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생아 수는 급감하고 있지만 고령산모 증가로 고위험 및 중증 신생아 비율은 높아지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에 갓 태어난 귀한 생명들을 살려내는 신생아중환자실(NICU)이 현재 심각한 인력난에 허덕이며 붕괴 직전에 놓였다. 특히 지역 거점병원들은 야간 당직과 배후진료 단절로 한계에 직면했다. 주요 대학병원들 조차 신생아 세부 전문의와 전공의를 구하지 못해 병상을 축소 가동하고 있다. 실제 전북대병원 신생아중환자실 김진규 전담 교수는 최근 대학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김 교수는 최근까지도 주당 약 90시간 근무하며 장시간 연속 당직을 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데일리메디는 전국 주요 의료기관의 NICU 인력 및 운영 현황을 심층 분석해 위태로운 진료 생태계 민낯을 조명했다. [편집자주]
최근 지방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NICU 폐쇄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수도권 대형병원들조차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며 병상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 기조 속에서도 고령 산모 증가로 고위험 신생아 비율은 늘고 있지만, 이들을 돌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전공의가 턱없이 부족해 국가적 진료체계 붕괴가 임박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병상 넉넉해도 ‘세부전문의’ 없어 텅 빈 병동
수도권 대학병원들 사정도 심각한 상황이다. 단순히 소아청소년과 의사 수를 넘어 중증 신생아 생명과 직결된 ‘신생아 세부전문의’의 고갈이 치명적이다.
실제 분당서울대병원은 총 50병상 NICU와 110명 간호인력을 갖추고 있지만,신생아 분과 세부전문의 채용에 어려움을 겪으며 정원 10명 중 5명만 충원해 현재 35병상만 가동하고 있다.
세부전문의 1명당 7병상 이상을 감당해야 하는 셈이다. 50병상 규모의 서울성모병원 역시 소아청소년과 전체 의사는 53명에 달하지만, 정작 신생아분과 전문의는 6명에 그친다.
세부전문의 1~2명이 병동 전체를 홀로 짊어진 병원들의 사정은 더욱 처참하다.
14병상을 운영하는 서울시보라매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의사 11명에 전공의 5명이 있으나, 신생아 세부전문의는 단 1명에 불과해 24명의 간호사와 함께 병동을 힘겹게 지키고 있다.
인하대병원 또한 26병상에 3명의 세부전문의가 전공의 없이 63명의 간호사와 사투를 벌이는 등 병상당 전문의 비율이 부족한 구조적 한계에 봉착했다.
심지어 일부 대학병원은 아예 내부 인력 현황 공개조차 조심스러워하며 답변을 피할 정도로 수도권 병원들의 인력 수급 불균형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나마 서울아산병원이 62병상 규모에 전임의를 포함해 12명의 의사와 26명의 전공의, 124명의 간호사를 확보해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지만 미래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사법적 부담에 전공의 씨 말라…교수들이 겨우 버티는 병동
젊은의사들이 소아청소년과, 특히 중환자실을 기피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의료사고에 따른 사법 리스크가 꼽힌다.
생사를 오가는 중증 환자가 많아 소송 위험이 크다 보니, 그나마 소청과를 선택한 전공의들 조차 법적 부담이 덜한 소아내분비나 성장클리닉 등 타 세부 분과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올해 상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소청과는 모집인원 166명 중 36명만 선발돼 21.7%라는 최저 충원율을 기록했으며, 이마저도 대부분 수도권 대형병원에 몰렸다.
워라밸이 무너진 근무환경도 기피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업무를 홀로 감당하는 이른바 독박 구조를 피하기 위해 전공의들이 동기들과 특정 병원에 몰아서 지원하는 현상마저 벌어진다.
결국 경기남부 권역 고위험 신생아 치료 거점인 아주대병원 NICU는 올해 초 마지막 전공의가 졸업한 이후 신규 충원이 이뤄지지 않아 현재 전공의가 한 명도 없다.
정년 퇴임한 교수가 당직을 서며 빈자리를 가까스로 메우고 있지만 역부족인 실정이다.
야간당직·주간진료 한계 직면한 지방병원
지역 거점 역할을 해야 할 지방 병원들의 상황은 이미 붕괴 직전이다.
비수도권 NICU 중 자체 소속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남은 곳은 동아대병원(2명)과 양산부산대병원(4명) 등 소수에 불과하다.
양산부산대병원 전공의 4명이 수련을 마치는 시기가 오면 비수도권 전공의의 씨가 마를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동아대병원 역시 1명의 전공의는 4년차로 병원을 떠나기 직전이다.
전북 예수병원은 2021년 이후 전공의 충원이 끊겼고, 원광대병원, 고신대병원, 해운대백병원 등 다수의 지방 거점 병원들 역시 전공의가 없다.
부산대병원(20병상), 경북대병원(15병상), 강릉아산병원(13병상) 등도 소수의 인력이 병동을 지키고 있으며, 건국대 충주병원 등은 아예 NICU 운영을 포기했다.
삼성창원병원, NICU 사수 고분분투…“정부 과감한 지원 절실”
남아있는 전문의들의 업무 강도는 살인적이다. 삼성창원병원은 24병상 규모의 센터를 단 2명의 신생아 세부전문의와 33명의 간호사가 꾸려가고 있다.
전공의가 전무해 전문의 2명이 번갈아 야간 당직을 서고 주간 외래 진료까지 병행하는 등 인력 고갈이 극심하다. 이미 체력 등이 한계에 도달해 NICU 운영이 어렵지만 사명감으로 버텨내고 있다.
권역 모자의료센터인 계명대 동산병원 역시 39병상 규모로 20명의 통합인력을 갖췄으나 입원 환자가 몰려 한계에 달했다.
신소영 신생아센터장(소아청소년과 교수)은 “NICU는 전국적으로 인력난이고 당연히 1인당 업무량이 많아 과중될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호소했다.
더 큰 문제는 고위험 신생아 생존을 좌우할 배후진료 단절이다. 고위험 신생아를 치료하려면 소아외과, 소아정형외과, 소아안과, 소아이비인후과 등 세부 분과의 협진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방에는 배후진료 전문의를 모두 갖춘 병원이 전무,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환아들이 타 지역으로 원정 진료를 떠나야만 하는 처참한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소아흉부외과나 소아심장 등 필수의료 분야 역시 신규 전문의 유입이 끊겨 5년 뒤에는 현재 의료 역량의 3분의 1 수준만 남을 것이라는 절망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고대의료원도 임상교원 ‘과부하’ 우려
타 의료기관 대비 비교적 안정적인 인력 풀(Pool)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던 고려대의료원(안암·구로·안산) 역시 내부를 들여다보면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전언이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규모로는 3개 병원이 총 68병상의 NICU를 가동하며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증 환아를 끝까지 책임져야 할 ‘임상교원’ 수가 부족해 실제 현장 운영은 상당히 고된 상황이다.
실질적인 최종 진료 책임을 지는 신생아 세부전문의는 고대안산병원 3명, 고대안암병원 2명, 고대구로병원 2명 등 3개 병원을 통틀어 총 7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안암병원의 경우 총 8명의 의사가 근무 중이지만, 이 중 4명은 주 40시간 근무 기준을 적용받으며 최종 진료 책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입원전담전문의’다.
나머지 4명이 실제 진료와 야간 당직의 핵심축인 임상교원인데, 이 중 신생아 세부전문의는 이주영, 조한나 교수 단 2명뿐이며 나머지 2명은 수련 중인 펠로우(임상강사)다.
고대안암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이주영 교수는 “당직은 진료교수(입원전담전문의)들이 서지 않기 때문에 임상교원 4명이 당직을 돌아가며 커버하고 있고, 환자 책임은 세부전문의 2명이 반반씩 모두 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나마 부족한 처우에도 사명감으로 버티는 펠로우들의 이탈을 막고자, 교수들이 당직 부담을 더 짊어지며 후배들을 보호하는 눈물겨운 사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산하 병원의 상황도 여유롭지 않다. 구로병원은 인력이 지속적으로 빠져나가며 현재 총 7명의 전문의만 남았다.
이마저도 임상교원은 3명뿐이며, 이 중 1명인 펠로우를 제외하면 세부전문의는 2명에 불과하다. 안산병원 역시 세부전문의 3명과 펠로우 2명을 포함해 아슬아슬하게 병동을 운영 중이다. 그나마 전공의가 1명 있다는 점은 위안이다.
그럼에도 안암병원은 핀란드 등과 국제 협력을 맺고 환아와 가족 중심의 가족중심케어(FCC) 정착을 적극 추진 중이며, 중환자실 고도화 사업을 통해 기존 20병상에서 25병상으로 확대하는 등 진료 인프라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안산병원 역시 8명의 의사 중 3명의 세부전문의를 보유 중이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희귀한 소아외과(오채연 교수), 소아신경외과(김상대 교수), 소아심장(장기영 교수) 등 소아세부 전문 의료진을 두고 있다.
오채연 교수의 경우 안암병원과 협진을 통해 신생아 외과 영역을 지원하는 등 필수의료 인프라 유지를위해 고분분투하고 있다.
현장과 괴리된 실효성 없는 땜질 처방…醫 “사법 리스크 완화 절실”
개별 병원의 안간힘만으로는 전국적인 NICU 붕괴 위기를 막기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필수의료 대책과 지역의사제 도입, 수가 인상 등을 추진 중이지만 현장 반응은 차갑다.
지역의사제를 통해 새로운 의사가 배출되기까지 최소 7년에서 10년이 소요되는 만큼 당장 내일이 위태로운 소아의료 인프라가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신소영 센터장은 “차등 수가 적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소아과 배후 진료가 원활해질 수 있도록 환자 전원 시스템까지 정책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저출산 시대에 태어난 귀한 생명들을 지켜낼 NICU가 멈추지 않도록, 사법 리스크 완화와 파격적인 보상 기전 등 국가 차원의 실효성 있는 즉각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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