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안순범 데일리메디 대표
2012.05.07 09:06 댓글쓰기

 

● 중국이 탈북 동포들을 북한으로 강제 북송하는 것과 관련, 한창 논란이 뜨거웠던 지난 3월초. 신문에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사진을 봤다. 탈북자 대모로 불리는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휄체어를 탄 채 유엔 인권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는 모습이었다. 장기간 단식으로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야윈 박 위원이 휠체를 타고 국제사회에 중국의 만행과 북한 동포들의 실상을 전하려고 하는 의지가 감동적이었다. 북송 저지 여부를 떠나 그의 휠체어 외교는 국제사회에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 30대 후반의 남성이 갑작스런 패혈증으로 팔다리를 잃었다. 그는 남들이 선망하는 외국계 회사를 휴직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의수와 의족을 착용하며 재활에 들어갔다. 문제는 과연 그가 복직할 수 있고 또한 이후 정상적으로 업무에 임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9개월의 유급휴가 후 팀장으로 복직했다. 회사의 배려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의수에 볼펜을 끼워 타이핑도 하며 예전처럼 업무를 보고 있다.

 

두 사례를 보 듯 휠체어가 일상에서 보편화되는 추세다. 예전 같으면 몸이 매우 불편하거나 또는 사지를 쓰기 힘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만 이용하는 기구로 인식됐다. 하지만 요즘에는 휠체어, 특히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광경을 주변에서 흔하게 본다. 그만큼 사용이 일반화됐다는 방증이고 역으로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병원 등 의료기관에 가서 보면 휠체어를 타는, 아니 누군가 밀어주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고령화가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차량에서 내려 휠체어에 타고 병원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병원 내 엘리베이터에서도 휠체어에 의존하는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접할 수 있다. 
 

특이한 것은 60세가 넘어 보이는 고령자들이 자신보다 윗세대인 부모들을 모시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호스에 의지한 채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초로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휠체어로 이동시키는 경우다. 부인이 남편을 미는 것도 흔하디 흔해졌다. 요즘에는 남편이 부인을 간병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가끔 항암치료를 받는 모자 쓴 부인을 휠체어에 태운 중년 남성을 보면서 부부 금실(琴瑟)을 가늠해 본다. 머지 않은 미래 부모님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시려지곤 해 진다. 
 

젊었을 때 비슷한 동년배 부모들이 머리를 빡빡 깎은 어린아이(이런 경우 주로 백혈병 등 소아종양)를 휠체어로 밀면 남의 일 처럼 여겨지지 않아 마음 쓸어내리곤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부인이 밀어주는 노년의 남성들을 볼 때면 내 자신을 돌아보곤 한다. 일회성에 끝나는 경우가 있지만 “그래 늙어서 휠체어에 앉는 것보다는 혹 와이프가 아프면 밀어줄 수 있도록 건강을 돌봐야겠구나” 하는 자책감이 든다고나 할까.

 

휠체어를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반성되는 사연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다리가 불편한 친구가 있었다. 평소에는 목발로 다녔고 비가 오거나 하면 휠체어로 등하교를 했다. 몸이 불편했어도 목소리가 괄괄했고 공부도 잘했다.그러고 보면 학교 생활하면서 그 친구에게 따뜻하게 말 한마디는 물론 목발 한 번 제대로 들어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휠체어를 밀어준 것은 더더욱 그렇다. 보살핌이나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던 시기이기는 하지만 뒤돌아 보면 몸이 불편했던 그 친구에게 너무도 무심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더욱이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고개를 들 수 없다. 당시 반에서 서울 소재 대학에 합격한 친구가 7~8명 정도였고 친구도 포함됐다. 대학별로 축제가 한 장 진행될 때인 5월, 서울로 올라온 친구들이 처음으로 모였다. 그 것도 그 친구가 다니는 대학(2명 입학)에서 첫 반창회를 했다. 그 친구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우리들만의 시간을 즐겼다. 왜 같이 어울려야 한다는 생각을 나는 물론이고 다른 친구들이 한 명도 이야기 하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25년 여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친구 근황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취직하고 결혼했다는 소식은 전해지지만 확인된 것은 없다. 당시 생각을 하면 어찌 그리도 철부지 행동을 했나 아쉬울 뿐이다. 배려심이 절대 부족했던 이기적인 모습에 대한 후회가 막심하다.

 

휠체어는 예전보다 기능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훨씬 좋아진 것 같다. 전동휠체어로 이동하는 사

람들 역시 많아졌다. 선천적 장애가 아닌 후천적 장애 비율이 높아진 탓인지 사회적 인식도 많이 변했다. 나 자신 뿐 아니라 내 주변, 내 가족의 일로 닥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지만 바람직한 흐름이다. 
 

사실 휠체어는 누군가 밀어주는 모습이 따뜻하고 아름답다. 혼자서 가는 게 아닌 누군가와 동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령화로 뇌질환을 비롯해 신경손상 등 다양한 질환의 증가로 휠체어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휠체어에 의지해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정상인과 다름없이 생활할 수 있는 문화가 빨리 자리매김했으면 한다. 
 

한편으로 다리가 불편했던 친구가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편견 많은 사회에서 부디 용기를 잃지 않고 건강하게 잘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불어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이 지면을 빌어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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