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도 복지부 예산안은 ‘복지·돌봄 안전망은 두텁게 보장하고, 지역·필수·공공의료는 촘촘하게 구축한다’ 설명했지만 세부 항목을 보면 산업화 중심 지출이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은 올해 137조 6480억원으로 전년 대비 9.7% 증가했다. 하지만 보건부문은 3.7% 증가에 그쳤다. 이는 사회복지 부문 10.7%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의무지출 증가 대부분이 사회복지 부문에 포함된다는 점을 감안해해 상당히 낮다.
왜 이런 수치가 나타났는지를 살펴보면 보건의료 세부 항목은 4조 6707억 원으로 11.8% 증가했지만, 건강보험은 1.3% 증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예산 증가 규모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인공지능(AI) 정책 기조와 연관져 생각했을 때 더 우려되는 지점은 보건의료 R&D 예산이 32.8%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표면적으로는 ‘필수·공공의료 확충’을 내세우지만, 실제 재정 배분 방향은 산업과 기술 중심 성장 프레임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복지국가의 사회정책이 아닌 산업국가 경제정책으로서의 보건의료가 강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공공의료 부문, 건강보험 부문, 보건산업 부문으로 나눨 살펴 볼 수 있다.
공공의료분야 인력보다 ‘기술’, 지역보다 ‘대형병원’
올해 공공의료 예산의 상징적 항목은 ‘지역거점병원 공공성 강화’다.
표면적으로는 764억원에서 3288억원으로 330% 이상 증액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공의료 예산으로 넘어온 기존 혁신지원사업을 제외하면 실질 증액은 155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증액의 방향성이다. 지방의료원에는 시설·장비 현대화와 BTL 지원 등 58억원 정도가 투입될 예정이지만 권역책임의료기관과 국립대병원에는 AI 진료시스템 구축비 142억원이 새로 편성됐다.
결국 전반적인 인력 확충이나 지역의 작은 단위를 강화하는 대신 우선순위가 충분히 높다고 보기 어려운 대형병원 AI인프라 강화에 증액 예산이 집중된 것이다.
이런 구조는 지역의료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 현장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인력이다. 파견 의료인력 인건비 예산은 75억원 수준에 머물렀고, 이는 AI시스템 구축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142억원이 인건비로 쓰였다면 파견인력 규모를 200명 이상으로 확대할 수 있었다.
지역의료 위기는 AI가 아니라 사람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임을 생각할 때, 정부 전체의 정책 기조가 공공의료 부문의 정책 우선순위마저 왜곡시킨 셈이다.
또한 ‘취약지 등 전문의료인력 양성 및 지원’ 사업은 42억원에서 150억원으로 252% 증가했지만 실제론 다른 예산 이관분이 포함돼 있고, 제도적 기반이 불안정해 집행 가능성이 낮다.
시니어 의사제도나 공중보건장학제도 같은 새로운 시도들이 지속성을 가지려면, 단년도 예산 확대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설계된 인력정책을 예산 계획이 따라가는 형태여야 한다.
건강보험 부문 법정기준 미달과 안전망 후퇴
건강보험 국고지원은 전년도 10조 6211억원에서 10조 7820억원으로 1.5% 늘었지만, 여전히 보험료 수입 대비 14% 법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 스스로 요청한 수준도 12%에 그쳤고, 국민건강증진기금 역시 법정 지원 기준(6%) 중 2.2%만 반영됐다. 결국, 법정 기준이 형식적 선언으로만 남아 있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또한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 예산은 146억원에서 105억원으로 28.5% 감소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의료비 부담이 여전히 국민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담배부담금 수입 감소’를 이유로 지원을 줄였다.
‘차상위계층 지원’ 예산도 겉보기에는 291억원 증가했지만 이 중 313억원은 국고미지급금 정산액으로 실제로는 감액 구조다. 본인부담차액 지원이 91억원 줄었고, 희귀·난치성 질환자 지원 확대도 19억원에 그쳐, 의료비 안전망으로 기능을 다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보건산업 부문에서 산업 성장 논리
내년 보건산업 예산은 1조 4920억 원으로 전년 대비 32.8% 증가했다.
가장 크게 늘어난 항목은 바이오헬스산업 육성(678억→2414억 원), 한국형 ARPA-H 프로젝트(631억→1108억 원), 글로벌 의사과학자 양성(768억→1013억 원),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339억→521억 원) 등이다. 대부분 대형병원과 민간기업을 중심으로 한 연구개발 투자다.
정부는 ‘공공R&D’라고 설명하지만,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더라도 민간이 져야 할 연구 책임을국가가 대신 부담하는 구조다.
연구개발을 통해 지역의료나 필수의료를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지역, 주민의 삶을 상상하지 못하는 연구자들에게 큰 연구비가 주어진다고 문제를 풀어낼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특히 ARPA-H 모델은 미국식 임무지향형 연구개발 체계를 모방했지만 한국의 연구생태계에서 그것이 지역의료 강화나 건강불평등 완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할 만한 근거는 부재한다.
결국 이 예산의 확대는 대형병원 중심의 연구집약적 구조를 더욱 강화하고, 보건의료의 불균형을 심화할 위험을 안고 있다.
보건의료 재정, 비정치적 구조와 국회 통제 부재
세 가지 부문 각각의 문제에 더해 다른 문제도 있다. 보건의료 재정은 적지 않은데, 문제가 되는 지점은 실제 이를 작동하게 하는 건강보험 재정이 정부의 예산체계 안에 포함돼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보건복지부가 매년 건강보험공단에 지원하는 국고지원금은 일종의 ‘묶음 지원금’에 불과하고 세부지출 방향, 항목은 국회가 조정하거나 심사할 구조가 아니다.
실질적인 지출은 이른바 건정심에서 결정된다. 건정심은 정부, 공급자, 가입자 대표 등이 함께 참여하는 합의 기구로 보험료율과 급여항목, 수가, 본인부담률 등 건강보험 재정의 거의 모든 항목을 심의·의결한다.
다시 말해 100조 원이 넘는 건강보험 재정이 정치의 밖 이해당사자 간 협의만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개혁 논의가 있을 때마다 세대 간 이해가 정치적으로 조정되지만 건강보험은 훨씬 큰 규모의 재정을 다루면서도, 정치의 영역 바깥에 있다.
그 결과 건강보험 재정은 사회적 합의나 공론 과정에서 면제된 채, 의료공급자의 이해관계에 직접 노출돼 있다. 이제는 이 문제를 다시 정치의 장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정치적 통제와 공적 숙의 영역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보건의료 재정이 행정의 영역을 넘어, 국민의 대표를 통해 책임 있게 운영될 수 있을 것이다.
안전망 예산 축소에 보건산업 R&D 30% 증가
전체적으로 볼 때 2026년도 보건의료 예산안은 정부가 강조하는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말과 달리, 산업화와 기술 중심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편성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는 제한적이며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화할 대책도 미흡하다. 상병수당, 재난적 의료비 등 사회적 안전망 예산은 오히려 축소됐고, 보건산업 R&D는 30% 이상 증가했다.
이는 단순히 분야 간 균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의료를 국민의 권리로 볼 것인가, 산업의 자원으로 볼것인가’라는 철학적 방향의 문제이기도 하다. ‘성장’의 언어가 ‘공공성’의 언어를 압도하는 한, 국민이 체감하는 의료 접근성은 개선될 수 없다.
이번 예산안은 복지국가의 언어를 쓰지만 산업국가의 논리로 짜여졌다. 공공의료와 건강보험 재정은 제자리이거나 후퇴한 반면 바이오헬스와 디지털헬스 R&D는 급팽창했다.
정부가 표방한 ‘공공의료 강화’가 실제로는 기술·산업 중심의 성장정책의 포장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보건의료 재정이 ‘복지’와 ‘성장’을 균형 있게 견인하는 마중물이 아니라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한 투자로 간주되는 한, 국민건강의 형평성은 개선되기 어렵다.
예산은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인 셈이다.
따라서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 예산 증액이 아니라 재정의 사회적 방향성을 되돌리는 일, 그리고 공공의료·건강보험·보건산업 관계를 다시 정치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보건의료 예산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국가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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