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약 분쇄 업무 간호사, 선천성질환 태아 출산 '산재 인정'
대법원 '특정 업무로 질환 발생, 출산 후 태아 치료 보상 받아야'
2020.05.08 19:17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간호사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 때문에 선천성 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했다면 이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최근 나왔다. 태아 건강 손상이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된다고 판단한 첫 판례여서 주목된다.
 

재판에선 간호사의 특수한 근로환경과 태아의 건강 손상 간의 인과관계 여부가 주요 쟁점이 됐다. 판결문을 통해 자세한 내용을 살펴봤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은 지난 29일 간호사 A씨 등 4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신청 반려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A씨는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하며 2009년 임신해 2010년 아이를 출산했는데 아이 4명 모두 선천성 심장질환 진단을 받았다. 같은해 제주의료원에서 임신한 간호사 15명 중 5명은 유산을 했고 4명은 건강하지 못한 아이를 낳았다.


A씨 등은 제주의료원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근무환경이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주야간 3교대를 하면서 고령 환자들을 위해 알약을 빻는 작업에 투입되기도 했다.


A씨는 해당 업무를 하면서 임산부 건강에 치명적인 유해 약물에 노출됐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그러나 공단은 "태아를 근로자를 볼 수 없다"며 요양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


당시 공단은 간호사들이 재해, 즉 태아의 심장질환 발생 시기를 특정할 수 있는 자료를 요구했다.
 

간호사들은 재해 발생 시점을 '임신 중'이라고 특정하며 '임신 중 의무기록'과 '선천성 심장질환에 관한 의학자료'를 제출했다.


하지만 공단은 '초진소견서가 제출되지 않고 상병명과 요양기간 확인이 불가하다'며 이를 반려했고 A씨 등은 소송을 냈다.


이어진 재판에서 1심과 2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태아 건강 손상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넉넉하게 인정할 수 있다"며 A씨측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은 "태아의 선천선 질병은 어머니 질병이 아니다"며 공단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 판결을 다시 뒤집었다.


만일 간호사들이 임신한 상태에서 치료를 받았다면 요양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었으며, 이러한 수급권한이 모태아가 출산한 후 소멸되지는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최근 의학기술 발전으로 태아 상태에서도 수술과 치료를 할 수 있는 경우가 확대되고 있다"며 "임신 중 어머니가 치료를 받았다면 요양급여를 수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일 의학기술 이유로 태아 건강손상과 관련된 치료를 출산 후에 받게 되고, 이로 인해 요양급여를 받을 수 없다면 이는 형평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임신한 간호사가 특정한 업무를 하면서 태아의 건강이 손상됐다면 이는 업무상재해가 있다고 평가함이 정당하다"며 "요양급여 수급자는 근로자여야 된다는 관련 법이 이러한 재해발생 사실에 앞서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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