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결단코 의대 정원 확대 합의 없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
2023.06.29 06:05 댓글쓰기

의료계 종주단체인 대한의사협회가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수술실 CCTV 의무화, 간호법, 의사면허법,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등 쏟아지는 현안에 숨가쁜 나날의 연속이다. 복잡한  고차방정식 문제들을 풀기 위해 14만명 의사들 수장인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은 실리에 입각한 대화와 타협 노선을 택했다.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한 실용주의 리더십은 의미있는 성과도 냈다. 의료계의 공분을 샀던 간호법을 저지했고, 불가항력적 분만 사고 보상 입법 가능성을 높이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동조했다는 오해가 불거지면서 일각에서는 불신임 추진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복잡다단한 현안에서 고군분투 중인 이필수 회장은  담담한 어조로 "갈등보다는 의사 회원들이 단결된 모습으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나가겠다"고 의지를 피력했다. 데일리메디는 6월 28일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을 만나 작금의 상황에 대한 소회와 향후 계획 등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담을 나눴다. [편집자주]




"투쟁보다는 대화와 타협, 흔들림 없는 소신"


이필수 회장은 임기 초부터 대화와 타협을 통한 실리 추구를 원칙으로 삼았다. 대정부, 대국회 대화 채널을 활용해 역대급으로 안정적인 대외협력 관계를 구축했다는 평(評)이다. 


그러나 야당의 간호법, 의사면허취소법 강행으로 그의 소신에도 의문부호가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강경 투쟁 노선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필수 회장은 "무조건 대립각을 세우던 투쟁 대응 방식 대신 실리를 챙기며 상호 존중 및 협력하는 전문가 단체의 위상을 만들어 가겠다는 소신은 흔들림이 없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Q. 투쟁 부활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투쟁보다 타협과 소통이 중요하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시대가 바뀌었고,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현안들이 계속 늘고 있다. 어렵고 힘들지만 인내심을 갖고 국민 눈높이에 맞춰 대화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회원 권익보호의 길이기도 하다. 


Q. 타협 리더십에 대한 회의론도 적잖다

회장 취임 후 6개월 동안 100여 명의 정치인들을 만났다. 보건복지위원회를 비롯해 정무위, 법사위 의원들을 만나 의료계 입장을 전달했다. 의사면허취소법은 원래는 바로 통과될 예정이었지만 설득을 통해 숙고의 기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패스트트랙'은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독소 조항 최소화를 위한 시행령 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불가항력 분만 사고 보상법이 상임위를 통과됐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관련 보험업법의 경우 심평원 중계기관 제외, 처벌 규정 삭제 등 의료계 입장이 많이 반영됐다. 


Q. 의협 집행부의 의대 정원 확대 대응에 적잖은 불만이 표출

결단코 의대 정원 확대에 합의한 바 없다. 그 부분은 정확히 짚고 싶다. 정부와 국회가 어떤 방식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고자 하는지 인지해야 한다. 의료현안협의체에서 해당 안건을 논의한 배경이다. 가장 위험한 상황은 무조건 반대만 하다가 정부 방침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여러 방어선을 구축하고 회원 권익을 보호하면서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최선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Q.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의 의대 정원 확대 의지가 확고해 보인다

의사 인력이 늘어난다고 그 인원이 필수의료 분야로 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 2003년 의사 수가 8만명 정도였다. 지금보다 6만명 정도 적은 인원이지만 필수의료 공백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의사가 14만명으로 늘어난 상황에서 왜 필수의료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는지에 대해 천착이 필요하다. 의사수를 늘리면 필수의료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시각은 근시안적이고 무책임하다. 


"수술 할수록 적자 늘어나는 구조에 전공의 고강도 업무, 필수의료 붕괴는 예고된 현실"


Q. 필수의료 붕괴 원인을 진단한다면 

우리나라 필수의료 분야 수가는 OECD 국가들 대비 처참한 수준이다. 고난도 심뇌혈관 수술에 의사 7~10명이 투입되지만 수가는 300~400만원에 불과하다. 수술 할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구조이다 보니 병원들 입장에서는 의사 채용을 주저한다. 고강도 업무 강도가 명확한 상황에 전공의들도  지원을 꺼린다. 번아웃에 대한 우려는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가장 시급한 대책은 필수의료 수가 정상화다. 정부가 새로운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Q. 응급실 뺑뺑이 사망사건도 계속 터지고 있다
필수의료 분야 지원이 나날이 줄어드는 이유는 의료분쟁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과거에는 수술 성공률이 20~30%만 되더라도 수술을 했다. 가능성이 낮더라도 최선을 다하면 환자들이 이해했지만 요즘은 전혀 다르다. 수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의료소송으로 이어진다. 위험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자연스레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의료사고특례법' 제정이 필요하다. 필수의료를 수행할 수 있는 재정적, 제도적 틀이 마련되지 않으면 아무리 의사수를 늘려도 그 공백을 메울 수 없다. 구멍 난 독에 물을 붓는 격이다.

Q. 필수의료 공백 해소 대책은
의사 양성에 여자는 11년, 남자는 14년이 소요된다. 지금 공공의대를 설립하거나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고 해서 당면한 문제를 풀기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시니어 의사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의료공백이 큰 지역의료 살리기에 가장 좋은 대안이다. 실제 설문조사를 해보니 상당수 시니어 의사들이 주거지를 옮길 의향도 있었다. 시니어 의사와 지역공공의료기관 매칭사업은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

"후배 의사들 위해서라도 디지털 기술 순응 자세로 선제적 대응 모색"


의료, 바이오, 정보통신기술 발전으로 의료 패러다임도 가파르게 변화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때 한시적으로 도입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도 이 같은 맥락이다.


이필수 회장은 "산업구조 변화와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며 선제적 대응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Q. 기술 발전으로 의료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변화를 거부하고 현재에 안주하면 안 된다고 여겨 지난해 7월 정보의학전문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회를 통해 비대면 진료, 전자차트 인증, 의협 주도 의료 플랫폼 구축, 의학정보원 설립, 공적 전자처방전 대응에 나서고 있다.


Q.'선제적' 대응을 강조한 이유는

의협이 선제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후배의사들 입지가 줄어든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등 기술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보건의료 데이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유관단체들과 플랫폼 연대를 만들기도 했다.


"의료계, 내홍 아닌 '단합' 절실한 시기"


Q.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어떻게 평가하다

아쉬움이 크다. 특히 병원급 의료기관의 비대면 진료 허용과 소아청소년 야간(휴일) 초진 상담이 우려된다. 현재 의료전달체계 붕괴로 일차의료기관들이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소아청소년 '초진 상담'은 법률적으로도 '진료'와 같은 수준의 법적 책임이 적용되는 만큼 의료계 내부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다. 정부가 시범사업을 시작하며 3개월 계도기간을 갖기로 한 만큼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비대면 진료에 대한 문제점 및 개선 방안을 정리해서 건의할 예정이다. 


Q. 남은 임기 동안 주력할 부분은

회원권익 보호, 정치적 역량 강화 및 의협 위상 제고와 강화다. 의협회장 취임 직후부터 회원 권익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현재까지 4만건이 넘는 민원이 접수됐다. 24시간 내 회신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정치적 역량 강화를 위해 의사들의 정치 참여를 적극 지원하고, 보건복지의료연대와 내년 총선을 대비해 정책 제안을 하려고 한다. 아울러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위해 사회공헌활동도 지속하고 있다.  집행부가 부족한 부분에 대한 건전한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한다. 다만 의료계가 많이 어려운 상황이다. 갈라진 목소리보단 한목소리를 내며 이 시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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