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독점과 서비스
최종학 기자
2012.05.20 20:00 댓글쓰기

스마트폰 열풍이 불던 몇 해 전 어느 날. 여러 기종의 스마트폰 사양을 모니터에 띄워두고 어떤 것을 구입할지 고민을 거듭했던 기억이 새롭다. 결국 손에 들어온 것은 아이폰.

 

당시 아이폰 구입을 가장 망설이게 만든 건 바로 애프터서비스 약관이었다. 한 달 안에 제품에 문제가 생겨도 새 제품이 아닌 중고수리 제품(리퍼폰)으로 교환해준다는 약관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애플은 지난해 아이폰 서비스 약관에서 이 부분을 개정했고, 지난 10일에는 아이패드, 아이팟, 맥북을 구입한 후 한 달 안에 하자가 발생하면 새 제품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그간 세계 단일 AS 정책 적용을 주장하며 버텨온 애플의 정책이 한국에선 깨진 것이다. 

 

애플의 서비스 약관 개정 소식을 접한 지난 10일. 국내 내시경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일본계 의료기기 회사가 국내 대학병원과 서비스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취재 중 우연히 알게됐다.

 

불만족스러운 장비 수리 서비스로 인해 대학병원이 수리비용 미지급 등을 언급하며 강력히 문제를 제기하자 회사가 사과 대신 서비스 중단을 거론하며 맞불을 놨다는 것. [관련기사: 하단 5월 16일자 기사 참고]

 

취재 후 마지막으로 해당 병원에 사실을 확인하고자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사실 확인과 함께 이 회사 서비스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사실이 기사화되면 독과점적 지위를 확보한 회사와의 사이가 틀어져 추후 오히려 병원이 장비 수리에 있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기기 애프터서비스 시장에서 병원이 제조사의 눈치를 봐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기사가 발행된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해당 병원 담당자가 자신이 문책을 받게 될 것 같다며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기사 수정과 삭제를 요청한 이 담당자에게 “이 문제는 병원보다는 제조 및 서비스사가 시정해야할 문제로 보이는데 왜 걱정을 하십니까? 더구나 그쪽 병원에서 제보한 것도 아닌데 왜”라고 물었다. 그는 “말은 맞는 말인데”라며 말끝을 흐리더니 “그 회사와 사이가 틀어지면 좋을 게 없다”고 했다.

 

이 병원처럼 사태가 커지지는 않았지만 같은 문제로 갈등을 겪은 대형 병원도 여러 곳이었다. 취재 과정 중 접한 모 대학병원 관계자는 “이 회사와 거래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목소리가 커야한다”고 했다.

 

애플이 서비스 약관을 개정한 배경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시 개정이 있다. 공정위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보다 불리한 AS기준을 채택한 소형전자제품은 그 내용을 제품포장용기 겉면에 부착해야 한다”는 중요정보 고시를 개정한 바 있다.

 

이처럼 애플의 서비스 약관 개정은 한국 소비자들의 큰 목소리와 공정위의 제도적 뒷받침 때문에 가능했다.

 

회사 정책에 반하는 요구를 했다고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기기와 그 소비자인 병원을 대상으로 서비스 중단 선포라니. 의료기기도 소형전자제품처럼 제품 겉면에 소비자에게 불리한 AS기준을 의무 표시하도록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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