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 바야흐로 의과대학 교수들의 정년퇴임 시즌이 도래했지만 퇴임 이후의 행보가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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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앞다퉈 스승의 인생 2막에 각별한 신경을 쓰던 예년 모습과 달리 스스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는 퇴임 교수들이 늘고 있다.
이는 ‘사제지간(師弟之間)의 변화된 시대상’이라는 분석이다. 스승의 절대적 권위와 제자들의 충성도가 반비례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퇴임 교수들은 “그동안 제자들이 스승의 정년퇴임 이후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게 불문율이었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정서가 많이 줄었다”고 입을 모은다.
스타급 교수의 경우 제자들의 조력과 무관하게 스스로 인생 2막을 설계하는데 어려움이 없지만 상당수 교수들은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다 보니 정년퇴임 이후의 행선지가 곧 해당 교수의 지명도와 함께 제자들 충성도의 가늠자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때문에 정년퇴임 시즌이 되면 교수들은 물론 제자들 사이에서도 퇴임 교수의 차기 행선지를 놓고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에 남아 진료와 연구를 지속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제자들이 운영하는 병원에 초빙되는 교수들은 그래도 선전했다는 평을 받는다.
지난 2월 정년을 맞은 한 대학병원 교수는 “스승과 제자가 아닌 직장 상사와 직원의 개념으로 변화하는 것 같아 씁쓸함마저 든다”고 털어놨다.
이어 “대학병원에서 30년이란 세월을 보낸 교수가 갈 곳이 없어 고민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퇴임 후의 행선지가 지난 세월의 가늠자가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달라진 의과대학 사제지간은 정년퇴임 행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은사의 헌신과 공을 기리기 위한 후학들의 성대한 행사가 자취를 감춘 대신 강의실 등에서 간단한 다과로 스승의 인생 2막을 응원하는 자리가 늘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의대교수들의 퇴임식은 특급호텔에서 논문집 헌정식 등 화려하게 치러졌다. 타과 교수에게 뒤처지지 않는 게 도리라고 여긴 제자들은 경쟁적으로 은사의 퇴임식을 챙겼다.
하지만 리베이트 쌍벌제를 비롯해 김영란법 등이 시행되면서 의대교수들의 정년퇴임식 모습에도 많은 변화가 일었다.
특히 2017년 서울대병원 성형외과 모 교수의 수 백만원 짜리 골프채 선물이 사회적으로 파문을 일으키면서 정년퇴임식 문화는 크게 달라졌다.
더욱이 올해는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치면서 퇴임식 자체를 갖지 못하고 쓸쓸하게 연구실을 정리하는 교수들이 부지기수였다.
정년을 2년 남긴 한 대학병원 교수는 “과거 경쟁적인 퇴임식이 부담스러운 적도 있었지만 작금의 상황은 오히려 더 마음을 편치 않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거품을 줄이고 허식을 없애는 추세는 옳은 방향이지만 갈수록 소원해지는 사제지간은 많이 아쉽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