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과 프랑스 ‘혼외자’
조정 차장(SBS 보도국 경제부)
2013.10.20 09:00 댓글쓰기

무더웠던 여름의 끝자락을 달군 빅뉴스는 단연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이었다.


개인적으로는 10여년 전 검찰청을 출입할 당시 서울지검 형사부장이었던 채총장과 대면할 기회가 있었던 터라 관련 뉴스는 필자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희대의 분양사기 사건인 동대문 굿모닝시티 수사를 지휘하던 채 부장은 널리 알려진대로 선비풍의 대가 곧아 보이는 검사였다. 부장 방에서 차 한잔 나누며 살핀 그의 품성은 정의롭고 한편으로 냉철했다. 검찰의 리더로서 부족함이 없는 품성을 갖고 있었다. 이번 사건의 결과를 떠나 사생활을 정쟁에 이용하는 세태에는 씁쓸함이 남는다. 이런 종류의 스캔들에는 유독 ‘공과 사’의 구분을 따지지 않는 우리나라 문화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공직자의 청렴과 도덕성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서구에서는 이런 남녀 사이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파리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프랑스 정계에서 벌어진 일 하나를 소개한다.


라시다 다티. 2007년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1기 내각의 법무장관으로 발탁한 여성이다. 만 42세의 젊은 나이에 모로코 노동자 출신 아버지와 문맹인 알제리인 어머니를 둔 다티 장관의 성공스토리는 단연 톱뉴스 감이었다. 12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나 빈민가에서 꿈을 키운 다티는 화장품 판매원과 간호조무사 등 고된 일을 감내하며 ‘주경야독’으로 판사, 검사의 자리에 올랐다.


사르코지가 내무장관이었을 때 그에게 함께 일하고 싶다는 편지를 직접 보내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건 유명한 일화다. 게다가 다티는 북아프리카계 특유의 까무잡잡한 피부가 매력적인 미인이었다. 파격적인 등용 과정과 여성 법무장관이라는 점, 체구와 외모 등이 강금실 전 법무장관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일과 성취에 매달렸던 다티는 미혼이었다.


여성 편력으로 이름난 사르코지 대통령과 그녀가 함께 공식 석상에 나타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혹시 둘 사이에 다른 관계가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식이었다.


그러던 중 뜻밖의 일이 터졌다. 독신의 현직 법무장관이 임신을 한 것이다. 카메라에 포착된 다티 장관의 불룩한 배. 두 달간 아예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던 다티는 보란 듯 여자아이를 출산해 품에 안고 대중 앞에 섰다. 언론과 호사가들은 여아의 아버지가 누구일까에 모든 관심을 쏟았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피붙이일 거라는 풍문도 돌았다. 훗날 다티가 딸의 아버지는 호텔 재벌 도미니크 데세뉴라고 털어놓았는데 정작 데세뉴는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부인해 친자확인 소송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 기자의 시각으로 이런 과정을 지켜보던 필자는 그 일로 인해 다티 장관이 경질되거나 사의를 밝힐 걸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과 언론은 법무장관의 공직 수행과 그녀의 사생활을 결부시키지 않았다.


일은 일이고, 연애는 연애일 뿐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었다. 중요한 임기 가운데 ‘혼외자녀’를 출산한 법무장관, 그것을 정치적인 공격의 빌미로 삼기보다는 노처녀 장관의 연애사에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낸 프랑스 사회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어디 다티 장관 뿐이랴? 조강지처를 버리고 친구의 아내였던 세실리아와 재혼한 사르코지. 그녀와 함께 선거운동을 하며 대선에서 승리한 뒤 임기 중 세실리아와도 이혼하고 가수 겸 모델 출신의 카를라 브루니를 세 번째 부인으로 맞이한 그의 대단한 여성 편력은 지켜보는 우리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사르코지 대통령과 다티 장관의 지나친 자유분방함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프랑스 내부에서조차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의 사생활을 정치적인 문제나 직무 수행능력 등 공적인 영역과 직접 연관 짓지 않았다는 점이다.


채동욱 검찰총장 사건과 관련해 그를 두둔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공직자에 대해 사적인 영역까지도 도덕성을 요구하는 다수 국민의 생각도 우리  고유문화로 깊이 존중한다. 다만 여러 권력들이 충돌하고 정치적으로 복잡한 시기에 ‘혼외자’라는 이슈가 중심에 떠올라 건전해야 할 대결의 장(場)이 일순간 혼란에 빠진 현실은 다시 생각해도 안타까운 일이다.   



관련기사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