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료 패러다임 대전환 절실'
원장원 교수(경희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2013.05.26 20:00 댓글쓰기

한국에서 노인 인구는 급격히 증가해 현재 전체 인구의 11%에 달하고 있으며, 2030년에는 그 비율이 25%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각 분과 전문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노인의 질병을 성공적으로 잘 대처해왔기 때문에 굳이 노인의학 전문의가 필요할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노인의 예후를 결정하는 것은 질병의 숫자보다 ‘기능 장애가 얼마나 많은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이미 많은 연구에서 밝혀져왔다.

 

즉, 만성질환의 숫자가 많은 사람보다 만성질환이 없어도 기능 장애가 있는 사람의 예후가 더 나쁘다는 뜻이다.

 

노인에서 중요한 것은 질병의 치료(cure)보다 기능장애의 관리(care)가 더 중요하다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

 

그런데 기능장애란 단지 육체적인 장애 뿐 아니라 정신적, 인지적, 사회적 장애를 포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활의학과 의사만의 노력으로 노인의 기능장애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포괄적인 평가와 관리를 해 줄 의사가 필요하다.

 

또한 노인은 만성질환의 복합 이환이 흔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 중 3가지 이상의 만성질환을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는 노인이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따라서 노인에게 발생하는 많은 문제를 다수의 세부 분과전문의들이 개별적으로 진료하고 치료하면서 약물의 중복처방 문제라든지, 삶의 질과 기능향상이라는 노인의료의 궁극적 목표가 아닌 단순한 수명연장에 치중하는 문제 등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조정해 줄 의사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노인들이 호소하는 증상 중 약 50%는 특정 질병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노인들이 앓고 있는 많은 만성 질환과 더불어 각종 장기의 노화 현상, 그리고 각종 위험 요인(ex - 약물, 감염) 등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인해 특유의 증상들이 나타나는데 이를 ‘노인증후군’이라 부른다.

 

노인증후군의 대표적인 것이 노쇠(허약), 섬망, 근육감소증 등이다. 이들 노인증후군의 관리를 위해서는 새로운 학습과 수련이 필요하며 이를 전공하는 의사가 필요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노인의학, 현 상황은?

 

한국에는 현재 노인의학 전문의 제도가 없으며, 노인의학 수련 프로그램이 있는 병원도 몇 개에 지나지 않는다. 전국의 의과대학(의전원) 중 33%에서는 의대생에 대한 노인의학 강의가 전혀 없다고 보고된 바 있다.

 

그러나 실제 의료현장은 많은 노인의학 전문 의사들을 요구하고 있다. 2012년 현재 1057개의 요양병원에 수천 명의 의사들이 근무하며 노인환자를 진료하고 있으며, 4400여개의 요양시설의 대다수에 촉탁의 또는 협력병원 의사가 방문 진료를 하고 있다.

 

한 요양병원 원장의 말을 빌리면, 요양기관의 노인 환자에 대한 진료 경험이 없는 전문의가 대다수라서 필요한 의사 인력을 채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내과, 가정의학과 등의 전공의 수련 과정에 노인의학 수련을 받는 것이 필요하며, 나아가 노인의학 전문의 제도에 대한 재고가 시급한 시기이다.

 

노인의학 전문의는 비단 영국 연방이나 유럽, 미국 뿐 아니라 인근 동남아시아에서도 일본, 홍콩, 대만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심지어 중국, 말레이시아, 필리핀에도 노인의학 전문의 제도가 소규모이지만 존재하고 있다.

 

포괄적 기능 평가와 다학제간 팀 활동 필요

 

노인의 복합적인 의료 및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사 뿐 아니라 간호사, 사회사업가, 약사, 물리치료사 등이 팀으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이 팀의 리더가 노인의학 전문의의 역할이기도 하다.

 

노인 환자에 대한 포괄적인 기능평가와 다학제간 팀의 활동을 통해 예후가 개선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며 비용-효과적이란 것은 많은 국내외 연구에서 뒷받침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포괄적인 기능평가와 다학제간 팀 활동에 대한 의료시스템이 현재의 환경에서는 구현되기 어렵고, 각종 평가에 대한 진료비 보상을 받기가 힘들다는 점이 커다란 제약이 되고 있다. 

 

이러한 걸림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학제간 진료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노인병 클리닉 또는 센터가 여러 병원에서 활동 중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이유들로 인해 이들 노인병 클리닉(센터)이 축소되거나 심지어 소멸돼 버린 경우가 적지 않다.

 

필자도 2년 전부터 가정의학과를 중심으로 다학제간 노인의료팀을 구성해 정형외과에 골절로 입원하는 노인들에 대한 포괄적인 평가와 자문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몸 담고 있는 경희의료원에 어르신진료센터를 개소하였으며 어르신 전용 병실을 확보해 놓고 있다.

 

비록 작은 노력이지만 이러한 수고들이 모여 우리나라 노인의학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며,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의 전향적인 관심을 희망하고 있다.

 

‘세계노년학 · 노인의학대회’, 6월 23일부터 코엑스서 개최 예정

 

올해는 마침 6월 23일부터 5일간 노인의학 및 노화 학의 학술 올림픽으로 여겨지는 ‘세계노년학 · 노인의학(IAGG: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Gerontology and Geriatrics) 20차 대회’가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다.

 

세계노년학 · 노인의학대회는 올림픽처럼 4년에 한 번씩 개최되며 1978년 도쿄대회 이후 아시아에서 35년 만에 개최되는 대회이다.

 

세계 100여 국가에서 5000여명 이상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며, 550여개의 강좌세션과 380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될 예정이다.

 

또한 IAGG의 후원으로 아시아 지역 젊은 노인의학자 교육프로그램인 Master class on aging이 4회째로 올해 10월 30일부터 3일간 교토에서 열리게 된다. 필자도 강의 및 교육자로 참여하게 되며, 관심 있는 젊은 의사들의 참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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