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치과산업 선봉 '대한민국 덴티스트'
최규옥·정성민·박광범·허영구 등…개원치과의사→기업가 변신 '맹활약'
2023.11.15 06:05 댓글쓰기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에 따르면 전 세계 치과용 임플란트 시장은 2018년 95억630만 달러에서 연평균 6.5%씩 성장해 2031년 189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우리나라 시장 규모도 2018년 4억700만 달러에서 연평균 7.8% 성장해 2023년 5억925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치과용 임플란트 시장은 인구 고령화로 인한 질환 발병률 증가, 치과 치료 비용 상승, 미용 시술에 대한 수요 증가 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임플란트 시장은 치과산업 성장과 궤를 같이하면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데일리메디는 국내에 임플란트가 도입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최고 활황기를 누렸던 2000년대 중반, 그리고 글로벌 시장으로 발을 내딛은 최근 상황까지 의료기기 산업 불모지인 대한민국에서 국산화 기치를 내걸고 치과산업을 이끌어온 주역을 조명했다. [편집자주]


임플란트(implant)는 im(in, 안에다) + plant(심어 넣다) 합성어로 안쪽에 심어 넣는다는 뜻을 지녔다. 


치과에서 쓰일 때는 ‘잇몸뼈에다 심어 넣다’라는 의미로 상실된 치아를 대체하기 위해 티타늄으로 만들어진 보철물을 말한다.


임플란트 가장 큰 장점은 수시로 탈부착을 해야만 하는 틀니에 비해 보철물을 씌우면서 마치 내 치아처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틀니와 달리 자신의 구강구조에 맞춤형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기에 부작용은 줄어들고 더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우수성을 지닌 임플란트는 오늘날 치과를 대표하는 시술이 됐다.


우리나라에 임플란트가 도입된 것은 1970~80년대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치과계에서도 임플란트는 이른바 ‘얼리어답터(Early Adoptor)’라 불리는 일부 치과의사만 가능한 생소한 시술이었다.


하지만 임플란트는 틀니, 브릿지와 같은 기존 치료가 지닌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시술로 주목받았고 오늘날 치과의사라면 누구나 해야하는 술식으로 자리잡았다.


임플란트가 대중화를 맞은 건 2000년대 들어서면서다. 외국산 제품이 시장을 잠식하던 당시 토종기업을 중심으로 국산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학문과 의료 기술이 발전하면서 본격적인 개화기를 맞았다.


국내에서 임플란트를 생산하는 기업은 10여 곳에 달한다. 오스템임플란트, 덴티움, 메가젠임플란트, 네오바이오텍, 디오, 덴티스, 신흥 등이 대표적이다.


그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은 창업주들의 출신이다. 이들 중에는 전·현직 치과의사가 상당하다. 이들은 대부분 환자를 치료하며 겪어온 불편함을 개선하고자 사업에 뛰어들었고 국산화 기치를 내걸고 국내 치과산업을 일궜다.



前 치과의사 최규옥 회장 설립 ‘오스템임플란트’


국내 임플란트 시장 1위 오스템임플란트는 전진 치과의사인 최규옥 회장이 설립했다.


1960년 5월생인 최 회장은 1991년 서울대학교 치의학과 학사, 1996년 단국대학교 치의학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2010년 고려대학교 의학박사로 졸업했다.


최 회장은 대학을 떠난 이후 서울 여의도에서 개인 치과병원을 운영했다. 그러다 사업에 뜻을 품고 1997년 의료용 소프트웨어 업체 ‘디앤디시스템’을 설립했다.


디앤디시스템은 병의원 대상 소프트웨어 사업을 주력으로 하다 2000년 ‘수민종합치재’를 인수하며 임플란트 사업을 시작했다.


최 회장은 이후 사명을 지금의 오스템임플란트로 바꾸고 치과의사 교육 사업에 매진했다.그는 2001년 치과의사 임상 교육 전문 ‘AIC 교육센터’를 설립했다. 그는 해마다 수십억원씩 투자해 교육센터를 운영했고 많은 수료생을 배출하며 충성 고객을 만들었다. 


최규옥 회장의 치과의사 교육은 해외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일본, 미국, 독일, 러시아, 호주 등 해외법인을 세우는 곳마다 교육센터를 열어 현지 치과의사에게 기술을 가르쳤다.


이를 기반으로 오스템임플란트는 전 세계 32개국 36개 현지 법인과 90여개국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국내 임플란트 시장 1위, 글로벌 시장 4위를 석권하게 됐다.


오스템임플란트 성과는 실적에서도 나타난다. 2013년 2165억원이던 오스템임플란트 매출은 2016년 3446억원을 기록한 뒤 2022년 1조535억원을 기록했다. 연평균 성장률이 17.1%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89억원에서 2346억원으로 연평균 28.7% 늘었다.


정성민 서울 웰치과 원장 ‘덴티움’


업계 2위인 덴티움도 치과의사가 설립한 회사다. 정성민 원장은 현재 서울 강남구 소재 웰치과에서 개원의로 활동 중이다.


1960년 9월생인 그는 경희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다. 최규옥 회장과는 동갑내기다. 


정 원장은 2000년 치과용 의료기기 업체 ‘비오스텍’을 설립하며 치과산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2002년 상호를 덴티움으로 변경하고 회사를 급속하게 키워나갔다.


덴티움은 현재 국내 임플란트 시장점유율 2위, 글로벌 시장 6위를 기록 중이다. 미국, 중국, 아랍에미리트, 독일, 싱가포르,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에 18개 해외 현지법인을 보유하고 7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정 원장은 지난 2013년까지만 해도 덴티움 각자대표로 활동하며 경영을 진두지휘해왔다. 그러나 2015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직책을 내려놓은 정 원장은 웰치과와 개인회사 제노스를 운영하는데 주력했다. 제노스는 정 원장이 2004년 설립한 의료기기 업체로 카테터, 필러, 인공장기 등을 제조하고 있다.


그동안 정 원장은 ‘은둔의 오너’라 불릴 만큼 대외 활동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덴티움 포럼이나 모교 초청 특강에서 보이는 게 전부였으며 활동할 때도 덴티움 대표가 아닌 웰치과 원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했다.


그러던 정 원장은 금년 3월 덴티움 사내이사로 복귀하며 7년 만에 일선에 합류했다. 사실상 오너 경영 체제로 본격 전환했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오스템임플란트가 횡령 사건, 매각 이슈 등으로 혼란을 겪자 견제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실제 덴티움은 오스템임플란트와 오랜 경쟁 관계다. 오스템임플란트는 지난 2017년 덴티움이 코스피 상장 당시 분식회계 의혹을 공식적으로 제기하기도 했다.


덴티움은 지난 8월에는 국민배우 송강호를 브랜드 전속 모델로 내세우고 스타 마케팅에 돌입했다. 덴티움이 연예인을 브랜드 모델로 기용한 것은 2000년 창업 이후 처음이다.


박광범 대구 미르치과원장 설립 ‘메가젠임플란트’


메가젠임플란트도 현직 치과의사가 설립한 기업이다.


메가젠임플란트 박광범 대표는 현재 대구 미르치과원장을 맡고 있다. 1961년 1월생인 박 대표는 경북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다.


박 대표는 전국 18곳에 달하는 지점을 보유한 ‘미르치과네트워크’를 설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외산 임플란트가 한국인에게 잘 맞지 않다는 생각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에게 잘맞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창업 계획을 세웠고 가까운 지인부터 투자자로 만들었다.


실제 메가젠임플란트는 치과의사가 모여 만든 회사로 유명하다. 2002년 설립 당시 투자자 70명 가운데 68명이 치과의사였다. 지금까지도 절반 정도가 투자자로 남아있는 것으로알려졌다.


메가젠임플란트 2대주주인 류경호 씨도 광주 미르치과병원에 근무 중인 치과의사다. 


그는 박 대표와 메가젠임플란트를 설립한 공동창업자로 두 사람은 2000년대 초반 미국 UCLA 연수에서 만나 의기투합해 2002년 메가젠임플란트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공동대표 체제를 이어가다 현재는 박 대표 단독대표 체제를 이어오고있다.


박광범 대표 배우자인 양경란 씨 역시 박 대표와 함께 대구미르치과를 운영하고 있는 현직 치과의사다. 양 씨 역시 메가젠임플란트에서 임상연구를 총괄하다 올해 초 사임했다.


메가젠임플란트는 국내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유럽과 미국에 수출 1위를 기록하며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허영구 닥터허치과 원장 ‘네오바이오텍’


네오바이오텍 창업주인 허영구 회장도 현직 치과의사다. 그는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닥터허치과에서 근무 중이다.


1956년 6월생인 허영구 회장은 단국대학교 치과대학을졸업했다.


허 회장은 대학 졸업후 경상남도 의령에서 페이닥터로 근무하다 1988년 개업을 했다. 그는 1990년 우연히 경남 마산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임플란트를 처음 접했다.


임플란트를 접한 허 회장은 개원의를 그만두고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그는 미국 UCLA에 임플란트 단기 1년 교육과정을 듣다가 정식으로 보스턴대학 보철과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한국으로 돌아온 허 회장은 2006년 ‘오스케어’라는 임플란트 회사를 설립했다. 그의 나이 49살 때였다.


늦깍이로 시작했지만 투지만큼은 남달랐다. 허 회장은 사업을 위해 설비 시설을 갖춘 ‘네오바이오텍’을 인수했고 2017년 9월 임플란트 국내 판매사업 부문을 전담하는 신설법인 네오임플란트를 세우고 인적분할했다.


허 회장은 업계에서 이른바 ‘발명왕’으로 통한다. 그는 임플란트 시술에 필요한 키트를 개발해 산업 발전에 기여해온 인물로 유명하다.


네오바이오텍은 ‘고객중심’ 임플란트 기업을 지향하고 있다. 이를 위해 꾸준히 유명 연예인을 전손모델로 발탁해 TV 광고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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