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되는 쏟아진 '의대 유치' 공약
허지윤 기자
2016.04.14 07:00 댓글쓰기

[수첩] “합리적 득실과 가능성을 계산하는 대신 망상적 낙관주의에 기초해 결정해버린다. 혜택은 과대평가하는 반면 비용은 과소평가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기대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거나 완성 짓지도 못하는 위험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한복판에 와있다. 이번에도 선거철마다 빠지지 않는 ‘의과대학 및 병원 유치’ 공약이 전국 지역구 곳곳에서 발표됐다.

 

의대 유치 공약을 내건 후보들은 모두 “의대와 대학병원을 지역에 유치해 시민들의 복지향상에 힘쓰겠다”, “의료교육·의료산업 융합도시 메카로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문제는 후보자들의 공약에서 과학적 계산과 치밀한 논증, 깊이 있는 분석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말’ 뿐이다. 대니얼 카너먼의 일침이 떠오르는 이유다.

 

‘의대 및 병원 유치’가 일부 지역의 숙원사업이자 후보자들 단골 공약이 된 배경은 그것이 갖는 상징성과 파급력 때문일 것이다. 의료인프라 구축은 물론 일자리 창출, 지역 경제 활성화 등이 공약의 청사진이다.

 

그러나 각 지역에 의대 유치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1997년 이후 국내에 신설된 의과대학은 없다.

 

의대 설립 관련 주무부처인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도 최근까지 의대 신설 계획이 없으며, 기존 의과대학의 입학정원 확대도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물론 복지부가 공공보건 의료인력 양성을 위한 국립보건대학 설립을 추진 중이기는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 상의 ‘의과대학’과는 결이 다르다.

 

쏟아지는 의대·병원 유치 공약 속에서 국가적·사회적 ‘비용’에 대한 평가는 찾기 힘들다.

 

교육병원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소 500병상이 요구되며 여기에만 2000억원 이상이 필요하다. 대학설치·운영비, 학비지원금, 인건비, 실험실습장비 등 막대한 자본이 투입돼야 한다.

 

1990년대 들어 짧은 기간 우후죽순으로 의대가 신설되면서 교수 부족, 부실 교육 등 부작용이 잇따랐다. 신설 의대의 경우 실습재료가 부족해 실습을 생략하거나 강의만으로 보충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지역 의료 강화’라는 미명 하에 설립 허가된 농어촌 지역 소재 의대들은 지금도 예과 교육만 연고지인 지역에서 하고, 본과와 임상실습은 수도권과 대도시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방 공공병원은 적자경영으로 정부와 지자체 눈치를 보고 있고, 공공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의 목소리는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은 "의대 신설을 통해 해결하려는 접근은 의사인력 수급과 보건의료체계 혼란을 초래하고 의료취약지 접근성 문제도 해소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혈세를 다룬다. 진정 지역민 의료 혜택과 복지 향상을 위해서라면 과도한 낙관주의가 아닌 의료에 대한 진중한 접근과 치밀한 분석이 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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