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 예찬
권은중 한겨레신문 문화부 차장
2012.04.16 09:20 댓글쓰기

얼마전 한 은행의 대표와 저녁자리가 있었다. 그런데 근엄하신 이 은행 대표께서 한국방송의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를 신나게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넌지시 “행장님 같은 분도 그런 프로를 봅니까?”라고 떠봤더니 돌아오는 답이 “개콘을 안 보면 요즘 대화에 끼지 못합니다”였다.
내가 개콘을 보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조카(형제들이 다 아이가 없어 우리 가문에서 키우고 있는 아이들이다) 2명과 소통을 위해서였다. 조카들이 유행어라고 말하면서 자기들끼리 빵빵 터지는데 나는 도무지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아니 아예 조카들의 말을 이해할 수가없었다. 조카들이 쓰는 유행어의 출처는 개콘이었다. 그래서 조카들과 함께  매일 일요일 저녁 개콘을 봤다.
맨처음 본 개콘을 생경했다. 도무지 참고 앉아서 보기 어려웠다. 그때 가장 참기 힘든 것 가운데 하나가 <남자의 자격>에서 나오는 윤형빈이 분장한 ‘왕비호’였다. ‘정말 비호감을 주는 녀석이라는 뜻’인데 그 말도 그 때 처음 알았다. 팬티스타킹을 입은 남자가 스모키화장을 하고 나와서 겨드랑이 털을 보여주면서 아이돌을 씹는 게 줄거리다. 아이돌도 별로였지만 팬티스타킹 입은 왕비호는 더 싫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왕비호가 재미있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개콘이 보였다. 당시나 지금이나 아이들이 말하는 유행어의 상당 부분은 개콘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왜냐면 다른 방송국에서는 코메디 프로가 완전히 싹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개콘을 보며 낄낄거리는 나를 유치하게 보기 시작했다. 아직도 그런 걸 봐요? 그런 이야기였다. 이 녀석들 봐라? 날 개콘의 세계로 끌어들인 게 누군데. 이제 와서 오리발이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난 어른이기도 했지만 이미 개콘에 중독됐기 때문이다. 
이후 개콘을 5년을 봤다. 주말 야근이 없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봤기 때문에(이른바 본방사수) 개콘의 각각의 에피소드를 줄줄 꿰고 있다. 또 빠진 것은 인터넷으로 다운해서 봤다. 그러니 거의 한번도 쉬지 않고 개콘을 본 셈이다. ‘개콘폐인’ 탄생이었다.
그런데 그 5년 동안 개콘은 엄청난 성장을 했다. 내가 맨처음 봤을 때 개콘의 간판스타는 ‘달인’이었다. 사실 개콘을 봤을 때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이 달인이었다. 무대 울렁증 때문에 대사를 못해 몸개그를 할 수밖에 없었던 김병만씨의 몸짓은 웃기기보다는 아름다웠다. 달인이 아닌데 뻔뻔스럽게 달인 흉내를 낸다는 컨셉은 회가 거듭될수록 바뀌었다. 김병만씨는 달인 흉내를 내는 어설픈 인간이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의 달인이 됐기 때문이다. 김병만씨의 성실함은 달인이 3년 넘게 코너를 유지할 수 있는 비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인외에도 개콘에는 인기 프로그램은 너무 많다. 인기 코너를 담당하는 개그맨들은 대부분 광고에 나온다. 김병만은 물론이고 최효종, 김현준, 김원효, 송병철씨 등등 5년전에는 이름도 없었던 개그맨들이 줄줄이 광고에 나온다. 개콘은 이제 주말 예능 시청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사물을 그냥 못보는 직업특성상 이리저리 뜯어보니 개콘의 성공비결도 보였다. 개콘의 성공비결은 치열한 경쟁, 공개방송, 신구조화 등 여러 가지다. 그런데 나는 좀 다른 걸 꼽는다. 개콘의 숨은 성공비결을 보여주는 코너는 바로  ‘봉숭아 학당’이다. 개콘 초기부터 계속됐던 이 코너는 얼마 전에야 없어졌다. 사실 재미가 없어 봉숭아 학당을 시작하면 텔레비전을 끄기도 했다. 담당 피디 역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가장 고민이 봉숭아 학당이었다고 말했다. 봉숭아 학당은 프로그램의 마지막을 장식하기도 좋은데다 다른 코너가 없는 개그맨을 출연시키기 좋다며 대체할 코너가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개콘은 내부 경쟁이 치열하다. 코너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아예 통편집을 하기도 하고 코너 자체를 없애 버린다. 치열한 경쟁은 언제나 탈락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화면에 등장하지 않으면 출연료는 한푼도 없다. 일주일 내내 아이디어 회의에 공연준비에 나서고도 한푼도 못 벌어가는 셈이다.  
그런데 봉숭아 학당은 이런 개그맨들을 위한 안전판 역할을 했다. 얼굴을 내미는 것만으로도 1회 출연료인 50만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콘식 사회안전망은 봉숭아 학당 이후 점점 확대됐다. 개콘은 봉숭아 학당 대신 ‘슈퍼스타 케이’라는 장기자랑 코너를 만들었다. 2년 가량 유지됐던 이 코너는 물론 주목할만한 중진 개그맨들도 나오지만 신인들이 대거 나왔다. 예를 들면 소녀시대를 흉내낸 조교시대란 출연진이 있었는데 이들은 완전히 신인들이었다. 이 신인들이 지금은 이름이 알려진 류근지(최효종과 애정남에 나오는 인물) 이상훈(송병철 정태호와 함께 감사합니다 코너에 나옴) 등이다. 빼어난 개인기가 없어 자기 코너를 갖지 못하는 신인들을 배려한 것이다.
개콘의 배려는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풀하우스’란 코너에서 더욱 빛난다. 좁은 집에 많은 식구들이 복닥복닥 살아가는 모습을 정감있게 그려내는 코너인데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신인이거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개그맨이다. 한번에 10여명 가깝게 출연해 이들에게 출연료를 줄 수 있다. 거기다 재미있기까지 하다.
개콘의 또하나의 성공비결은 개방성이다. 개콘은 한국방송 개그맨 공채 출신에게만 열려있지 않다. 서울방송 출신의 김준호씨처럼 외부에서 수혈을 해오기도 한다. 또 공채출신이 아니라 서울 동숭동 공개무대에서 이름을 날리는 인물들도 적극 영입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최근에는 서울방송으로 옮긴 변기수씨이다. 메기와 함께 넣어놓은 미꾸라지가 자기들끼리 있는 미꾸라지보다 더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는 경영원칙을 떠올리게 한다.
개콘의 개방성은 구성원뿐 아니라 프로그램의 형식에서도 적용된다. 개콘은 한 코너가 다른 코너와 중첩된다. 달인이 진행되는 도중에 애정남의 최효종씨가 불쑥 등장하는 식이다(애정남은 달인이 폐지된 이후 나와서 실제 이런 경우는 없다.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다). 또 달인에 뜬금없이 인기 가수 소녀시대가 등장하는 식이다. 자기 밥그릇을 내놓지 않으려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개콘의 개방성은 정말 신선했다.
이런 개방성은 무엇보다 개콘의 자신감으로 읽힌다. 이는 개그맨 김원효씨의 인터뷰에서도 나타난다. 김씨가 방송국 복도에서 소녀시대를 만났는데 그들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말하려했더니 소녀시대 멤버들이 자신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해서 놀랐다는 말을 했다.
개콘의 모든 코너는 이처럼 열려 있다. 이런 열린 구조는 우리 전통극 마당놀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진행에 활력을 준다. 자신들이 할 수 없는 풍자와 해학도 가능하다. 방청석에 있던 스타들이 무대로 올라오는 점은 실제로 마당극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요즘은 너무 열려 있어서 조금 식상하기도 하다. 매 코너에 가수와 연기자가 등장해 자기 홍보를 하거나 다른 코너 출연자가 등장하는 것은 개콘의 장점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개콘이 홍보매체로 전락한 듯한 인상을 준다.
마지막으로 개콘에 더 많은 사람을 화면 앞으로 모이게 한 것은 풍자정신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 금기에 대해 서슴없는 풍자를 퍼붓는다. 강용석 의원이 국회의원을 모욕했다는 혐의로 ‘사마귀 유치원’의 최효종씨를 고소하자 개콘은 이에 개그로 그를 풍자하면서 정면으로 맞섰다. 단연 톱뉴스가 됐다. 여론의 반응은 개그맨보다 국회의원이 더 웃기다였다. 이런 여론 덕분에 개그맨과 국회의원의 대결의 승부는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많은 시청자들이 통쾌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개콘은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갔다. 개콘 피디인 서수민씨가 개그의 소재로 등장한 것이다. ‘용감한 녀석들’에서 개그맨 박성광씨는 담당 피디인 서수민 피디의 얼굴이나 몸무게 등을 용감하게도 희화하고 있다. 이는 비판으로 먹고사는 언론들은 그 비판의 칼날을 내부로 겨누지 않는 언론인의 입장에서 보면 참 놀라우면서 부끄러운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보스도 비판하는데 누구를 비판하지 못하겠는가라는 선언으로까지 읽힌다.
내가 이렇게 개콘을 기자랍시고 꼼지락꼼지락 혼자서 뜯어보는 사이 날 버리고 가버린 조카들이 이제는 내 옆에 앉았다. 중학생이 된 조카들이 개콘을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날 보고 유치하게 그런 걸 보냐고 핀잔을 주던 조카들은 이제 나보다 더 낄낄거리면서 개콘을 본다.
머리가 굵어져 개콘이 주는 풍자의 묘미를 이제 조금 이해하기 시작한 것일까? 아니면 중학교에 들어와 학원을 다니며 입시에 쫓기는 녀석들이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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