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원하는 방문진료, 힘들어도 끝까지 도전"
김주형 집으로의원 원장
2023.09.11 12:05 댓글쓰기



지난 2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지역 최초로 방문진료만 하는 집으로의원이 개원했다. 출입문에는 '방문진료 중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걸려있다. 구교윤 기자


병원 설비는커녕 대기실, 진료실도 없다. 눈에 보이는 건 냉장고가 들어선 탕비실과 컴퓨터가 놓인 책상이 전부. 병원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황량한(?) 풍경에 고개를 갸우뚱 하는 순간, '방문진료 중입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 2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지역 최초로 방문진료만 하는 의료기관이 문을 열었다. 전국적으로 외래진료 없이 방문진료만 하는 의료기관은 10곳 안팎으로 추정된다.


집으로의원 김주형 원장은 "고민하면 할수록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 것 같았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주대학교병원 교수 출신인 김 원장은 30여년 간 대학병원, 개인의원, 공공기관 등을 거친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특히 아주대학교 요양병원 진료부원장을 역임하면서 '수원형 커뮤니티케어 모델'을 구축하는데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평소 방문진료에 관심이 많던 그는 비단 의료기관 접근성이 떨어지는 환자군이 와상환자나 고령환자 뿐 아니라 중증장애인도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들이 의학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가정에서 지내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많음을 체감했다.


김 원장은 "여러 이유와 사정으로 요양병원을 찾았지만 환자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집으로 가고 싶다'였다. 내가 움직이면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주형 원장이 방문진료를 위해 구입한 차량. 좁은 골목과 비탈진 언덕을 다니기 위해서는 경차가 유리하다.

오랜기간 환자를 돌봐왔지만 개원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환자를 진료를 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방문진료만 하는 의원'을 운영하는 건 그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자 그는 전국에서 방문진료를 운영하는 의원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몇 달에 걸친 준비 끝에 2023년 2월 13일 집으로의원이 문을 열었다.


방문진료는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 전문가가 환자 집이나 다른 장소를 방문해 진료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병원에 방문하기 어려운 경우나 병원까지 이동이 불편한 경우 등에 유용하게 이용된다.


김 원장은 "방문진료를 요청하는 환자는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다. 병원에 가려면 사설 응급차를 이용하거나 택시나 자차를 이용해야 하지만 이들에게는 각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김 원장이 찾은 환자는 50대 중년의 장애인으로, 평생을 스스로 집 밖을 나와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2층에서 아흔을 바라보는 노모의 보살핌을 받는 박씨(54세)에게는 병원을 간다는 건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차를 타고 20여 분을 이동해 도착한 박 씨네 집. 가파른 경사면에 위치한 빌라촌은 주차할 공간을 찾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김주형 원장과 이송 간호과장이 방문진료에 필요한 물품을 챙기고 환자 집으로 향하고 있다. 

"아휴 몸이 또 안좋아요? 좀 어떠세요?"


박 씨를 만난 김 원장은 넉살이 잔뜩 배어있는 인사를 건네며 진료를 시작했다. 방문진료에서는 초음파 검사와 혈액 검사, 수액 치료, 처방전 발행 등이 모두 가능하다.


박 씨는 당초 예정대로라면 방문 시기가 남아있었으나 최근 구토와 설사 증세를 겪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일정을 앞당겼다.


김 원장은 동행한 이송 간호과장과 함께 박 씨 혈압과 혈당, 맥박, 호흡 등을 파악하고 수액 치료 등 처방을 시행했다.


박 씨는 2살 때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지만 심한 신체장애를 동반하고 있어 거동이 불가능했다. 문제는 신체장애 등급을 받으면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병원을 가지 못해 등급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다.


김 원장은 박 씨를 위해 지역장애인 보건의료센터와 합심해 신체장애 등급을 받는 데도 힘썼다. 장장 세달에 걸친 여정이었다.


오후 1시 30분에 시작한 진료는 2시가 넘어서야 끝이났다. 3분 진료라 불리는 대학병원과는 거리가 먼 셈이다. 김 원장은 이렇게 하루 평균 10~12곳을 방문한다.


김 원장은 "진료시간은 늘었지만 서둘러 환자와 보호자를 내보내야 했던 대학병원 근무 시절과 비교하면 만족도는 비교할 수 없다"며 "환자 주 무대인 가정에서 환자와 보호자와 보내는 시간이 오히려 고맙기만 하다"고 말했다.


"환자들 높은 만족도에도 의료기관 참여 저조, 참여율 제고 유인책 절실"

"방문진료 활성화는 기존 의료시스템 통합·연계가 핵심"

"시범사업 인지도 부족, 국민들 인식 높이는 홍보 활동 강화 희망"


김주형 원장이 이송 간호과장과 함께 환자 혈압과 혈당, 맥박, 호흡 등을 파악하고 수액 치료 등 처방을 시행하고 있다.

방문진료는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참여하는 의료기관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일례로 보건복지부는 2019년 12월부터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나 이 시범사업에 등록한 의료기관은 526곳으로 전체 의료기관 0.4%에 그친다.


김 원장은 "경상북도에서도 진료가 가능하냐는 문의를 받은 적이 있다. 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전화를 하는 환자를 보면 그저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했다.


김 원장은 방문진료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외래진료 없이 방문진료만 하는 의료기관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모호한 지침과 낮은 수가를 개선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 원장은 "방문진료는 외래진료와 함께 운영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방문진료만 하더라도 일정 수입이 생겨야지만 의사들도 관심을 갖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이 우스갯소리로 '방문진료로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 이유도 같은 배경에서다. 본인이 잘 되는 모습을 보여야 더 많은 의사가 관심을 가질 것이란 생각이다.


김주형 원장이 환자에게 약 처방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에서 직접 공수한 휴대용 프린터를 꺼냈다.

김 원장은 수가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새로운 분야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진 분야를 통합하고 연계하고 조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방문진료를 하다보면 환자를 위해 고민하고 애쓰는 많은 분을 만날 수 있다"며 "문제는 이분들이 다른 분야의 도움을 얻고자 할 때 어디에 연락해야 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현재 방문진료 분야에서 시행 중인 시범사업만 5~6가지다. 각각 따로따로 조회하고 기록하고 청구해야하고 방문진료에 적합한 전자차트나 관리 프로그램도 없다.


김 원장 역시 환자 주거개선, 요양보호사 문제, 병원 연계, 복지 연계, 행정적 절차 등을 알아보기 위해 진땀을 빼곤 한다.


김주형 원장이 환자 보호자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시범사업에 대한 홍보가 부족한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자체조차 관련 사업을 물어보면 되레 '그게 무엇이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김 원장은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방문진료와 거리가 멀어서 할 수 없다"며 "방문진료를 하는 의사가 지역사회 의료와 복지를 통합 관리할 수 있어야만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지역 통합 돌봄 시스템이 발전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의사가 방문진료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방문진료 모델을 만들고 싶다. 무모하더라도 끝까지 도전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시간을 평생 지내던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신 어르신, 임종을 집에서 하고 싶어 하는 가족, 면회가 금지돼 사랑하는 남편과 부모님을 못본다면 차라리 집에서 모시는 게 맞지 않냐며 울먹이던 누군가의 아내이자 자식들 모두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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