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은 예술이 바탕이 된 과학'
선경 교수(고대의과 흉부외과학교실)
2014.01.05 20:00 댓글쓰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Life is short, Art is long)’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의미인가. 흔히 ‘인생을 의미 있게 살자’ 거나 ‘짧은 인생에서 의미 있는 업적을 남기고 가자’ 등의 의미로 해석한다. 그럴듯한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누가 했는가.

 

알다시피 서양의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히포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그렇다면 히포크라테스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기원 전 400년 경 히포크라테스는 후배 의사들을 위해 의학교과서를 저술하였다. 기술 방식을 교훈체로 썼기에 격언집 혹은 잠언집(aphorisms)으로 불리기도 한다.

 

히포크라테스가 쓴 의학교과서 제1장 1절에 나오는 문장이 바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이다. 19세기 초반 활동했던 스코틀랜드 의사 Francis Adams가 영문으로 번역한 문장을 보자.

 

Aphorisms by Hippocrates : Section I-1 Life is short, and Art long; the crisis fleeting; experience perilous, and decision difficult. The physician must not only be prepared to do what is right himself, but also to make the patient, the attendants, and externals cooperate. (나름대로 의역을 해봤다. 히포크라테스 격언집(醫書) : 제1장 1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병의 고비는 빨리 찾아오는데, 경험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의사는 올바른 처치를 하도록 스스로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또한 환자와 주변사람 등이 협조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내용에서 보듯이, 히포크라테스가 얘기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의사들보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의미였다. 재미있게도 동양 역시 똑 같이 면학을 강조하는 경귀들이 있다. 바로 ‘소년은 쉽게 늘고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少年易老 學難成 = Life is short, art is long)’라는 중국 송나라 성리학자 주자의 권학문이다.

 

또한 중국의 유명한 시인 도연명도 ‘젊음은 일생 동안에 두 번 오지 않는다(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라며 청춘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공부에 힘쓰라고 하였다. 옛 성현들의 말씀에는 동서양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다.
 
그렇다면 히포크라테스는 왜 의술(medicine)을 예술(art)이라고 불렀을까. 예술은 영어로 art, 그리스어로 technē, 라틴어로 ars, 독일어로 kunst, 불어로 art라고 한다.

 

두산백과사전에 의하면 예술이란 일정한 과제를 해결해낼 수 있는 숙련된 능력 또는 활동으로서의 기술이며, 미적 기술과 수공적 기술 그리고 효용적 기술로 구성된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예술을 음악, 미술과 같은 미적 기술로 한정하는 것은 18세기 이후부터이다. 의학은 예술이 바탕 된 것이다. 

 

의학이 과학(science)이라면 의사는 과학자(scientist)다. 과학은 수학을 바탕으로 하기에 1+1은 항상 2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의학에서는 과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placebo 효과나 nocebo 효과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 측면에서 의학이 예술(art)이라면 의사는 예술가(artist)이고 장인(artisan)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고려청자와 같은 명품은 장인의 손끝이 닿아야 마무리되듯이, 소우주인 사람의 몸은 의사들이 직접 보아야 한다. 눈으로 보고, 만져 보고, 두들겨 보고, 들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의사들이 원격의료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이유 중 하나도 의사들이 과학적인 사고를 못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몸 자체가 예술의 대상이기 때문에 장인의 마지막 터치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설사 의사가 예술가라는 것을 동의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더라도 의학 수련과정이 장인을 길러내는 도제교육 시스템인 것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의생명 분야에서 많은 공학자나 생명과학자들이 의사들과의 공동연구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아마도 예술가인 의사들과 과학자들의 사고구조나 언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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