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었던 심장내과 배정환 교수가 참담한 상황을 개탄하며 사직서를 던졌다.
충청북도에서 나고 자라 지역 거점병원에서 20년 간 지역민 건강을 지켜온 필수의료 분야 교수가 정부의 지역의료, 필수의료 살리기 정책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다.
그는 지역주민들이 심장질환 만큼은 지역병원에서 양질의 모든 치료를 받게 하겠다는 꿈,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을 가르쳐 훌륭한 의사로 만들자는 꿈이 모두 헛됐음을 허탈해 했다.
배정환 교수는 22일 자신의 SNS에 '이제 제가 믿고 믿던 제 자리를 떠나려고 한다'는 제목의 사직의 변(辯)을 게재했다.
그는 충북 청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충북의대 졸업 후 충북대병원에서 인턴과 내과 전공의를 거친 토박이 충북의사다.
이후 페루에서 국제협력의사로 근무한 뒤 서울대병원 전임의로 2년, 경희대병원 교수로 1년을 지내던 중 지난 2005년 고민 끝에 충북대병원으로 돌아왔다.
배정환 교수는 당시 "1년 182일 대기 당직을 섰다. 그 노력으로 권역심뇌혈관질환 센터가 되면서 90일 정도의 당직을 하고 20년 가까이 살았다"고 술회했다.
그는 충북대병원 교수로서 딱 두 가지 꿈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배 교수는 "전공의 시절 충북대병원에서 불가한 수술 때문에 서울로 가는 환자들을 보며 너무 자존심 상했다"며 "모교 병원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심장질환 만큼은 지역주민들이 충북대병원에서 양질의 모든 치료를 받게 할 수 있도록 병원을 키워내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이에 배 교수는 낮이든 밤이든, 평일이든 연휴든 뼈를 갈아 넣는 노력으로 최대한 빠르게 시술했다.
이로써 급성심근경색증 환자가 응급실 도착 후 스텐트 시술을 받기까지 소요되는 시간(door to balloon time)이 새벽 2시에도 52분밖에 안 되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배 교수는 "이제는 시간이 갈수록 그런 일이 제 꿈 밖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개탄했다.
"정부, 상식 밖 조치로 지방‧필수의료 붕괴"
그는 "지방의료 필수의료가 제대로 서지 않는 것을 마치 의사들이 돈에 눈이 멀어 미용과 성형에만 집중해서 그런다며 민심을 호도하고 정치적인 이득에 사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동안 어렵사리 필수의료를 지켜온 의사들마저 국민 앞에서 돈밖에 모르는 파렴치한으로 조리돌림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교육자로서 의대생과 전공의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전했다.
배 교수는 "또 한 가지 꿈은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을 훌륭한 의사로 만들어 내는 것이었지만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조치로 제자들은 휴학과 사직에 내몰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며칠에 한 번씩 아이들에게 전화로 안부를 묻고, 힘내라고 얘기하고, 커피 쿠폰 보내는 제 모습이 너무나 괴롭고 초라하며, 아이들이 걱정이 돼 견디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4년짜리 건물 공사 계획서 하루 만에 작성"
그는 충북대학교 총장과 충북도지사를 향해서도 "의학교육과 의료체계에 대한 이해는 1도 없이 정부에 아첨해 의과대학을 하루 아침에 200명으로 만들었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어 "정부는 총장을 통해 부지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의과대학 4호관 신설 계획서를 하루 만에 만들어 학장에게 송부하고 하루 만에 그 안을 채울 기자재 리스트를 완성토록 압박했다"고 폭로했다.
배정환 교수는 "제 가슴에 품은 두 가지 꿈은 이제 헛된 게 됐다"며 "한 달간 신변을 정리하고 모시던 외래 환자분들을 적절한 곳에서 치료를 지속할 수 있도록 소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