계획’에 균형 있는 의료인력 수급 방안을 담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박민수 2차관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리하이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행정고시 36회로 공직 생활을 시작해 복지부에서 정책기획관과 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쳐 지난해 11월 복지부 2차관으로 임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