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피습 사건을 계기로 의료인 폭행을 가중처벌토록 한 이른바 ‘임세원법’의 실효성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대학병원 교수 피습 사건 이튿날인 지난 11월 5일에도 가평군 설악면 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60대 남성이 의사와 간호사를 흉기로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해 우려를 키웠다.
의료인에 대한 폭행을 엄벌하기 위해 법정형을 대폭 상향했지만, 실제 사법 현장에서는 법정형에 못 미치는 처벌이 내려지는 사례가 적잖기 때문이다.
임세원법은 지난 2018년 12월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고(故) 임세원 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마련됐다.
의료행위가 이뤄지는 장소에서 의료인을 폭행하거나 협박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게 골자였다.
세부적으로 의료인을 폭행해 상해에 이르게 하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7000만원의 벌금에 처할 수 있으며, 중상해는 3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으로 가중처벌한다.
의료인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문제는 이처럼 법정형을 높였음에도 실제 처벌이 의료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의료계가 지적하는 문제 역시 법정형과 실제 선고형 사이의 괴리다.
실제 임세원법 시행 이후에도 의료진 폭행 사건의 상당수가 수십만원에서 300만원 수준의 벌금형에 그치거나 징역형이 선고되더라도 집행유예가 내려지는 등 처벌 수위가 낮았다.
특히 응급의료법상 응급실 의료진 폭행으로 상해가 발생하면 1000만원 이상 1억원 이하의 벌금형이 가능하지만 법정 벌금 하한액조차 제대로 적용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물론 일부 사건의 경우 실형이 선고된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19년 발생한 노원을지대병원 정형외과 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손가락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은 사건은 가해자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수부외과 전문의에게 손가락 손상은 사실상 수술 역량 자체를 위협하는 피해라는 점에서 의료계의 공분을 샀고, 재판부도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중형을 선고했다.
같은 해 12월 순천향대 천안병원 심장내과 교수가 진료실에서 사망환자 유족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사건 역시 가해자에게 징역 1년 6개월 판결이 내려졌다.
이처럼 실형 선고 사례도 존재하지만 의료계가 우려하는 것은 폭행 위험성과 피해 정도에 비해 처벌의 엄정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계가 더욱 우려하는 대목은 임세원법 시행 이후에도 의료인 대상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2년에는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의사가 흉기에 찔리는 살인미수 사건과 대학병원 응급실 방화 사건 등이 발생했다.
지난 5일에는 “두통이 낫지 않는다”며 병원에서 의료진을 흉기로 위협하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행패를 부린 60대 남성이 경찰에 검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해당 의원에서 진료받았는데도 증상이 더 심해졌다”며 진통제 투여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의사와 간호사에게 욕설하고 흉기를 휘둘러 위협한 혐의다.
이 처럼 의료기관 내 폭력이 단순한 진료 방해나 우발적인 폭행을 넘어 의료진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피습 사건 역시 이러한 우려를 재확인시켰다.
사건 이후 의료계에서는 법정형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의료진의 안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진료실은 의사와 환자가 일대일로 대면하는 경우가 많고, 보안인력이 상시 배치되더라도 흉기를 소지한 가해자의 돌발적 공격까지 완벽하게 차단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결국 처벌 강화와 함께 실제 사법 현장에서 법정형 취지가 구현되는지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의료계 한 인사는 “임세원 교수 사망 이후 의료진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가 마련된 지 7년이 지났지만, 또 다시 대학병원 진료실에서 흉기 피습 사건이 발생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제 법정형을 높이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실제 처벌과 예방으로 이어지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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