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을 이제 누구한테 지키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
2026.05.25 16:14 댓글쓰기

[특별기고] 최근 응급실에서 뇌경색 환자 진단이 지연된 사건을 두고, 법원은 당시 진료를 보았던 전공의들에게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금고형의 집행유예라는 가혹한 형사처벌을 내렸다.


이에 대해 전(全) 의료계와 응급의료 현장은 분노하고 있으며 당장 이 판결 이후 음주환자 응급실 수용을 꺼리는 분위기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 사회 최후 안전망이 이런 판결을 접할 때마다 조금씩 위태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형법 제268조 ‘업무상 과실치사상’은 위험을 수반하는 업무 종사자에게 고도의 주의의무를 강제해 국민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법원은 이를 바탕으로 "의료는 고도의 위험 업무이므로 의사에게 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주의의무를 지워야 한다"고 판결에 인용한다.


의료 현장에 완벽함이라는 과도한 사법적 잣대 들이대는 현실


지만 과연 의료 현장에 완벽함이라는 과도한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일까?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에서 의료사고가 의사의 ‘형사 처벌(감옥행)’로 이어지는 경우

는 극히 드물다.


환자를 살리려고 하다가 발생한 의료행위에 결과가 좋지 않다고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경찰서로 부르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영미권 법 체계에는 애초 의사를 가중 처벌하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이라는 죄목 자체가 없다. 범죄가 성립하려면 ‘악의적 의도’나 ‘극단적 무모함(술에 취해 수술하는 등 상식 밖의 중과실)’이 있어야 한다.


진료 과정의 판단 착오인 ‘단순 과실’은 범죄가 아니라 민사상 불법행위로 본다. 인체를 다루는 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결과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을 법리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의사를 전과자로 만든다면 의학 ‘존립 불가’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의사를 전과자로 만든다면 의학 자체가 존립할 수 없다는 확고한 사회적 합의가 깔려 있다. 대신 확실한 ‘민사 배상’ 시스템과 전문가 집단 내부의 '독립적 면허 관리기구'를 통한 행정처분으로 형벌을 대신한다.


의료 과실을 형사적으로 처벌하면, 의사들은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위험한 중증 환자를 피하고 불필요한 검사를 남발하는 ‘방어 진료’에 빠지게 된다. 이는 공중보건의 심각한 저해로 이어지기에 국가 차원에서 의료인 형사처벌을 극도로 자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응급실 오진이나 처치 지연은 과로에 찌든 전공의 한 명을 희생양 삼을 것이 아니라 부족한 인력 구조, 미비한 환자 분류 시스템, 엉망인 당직 콜 체계 등 ‘병원과 의료시스템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나라 현실은 참담하다. 결과가 나쁘면 보호자는 제한 없이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다. 기소

된 의료진은 명확한 객관적 기준도 없는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했는지 비전문가인 법원에 의해

평가받아야 한다.


아무리 현장에서 사투를 벌였어도 판결문에 “100% 완벽하지 않았으니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다”라고 적히면 그만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은 수동적으로 몸을 사릴 수밖에 없고, 이는 현장의 많은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응급실을 떠나는 가장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사고가 났던 그 응급실 상황을 복기해 보자. 권역응급의료센터인 그곳은 환자들로 인해 발 디딜 틈조차 없었을 것이다. 담당 교수는 다른 구역을 맡았고, 전공의들도 각각 10명 이상 환자를 동시에 진료해야 하는 아비규환 상황이었다.


교수와 전공의가 여유롭게 환자 상태를 더블 체크하는 외국식 시스템은 한국에선 사치다. 비용과 효율성만을 좇아 의료 질(質)을 포기한 시스템을 방치한 채, 진단 오류가 발생하자 꼬리 자르기식으로 교수도 아닌 전공의 개인에게만 강한 형벌을 내리는 것이 과연 정의인가?


응급실 등 현장 혼란스러운 특수성 무시되고 보호자 입장 우선, 의사행위가 중과실로 둔갑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역시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을 지켜줄 수 없다.


현장의 혼란스러운 특수성은 무시된 채 보호자가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느끼거나 주장하는 순간 의사 행위는 곧바로 ‘중과실’로 둔갑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의사씩이나 돼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전공의들이 처벌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판례로 인해, 앞으로 응급실 의사들은 '음주 환자라도 무조건 MRI를 찍거나 24시간 관찰하지 않으면 처벌받는다'는 강박감에 시달리게 됐다.


실제로 최근 5년 새 CT, MRI 등 고가 영상검사 건수가 30% 이상 폭증했다. 이는 오진을 형벌로 다스리는 기형적인 사법 시스템이 낳은 방어 진료의 당연한 결과이며 이런 막대한 비용은 결국 국민이 떠안게 된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사명감 하나로 버티는 후배들의 등 뒤에 감옥이라는 칼날을 겨눈 채, 개인을

마녀사냥 한다고 해서 본질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최후 안전망인 응급실 불빛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는 상황


전문의 중심 인력 확충 및 응급의료체계 전면 개편, 그리고 선의의 의료행위에 대한 실효성 있는 법적 보호 장치가 절실하다.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의료사고를 정부가 책임지고 충분히 보상해 환자와 의료진을 모두 보호해야 한다.


의료인들이 자체적으로 의료사고를 조사하고 잘못이 있는 부분을 객관적으로 확인해 면허 가치와 기준을 확립하고 비슷한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자정능력을 키워야 한다.


법의 존재 목적인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이런 판결들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료인도 피해자이고 국민도 피해자일 뿐이다.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공의를 처벌한다고 이런 사고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방어진료와 수용성 저하로

인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큰 문제들이 생길 것이다.


의사들도 안전하지 못하고 국민들도 안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한민국 최후 안전망인 응급실 불빛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다.


한 번 망가진 필수의료 시스템을 복구하는 데는 수십 배 비용과 노력이 든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의사들에 대한 과도한 사법의 칼춤을 당장 멈추는 것만이 국민 생명과 응급의료 붕괴를 막는 최소한의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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