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웃음과 의사의 행복'
김태영 교수(건국대병원 정형외과)
2018.07.09 05:10 댓글쓰기



20년 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 시절 여러 진료 과를 돌면서 어느 과를 전공할지 고민하던 중 뒤늦게 정형외과를 지원하게 됐다.
 
의사 결단과 수술적 치료에 따라 환자의 만족도가 커서 보람을 가질 수 있다는 묘한 매력에 빠져 뒤늦게 지원했는데 운 좋게 정형외과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이후 전문 분야를 선택할 때에도 환자에게 가장 만족을 줄 수 있는 분야가 인공관절이라는 생각에 무작정 이 분야를 선택해 지난 10년간 인공 고관절수술을 하면서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대화하고, 그들과 함께 고민해왔다.
 
어느 날 70세 남자 환자가 좌측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들어왔다. 통증은 이제 익숙해진 듯 보였다.
 
그냥 걸어오는 모습만 봐도 직감으로 ‘고관절(엉덩이 관절)에 문제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고관절 방사선 사진을 촬영하니 대퇴골두가 보이지 않았고 다리는 많이 야위었다. 좌측 대퇴골두의 무혈성괴사가 많이 진행하여 대퇴골두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왜 이렇게 오랫동안 진료를 받지 않았는지 물었다.
 
환자는 지금까지 크고 작은 병원들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뼈에 감염이 있어서 인공관절 수술을 해줄 수 없다고 해 30년간 이렇게 절뚝거리면서 지내고 있었고 오늘은 통증이 심해서 약을 타러 왔다는 것이었다.
 
환자의 방사선 사진을 자세히 보니 대퇴골의 근위부가 국소적으로 뼈가 녹은 것처럼 얼룩덜룩하게 보였다. 이런 현상은 만성 감염이 있는 경우에 보이기도 하지만 이 환자의 경우 증상과 잘 일치하지 않아 보였다. 또 얼룩덜룩한 양상도 만성 감염과는 약간 달랐다. 피검사 결과에서도 감염을 의심할 만한 소견이 없었다.
 
감염으로 오인하기 쉬운 골괴사 소견이 대퇴근위부에도 드물게 보이는데, 이 환자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생각했다. 환자에게 인공관절 수술을 해보자고 권유했다. 환자는 처음엔 의아해 했지만 오인할 만한 부분들을 설명하고 나자 수술에 동했다.
 
수술은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후 감염 증상이 나타나는지 특별히 신경을 써서 확인했지만 별다른 이상 소견 없이 무사히 퇴원했다. 3개월 후 환자가 외래로 진료를 보러 왔다.
 
그 환자가 맞나 의심될 정도로 너무나 잘 걷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걸어보라는 내 요청에 환자는 자연스러운 걸음걸이를 보여주었다. 두세 번 더 외래를 방문하였고 이후로는 아예 방문하지 않아 전화했더니 이젠 불편하지 않은데 왜 진료를 받으러 가야 하느냐고 오히려 반문을 했다.
 
52세의 남자 환자도 기억 속에 있다. 그는 진료실 문을 열더니 두 손으로 문을 붙들고 서 있었다.
 
휘청거리면서 가까스로 벽을 짚고 한 발씩 움직여 겨우 의자에 앉았다. 환자가 들어와 앉는 그 짧은 시간에 만감이 교차했다.
 
방사선 사진을 촬영하고 보니, 양측 고관절에 무혈성 괴사가 동시에 빨리 진행되어 양측 대퇴골두가 흔적도 없이 모두 없어진 상태였다. 마치 두 다리가 몸에서 분리된 사람처럼 서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환자의 얼굴엔 그동안의 고통과 당황스러운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세상의 짐을 다 지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도와주세요!” 환자의 말은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환자를 안심시키고 이 상태로는 돌아가기 힘드니 오늘 바로 입원한 후에 수술 날짜를 알아보자고 했다.
 
다행히 수술 전 검사에서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아 입원 다음날 수술할 수 있었다. 양측 고관절 인공관절 전치환술을 시행했는데, 급격한 관절 괴사 소견으로 운동이 불가능한 관절이 아예 굳어 있어 수술이 쉽지 않았다.고관절 인공관절 수술과 함께 관절 구축에 대해서 힘줄 연장술을 시행하여 적절한 관절 범위를 확보하였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수술 후 3일째되는 날 병실에서 보행연습을 위해 한 발을 떼는데 환자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이제는 그렇게 아프지 않고 화장실도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퇴원 후 3개월만에 외래에서 만난 환자는 약간 절뚝거리기는 했지만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와 진료실 의자에 앉았다.
 
많은 환자가 수술 전(前) 고통스런 표정에서 수술 후 행복하고 웃는 얼굴로 바뀌는 순간들을 보면서 20년 전에 정형외과를 선택한 나의 결정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의사이자 인간으로서 환자에게 베풀 수 있는 부분이 사실 얼마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 작은 행위를 통해서 환자에게 큰 만족과 행복을 줄 수 있어서 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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