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
경문배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2013.08.04 00:08 댓글쓰기

최근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속해 있는 국회인권포럼에서 전공의 수련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지난 7월 17일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인권실태 및 개선방안” 간담회가 개최됐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공교롭게도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됐던 제헌절에 현재 전공의 근로 및 수련 환경에 대한 “전공의특별법” 제정을 제시했다. 지난 30년 동안 전공의 제도는 많은 변화가 있어 왔으나 정작 인권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체돼 있는 상태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시스템의 변화, 병원의 대형화가 이루어고 있는 현대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는 아직도 100시간이 넘는 근로에 혹사당하고 있으며, 제대로 된 당직비를 제공 받지 못하고, 휴가조차 제대로 갈수가 없다.

 

그리고 수련병원의 몸집 불리기와 더불어 근로의 양적 증가만 더해졌을 뿐 수련의 질적 상승은 상대적으로 퇴보되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의료인 간, 환자와 보호자에게 마저도 폭력에 노출돼 있으며, 이런 모든 상황들이 의료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보건복지부는 전공의 수련교육에 대한 관리를 대한병원협회에 위임했고, 병원신임평가위원회가 그 관리 감독을 맡고 있다. 하지만 역할이 과연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동안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주장했던 병원신임평가위원회의 독립화는 결국 전공의 수련제도의 개선을 위한 첫걸음이다.

 

현재처럼 사용자단체가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이 아닌 견제와 균형을 가지고, 현실의 상황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독립된 기관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다. 비단, 병원신임평가위원회가 현재 그 업무를 잘하고 있다고 주장하더라도 현실에서 터져나오는 문제들을 보았을 때 피부로 느껴지는 온도차이는 너무나 크다.

 

전공의 수련체계에 대한 규정화는 2009년도에 와서야 비로서 병협에서 제정된 병원표준수련지침을 통해 진행됐다. 하지만 규정은 권고안의 형식을 띄고 있으며, 실효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내부적으로 정해놨다 하더라도, 지켜지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규정이나 다름없다.

 

또한 수련규정의 표준화가 없다. 전국 수련병원은 각각 다른 수련규정을 가지고 있다. 병협의 표준수련지침을 참고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최소한의 보호를 위한 표준화된 규정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권리인 인권의 보호가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전공의 특별법은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미국에서 ACGME(미국수련평가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연방법으로 제정되는 데에는 리비지온 사건이 시발점이 됐다. 과연, 누군가는 죽어야 법으로 만들어 진단 말인가?

 

우리나라에 근로기준법이 제정되었을 때에도 처음에는 지켜지지 않았다. 고 전태일씨가 분신을 하면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쳐서야 비로서 지켜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경종을 울려야 할 것인가? 처절한 희생이 있어야만 지켜질 수 있는 것인가? 이제 인권과 더불어 “건강”과 “복지”라는 가치가 떠오르고 있으며, 그 가치적 측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전공의의 인권과 제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전공의 특별법을 준비해야만 한다.

 

따라서, 전공의 특별법의 필요성과 더불어 전공의 특별법이 가야할 방향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대한민국 전공의는 근로자이다. 최근 대전지방법원에서 인턴 연장근로수당에 대한 민사소송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에 따른 임금지급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판결이 나왔다. 이것은 또한 “근로기준법 제55조에는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줘야 한다고 돼 있고, 전공의라고 해서 유급휴일을 보장받지 못한 채 계속 근로를 해야 하는 수련목적상의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적시했다. 이것은 그동안 몇차례 있었던 대법원 판결과 더불어 전공의가 근로자임을 확실하게 명시하는 판례다. 전공의 특별법은 전공의의 근로자성을 확실하게 명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둘째, 전공의 특별법은 무엇보다도 근로기준법과 노동법을 아우를 수 있는 법적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 현재 전공의가 처해있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인권유린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보호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공의 수련제도 뿐만 아니라 여러 의료계에 산재되어 있는 문제들은 현재 실타래처럼 꼬여 있다. 즉,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꼬이고 꼬인 이 실타래의 첫 시작점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 같이 해결할 수 없다는 핑계만 만들어 내고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법의 제정이 필요하다. 법의 제정은 그 기준을 세워주는 것이다. 그리고, 기준이 정해지면 그것을 토대로 문제점들을 하나씩 고쳐나가면 된다. 전공의들은 그 동안 다른 문제점들에 치여서 전공의 수련과 인권의 문제들은 철저하게 묵살돼 왔다.

 

셋째, 병원의 경영 중심의 사고가 아닌 전공의라는 인간 중심의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작년 9월부터 올 5월까지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의료계 유관단체들이 참여해 “전공의 수련환경 모니터링 TFT” 회의가 있었다. 그리고, 개선을 위한 8가지 조항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강제성 여부에 대해서 정확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8가지 조항 역시 아직 근로기준법에는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전공의가 처한 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위해 마련되었다고 하지만 그 결과는 결국 정부와 병원 중심의 논리가 지배적인 상황이다. 즉, 전공의들은 저가 노동력으로서 취급되고 착취당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병원의 경영을 위해서 병상수가 늘어갈수록 전공의 TO를 많이 받아야 한다는 생각, 전공의가 없으면 병원이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은 전공의를 저가 노동력으로 밖에 취급하지 않는 현상황을 말해준다. 과연 이러한 상황들을 보고 전공의를 피교육자라고만 강제하는 병원 경영자와 공무원들의 마인드를 바뀌어야 할 것이다. “전공의 수련환경을 개선하려면 시스템도 바뀌어야 하고, 대체인력도 필요하고...” 등등의 사고는 이제는 버려야 한다. “돈이 없으니 어쩔수 없다”는 변명은 과연 진심으로 전공의의 삶을 이해하고, 개선의 의지가 있는 것인가 묻고 싶다. 전공의 특별법을 통해서 전공의의 인권의 기준을 먼저 세우고, 그것에 맞추어가는 사고의 전환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넷째, 법에 명시된 규정을 가지고, 표준근로계약서를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병원과 전공의는 상호간에 전공의 수련에 대한 규정을 인지하고, 이에 동의하여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재는 수련병원에 들어오는 전공의는 수련규정이 어떠한지 아무것도 모른 채 수련을 시작한다. 그리고, 병원 역시 이러한 과정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명확한 규정의 제시와 표준화된 근로계약서 체결은 상호 신뢰의 바탕이 된다. 이제는 정확하게 수련교육과정과 더불어 근로 환경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하고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병원의 생각도 바꾸지만, 더 나아가서는 전공의 스스로의 생각을 바꾸게 될 것이다. 이제 전공의는 우리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서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한사람의 근로자임을 명심하자.

 

다섯째, 전공의 특별법은 계속적으로 진화해 나아가야 한다. 전공의 수련의 가장 큰 목표는 실력있는 전문의를 만드는 것이다. 즉, 실력있는 의사가 질높은 진료를 환자에게 제공하여 그 혜택이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전공의는 안정적인 환경에서 최선의 진료와 더불어 질높은 수련을 할 수 있도록 보장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한 길이고, 대한민국 의료가 더욱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즉, 바로 그것이 전공의 특별법의 가장 큰 법적 의미와 목표이다. 따라서, 근로환경의 지속적인 개선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실력함양을 위한 고품질의 수련교육의 창출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법은 진화돼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복지”의 가치를 최우선에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복지에서 중요한 부분은 “건강”이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기 위한 사명감이 의사들에게는 있다. 그리고, 더불어서 의사가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조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의사의 전문성을 바탕으로한 의료정책의 개선 및 다양한 사회적 활동이 앞으로 복지국가 대한민국에서 큰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대한민국 의사들은 90%이상이 전공의 수련과정을 거치며, 그들의 사회화 과정은 획일적이고, 도제적 의식에 젖어든 의사를 양산해왔다. 의사로서 면허를 취득하고, 의료현장에 나와서 배워야할 부분에는 전문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생각들이 키워져야 하고, 사회적 활동을 넓혀갈 바탕을 배워야 한다. 전문성과 더불어서 다양성, 사회성이 결국 전공의 수련제도를 통해 배워나가야 할 중요한 덕목인 것이다. 전공의 특별법은 섬에 갇힌 의사들을 더 넓은 사회로 나가게 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젊은 의사들에게 전한다. “스스로 일어나라. 그리고 사회로 나가자. 우리에겐 해야 할 역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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