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의료원, ‘예전 명성(名聲)’ 되찾을 수 있을까
박대진 기자
2026.03.18 06:17 댓글쓰기

하루 수 백건씩 답지(遝至)하는 보도자료 중 한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세계 최고 병원, 국내 12위’. 발송처는 경희대학교의료원이었다.


미국 시사 주간지가 발표한 세계 병원 평가에서 국내 병원 중 12위를 차지했다는 내용의 홍보용 보도자료였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 얻은 호성적인 만큼 의당 박수 받을 소식이었지만 자료를 접하며 축하 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섰다.


신참내기 기자 시절 처음 배정받은 출입처가 경희의료원이었다. 당시 의료원 위상은 대단했다. ‘빅5 병원’이란 단어가 생겨날 즈음으로, 그 대열 포함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할 정도였다.


당시 진료실적 바로미터인 요양급여 청구액은 늘 상위권이었고, 의학계 위상과 직결된 각종 의학회 수장 자리도 경희의료원 교수들이 즐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경희의료원은 1971년 10월 의학, 한의학, 치의학, 약학 등을 아우르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종합병원으로 성대하게 출발했고, 이후 가파른 성장가도를 달렸다.


특히 세계 유일 종합적인 의과학 체계를 기반으로 △세계 최초 무항체 혈우병환자 종양제저수술 △뼈성장판 이식술 △국내 최초 관상동맥우회로수술 △실리콘 귀성형수술 등 국내 의료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경희의료원의 존재감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의료원 건물 자체는 지역의 랜드마크였고, 병원은 물론 한방과 치과 모두 명실공히 최고 수준이었다. 적어도 1990년대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의료계에 ‘규모의 경제’ 열풍이 불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빅5 병원을 비롯한 대학병원들이 앞다퉈 호텔에 버금가는 시설로의 탈바꿈을 시도했다.


의료시설에 대한 일반인들의 눈높이가 높아짐에 따라 경희의료원 역시 대대적인 시설 투자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천착만 거듭하다 시기를 놓쳤다.


여기에 장장 119일 동안 이어진 파업 후유증까지 겹치면서 경희의료원 위상은 급격하게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내부 상황에 외부환경 변화 대처도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연구중심병원을 비롯한 각종 정책 패러다임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며 병원의 경쟁력도 잃어 갔다.


그러는 사이 요양급여 청구액 순위는 뚝뚝 떨어지더니 급기야 3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가까스로 ‘상급종합병원’ 타이틀은 유지하고 있지만 그 마저도 매 평가마다 가슴을 졸여야 하는 실정이다.


의정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2024년에는 개원 이래 최악의 경영난으로 급여 지급 중단과 희망퇴직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까지 직면했었다.


물론 의정사태 당시 대부분의 대학병원들이 경영난에 신음해야 했고, 실제 급여 지급 중단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충격파는 적잖았다.


확실한 변곡점이 절실한 상황에서 경희의료원은 최근 단일 의료원 체제로의 전환을 통한 산하 4개 병원 구조로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경희대병원, 치과병원, 한방병원, 강동경희대병원 등 각 병원의 전문성 유지와 동시에 자율성과 책임을 균형 있게 강화해 안정적인 경영 선순환 구조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올해가 경희의료원 설립 55주년과 강동경희대병원 개원 20주년이라는 점에서 의료기관 통합 발전을 위한 구조 혁신의 전환점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오주형 경희의료원장은 “이번 조직 개편이 경희인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더욱 공고히 하고 책임경영 체계를 강화하는 새로운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침울하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조직원들의 ‘사기(士氣)’다. ‘현실부정’으로 시작된 구성원들의 조직에 대한 애착은 이제 ‘무념무상’ 단계까지 이르렀다. 감히 그들에게 비할 수 없겠지만 첫 출입처에 대한 애정과 애착이 큰 만큼 작금의 상황이 적잖게 마음 아프다.  


반등의 동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12’란 숫자에 애써 의미를 부여하려는 그 모습이 과연 시대를 호령했던 바로 그 ‘경희의료원’인가 싶다. 특히 지역적으로 인접한 고대의료원의 일취월장한 성장 흐름과 미래지향적 조직 분위기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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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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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소한 03.28 22:16
    최소한의 벤치마킹이라도 하려는 노력 조차 하지 않는 걸 보면.. 경영진의 마인드가 얼마나 뒤떨어지는 지 보이고

    조직문화도 병원의 발전보다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시대를 못 따라가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으니

    조직이 발전할리가 있나~
  • 상급도나름 03.26 08:23
    삭감율, 평가표 등 겉치례에 민감하고, 돈을 벌고 싶어도 시스템이 방해하는 ㅉㅉㅉ

    부족한 경영진이 머리 굴려도 생각이 그 우물안에 있으니 발전이 없지요

    그냥 하루에 한번만이라도 옆동네 아산병원 등 거대병원이 어떻게 경영을 하는지 구경이라도 하고 오면 좀 나아질까?
  • 김민수 03.24 11:53
    합치면 머하나 급여가 다른데
  • 김민수 03.24 11:52
    합치면 머하나 급여가 다른데
  • 이젠 03.24 02:09
    시설, 위치, 의료진이 단시간에 개선될 수가 있나? 동병상련인 한양대의료원과 같이 40년 전 명성을 되찾는 것은 이젠 거의 불가능하다. 그동안 아산, 삼성 등 대형, 중형 대학병원들이 수십개 설립되어 나온 동안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희박하다. 인서울에서 정원이 서울의대 다음인 110명인데 잘 교육시켜 발전의 계기로 삼길 바란다
  • 공감 03.19 09:38
    공감합니다.



    예전의 으쌰으쌰 힘내자던 분위기는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려는 사람들한테만 일을 시키다보니, 열심히 하던 사람들도 상대적 박탈감에 꺾이거나 떠나려 하고 있지요.

    구조적인 개편이 필요할 때입니다.

    성과가 나오는 사람한테는 더 많이 인센티브를 챙겨주고, 성과 미달인 사람한테는 페널티를 주는 체계로 가야 효율적으로 돌아갈 듯 합니다.
  • 김사부 03.19 12:35
    일을 많이 하나 안 하나 별 차이 나지 않는 급여 체계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환자 많이 보는 메이져 과 교수는 떠나는 것이 당연하지요, 요즘 세상에...

    특히 강동병원은 특히
  • leedooik 03.18 15:29
    경희의료원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심층 발전을 기대합니다.
  • 바꿔라 03.18 13:06
    거기 출신들 보니... 어떤 곳이었는지 알만하다... 오직 직원 쥐어짜기와 비용 절감에 혈안인...
  • 김사부 03.18 11:15
    실력있는 교수들이 많이 떠났다. 그리고 지금도 떠나고 있다.

    모교라는 애교심도 바닥이 났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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