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저수가, 저충원으로 인한 ‘3저(低) 악순환’ 늪에 빠진 대한민국 소아청소년과를 위한 긴급 처방으로 전공의 수련비용 국가 지원이 제시됐다.
관련 예산으로는 약 96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됐다. 다만 레지던트 수련비용 국가 지원이 젊은의사들 소청과 기피현상을 풀어낼 단초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2023년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를 통해 소아청소년과 위기 대응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입법조사처는 우선 소아청소년과 의료기관 폐업 및 전공의 충원 실태를 통해 현재 처해진 위기 상황을 진단했다.
소아청소년과의원 폐업은 수 년째 지속 중으로, 이미 지난 2020년 개원과 폐업 역전 현상이 시작됐다. 전체 개원가 전문과목 중 폐업 기관이 개업 기관을 넘어선 것은 소청과가 유일하다.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8년(개원 122곳, 폐업 121곳)과 2019년(개업 114곳, 폐업 98곳)까지는 개업한 곳이 더 많았다.
하지만 2020년 무려 154곳이 폐업하며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개원한 곳은 103곳으로 폐업한 의료기관보다 51곳 적었다.
2021년 역시 새로 문을 연 소청과 의원은 93곳인데 비해 문을 닫은 곳은 120곳으로 개업과 폐업 역전 현상이 유지됐다.
2022년 개원한 소청과 의원은 87곳, 폐업은 57곳으로 개선되는 듯 보였으나 2023년도 5월까지의 추세를 볼 때 폐업이 개업을 앞지를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입법조사처는 전망했다.
의사인력 수급도 심각한 상황이다. 최근 마감된 2022년도 전공의 모집에서 소아청소년과는 총정원 199명 중 33명만 지원하면서 충원율이 16.6%까지 곤두박질 쳤다.
특히 빅5 병원 중 서울아산병원만 유일하게 정원을 채울 정도로 처참한 상황이었다.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11명 모집에 지원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2022년 12월 기준으로 국내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총 6222명이다. 의료기관 종별로는 상급종합병원 862명, 종합병원 790명, 병원 1111명, 의원 3289명, 보건기관 170명 등이다.
다만 이들 중 상당수가 매년 소청과가 아닌 다른 분야로 전환하고 있어 소아청소년 진료현장의 의료인력난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소청과, 폐업>개업 역전현상 심화…단편적 접근 아닌 다각적 해법 모색 절실
전문의 수급도 지속적으로 난항, 국내 중증진료 ‘빨간불’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인구의 17%인 소아청소년의 필수진료를 담당하는 전문인력 부족으로 사회안전망이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특히 고난도, 중증환자 진료와 응급진료 축소 등 소아청소년 환자들의 생명과 직결된 진료영역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는 소청과 위기를 극복할 방안으로 전공의 수련비용 국가 지원을 제시했다. 붕괴 위기에 처한 소청과 인력 양성에 국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제언이다.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전공의 1인 당 연평균 수련비용은 1억8000만원으로, 전체 전문과목 평균인 1억5000만원 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입법조사처는 2020년 모집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122명의 총 수련비용을 추산한 결과 약 96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매년 충원 인원이 다른 만큼 총 수련비용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1000억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해 소청과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수련비용 국가 지원은 필수의료 의사 양성 비용을 사회가 분담한다는 점에서 분명 필요한 부분이지만 작금의 위기 상황을 해소할 결정적 단초가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련비용 국가 지원이 전반적인 소청과 레지던트 근무환경 개선 및 교육 질 향상 효과로 이어지기까지는 오랜기간이 걸릴 수 밖에 없어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분석이다.
특히 수련기관에 대한 비용 지원이 당사자인 젊은의사들 입장에서는 체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만큼 전공의 기피현상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수련비용 지원 등 단편적 접근 보다는 소청과 기피현상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보다 다각적인 유인책을 전개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 소아청소년과 원로 의사는 “작금의 소청과 위기는 저출산, 저수가, 저충원은 물론 부모들의 악성 민원, 잦은 의료분쟁 등이 복합적으로 초래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단일책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단기, 중기, 장기적으로 체계적인 개선책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