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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리간드치료제(RLT)가 항체약물접합체(ADC)를 잇는 차세대 항암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대한민국 암 사망 원인 상위 9개 암종인 폐암, 간암, 위암, 대장암, 췌장암 등 모두 고형암으로 전체 암 가운데 93.3%다. 80% 이상은 면역항암제 반응이 제한적인 ‘콜드 튜머(Cold Tumor)’다.
RLT는 기존 ADC와 면역항암제가 듣지 않는 난치성 고형암, 이른바 ‘콜드 튜머’에 효과적이기에 희귀 난치암인 췌장암, 삼중음성유방암 등 암종에서 새 치료 가능성을 열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K-헬스미래추진단은 미정복 질환 극복을 위한 ‘한국형 ARPA-H(보건의료고등연구계획)’의 하나인 RACE(Rapid Advancement in Cold tumor Elimination)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RACE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규 약물 발굴과 신속 검증을 통해 미충족 의료수요 해결을 목표로 하는 과제다.
미정복 질환 극복 RACE 프로젝트 연구 책임자인 강건욱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는 RLT가 바꿀 항암 치료 패러다임과 우리 기술 글로벌 확장 가능성에 주목했다.
AI 기반 RLT 신규 약물 발굴 난제 도전
RLT는 차세대 항암 기술로 각광 받지만 개발 과정은 난제에 가까운 영역으로 꼽힌다.
암세포에만 결합하는 표적 발굴, 리간드 설계 등 전 과정에서 하나라도 어긋나면 실패하기 때문이다. RLT 시장은 과거 반감기가 짧고 주문 기반 생산이 필요해 시장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때문에 RACE 프로젝트는 출발부터 성공 가능성에 의구심이 컸던 과제였다.

하지만 몇 년 사이 빅파마를 중심으로 고가 맞춤형 치료제 시장이 형성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고, 최근 대한민국 연구진도 AI를 통해 이 난공불락 요새에 균열을 내고 있다.
연구팀은 AI를 활용해 무려 1297개의 후보군을 실제 실험 가능한 수준으로 압축했으며, 이 중 5개 후보물질을 합성·평가한 결과 동물 연구에서 탁월한 표적 선택성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단순 컴퓨터 예측에 그치던 기존 AI 신약개발 한계를 넘어, 실제 합성부터 방사성동위원소 표지, 동물 검증까지 연결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강 교수는 “바이오인포매틱스와 AI를 활용해 RLT에 적합한 신규 표적과 리간드 후보를 발굴하고, 동물실험까지 진행했다”고 전했다.
이어 “방사성동위원소를 표지한 후보물질이 표적 양성 종양에는 축적되고, 표적 음성 종양에는 거의 가지 않는 선택성을 확인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AI가 넘은 신약 ‘죽음의 계곡’…RLT 후보물질 동물실험 검증
그는 “1000개가 넘는 후보물질 중 검토를 거쳐 실험 가능한 수준까지 줄였다”며 “기존이라면 수백 개를 합성, 평가해야 했지만 소수 후보만으로 동물실험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RLT에 적합한 리간드는 표적 단백질 세포막 바깥쪽 포켓에 잘 들어가 강하게 붙어야 한다. 이런 소분자 구조를 빠르게 기존에 없던 새로 만들고, 평가, 분석하는데 AI가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특히 AI 예측이 실제 실험 데이터와 완벽히 일치했다는 점이다. AI 신약 개발은 그동안 기대감은 컸으나 실제 유효 물질 합성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동물 모델 실험에서 표적이 있는 종양에는 약물이 뚜렷하게 축적되는 반면, 표적이 없는 종양에는 거의 가지 않는 표적 선택성을 확인한 것이다.
강 교수는 “연구진 내부에서도 처음에는 AI 후보가 실제 약물이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있었지만, 1단계 성과를 통해 그 불확실성을 완전히 불식시켰다”고 강조했다.

서울대병원·KAIST·퓨쳐켐 협력…한국형 아르파(ARPA-H) 미충족 의료 수요 해결 원팀
RACE는 서울대병원, 서울대, KAIST(카이스트) 등이 참여하는 컨소시엄형 과제다.
서울대병원은 임상과 비임상 검증, 환자 조직 기반 평가, 향후 임상시험 설계를 맡고 있고, KAIST는 AI 기반 타깃·리간드 탐색과 최적화, 서울대 연구진은 방사화학 합성 및 평가 등을 맡는다.
해당 과제는 치료 선택지가 부족한 난치병 환자들을 위한 후보물질 발굴은 물론, AI를 활용해 신약 개발 기간을 30% 이상 줄이는 게 목표이기에 매우 도전적인 프로젝트다.
RACE 프로젝트를 기획한 김윤빈 K-헬스미래추진단 PM은 해당 과제를 기획 초기부터 면역항암제 한계를 넘어 고형암이라는 미충족 의료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기획했다.
김 PM은 “국민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미충족 의료영역이 어디인지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암이었다”며 “최근 면역항암제가 기존 항암제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할 만큼 혁신적이지만, 실제 암 사망률이 드라마틱하게 줄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암 사망률 상당 부분은 고형암으로, 면역항암제에 반응할 수 있는 비율은 암종마다 다르지만 제한적”이라며 “때문에 새로운 치료 옵션이 계속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구조 기반 AI, 합성·방사화학, 임상 전문가, 기업, 학계 등이 한 팀으로 단시간에 RLT 맞춤형 후보를 도출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처음에 가까운 시도”라고 설명했다.
한국형 ARPA-H가 지향하는 방식은 하나의 연구실, 기업 단독으로 모든 단계를 수행하기보다, 병원·AI 연구진·방사화학자·기업이 초기부터 같은 목표를 두고 움직인다.
강 교수는 “세상에 없던 화학물질을 만들고, 합성·동물검증으로 연결한 구조”라며 “이런 팀 구성이어서 불가능해 보였던 신규 타깃 기반 RLT 개발을 단기간에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단일 신약 후보물질 도출 넘어 플랫폼 확장 기대감
RACE는 총 4년 6개월 동안 진행되는 단계형 연구과제로, 2024년 말 시작돼 2029년까지 신규 타깃·리간드 발굴, 비임상, IND 제출 및 임상시험 승인 단계(3단계)까지 압축적으로 추진된다.
강건욱 교수팀은 현재 1단계를 통과했으며, 향후 비임상 유효성·독성 평가와 치료용 동위원소 전환 검증을 거쳐 마이크로도징(초기 임상)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강 교수는 “RACE 연구기간은 4년 2개월 안팎으로, 이 기간 내 식약처 IND 제출까지 가겠다는 목표”라며 “실제 시작 기점은 2024년 11월부터로, 현재는 1단계를 통과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일 신약 후보물질 도출을 넘어선 플랫폼화 기대도 크다.
AI가 표적과 리간드를 찾고, 이를 병원과 기업이 즉각 합성·검증해 임상으로 연결하는 이 패스트트랙 구조가 완성되면 다른 암종으로 확장은 시간문제라는 설명이다.
그는 “검증 구조가 안착되면, 다른 난치암에도 동일한 플랫폼을 적용할 수 있다”면서 “짧은 기간 내에 신약 후보들이 연속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신약 공장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아가 국내 방사성동위원소 공급망과 GMP 인프라, 원자력 소부장 산업을 잇는 거대한 국가적 성장축이 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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