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기자/기획 2]코로나19 사태 이후 의료기관들은 본격적으로 후폭풍을 맞기 시작했다. 몇 개월간 지속된 적자는 당장 다음달 병원·의원 운영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임대료는 물론 직원들의 월급조차 지불하기 빠듯하다. 힘든 상황이지만 전례 없는 감염병 사태를 극복해냈다는 자부심도 잠시, 의료기관에 닥친 현실은 고단하다. 일말의 기대는 정부의 적극적인 보상이었다. 하지만 사태가 진정된 지금 정부의 스탠스는 예상과 많이 다르다. ‘덕분에’ 챌린지를 주도하며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보상을 바란 헌신은 아니었지만 정부의 무 자르는 듯한 쌀쌀한 행보에 의료기관 및 의료진들의 기운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편집자주]
“코로나19 감염증 환자가 다녀간 의료기관들은 병원 폐쇄 뿐 아니라 낙인효과로 인한 환자감소로 경영 악화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정부 중앙사고수습본부가 내놓은 대책에는 의료기관 생존을 보장하는 속 시원한 지원책은 없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각종 보상 대책으로 항공사 수천억원 지원, 해운업 임대료 면제 세금 혜택, 화훼농장 지원, 숙박업에 재산세 감면 등 많은 발표가 있었지만 의료계에 대한 확실한 지원책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반 의료기관에 감염병 관리에 필요한 시설과 비용을 지원한 적이 없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최근 데일리메디 기고를 통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의료기관의 심정을 생생히 전달했다.
“코로나19 사태, 국내 의료진들 노고 인정”
보건당국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 이후 3729명의 의료인력이 병원, 선별진료소, 생활치료센터, 임시생활시설 등에서 환자 치료와 검체 채취, 자가격리 상담에 투입됐다.
정부가 파견한 인력 외에 수많은 의사들이 자원봉사 형태로 의료일선에 나섰다. 중환자의학회는 대구 지역 감염병 전담병원에 의료지원단을 수차례에 걸쳐 파견했다.
개원가에서도 진료를 마친 후 의사들은 지역 선별진료소로 향했다. 용산구의사회는 이태원 클럽발 확진자 발생 이후 매일 저녁 보건소로 자원봉사를 나간다.
대형병원도 병원 전(全)직원이 감염병 사태에 맞춰 대응했다. 대구 지역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운영된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은 진료과를 막론하고 모든 의료진이 감염내과 주도 하에 환자들을 보기 시작했다.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 관계자는 “평소 진료패턴과 180도 바뀐 상황에서 어려움도 있지만 모든 의료진이 분투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에서도 의료진 노고에 감사함을 표하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덕분에 챌린지’에 참여한 문재인 대통령은 “의료진 덕분에, 소중한 생명이 지켜지고 있다. 의료진 덕분에,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있다. 의료진 덕분에, 방역 모범국가라는 세계의 평가가 가능했다. 의료진 덕분에, 서서히 일상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진 헌신을 되돌아보는 시간도 잠시,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이후 의료기관에 닥친 현실은 혹독했다.
대한의사협회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원가는 금년 3월 전년 대비 약 30~40%의 매출이 감소했다.
대한병원협회 조사 결과에서도 금년 4월 외래환자는 전년 대비 17%, 입원환자는 13% 감소했다. 특히 확진자를 치료한 감염병 전담병원의 경우 진료수입이 96%까지 줄어든 사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병 사태에서 의료진은 주저없이 나섰다. 특별한 보상을 바란 건 아니었다. 다만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고려가 이뤄질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정부 방침은 칼 같았다. 올해 수가협상에서 정부는 1.99%의 수가 인상률을 제시했다. “의료계 어려움을 최대한 고려했다”는 장담에 비하면 기대에 못미치는 수치다.
수가협상에 앞서 의료계는 코로나 사태 이후 환자 감소로 인한 운영난을 호소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회 최병호 위원장 또한 “작년 수준의 환산지수를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게 가입자 단체의 의견이었고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헌신하며 좋은 성과를 낸 것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수가협상은 ‘결렬’로 마무리됐다.
박홍준 대한의사협회 수가협상단장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려고 했지만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병협과 치협 또한 ‘가입자와의 간극을 좁힐 수 없었다’는 의견을 공통적으로 내놓았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코로나19 방역에 헌신적으로 임한 의료진들이 환자감소로 인한 경영난으로 힘든 상황에서 추가소요재정이 감소됐던 것도 의료계를 허탈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보상금 현실적일지 의문이고 정책적 배려도 미미···대구 감염병 전문병원 손실액만 수천억원
의료기관에 대한 손실보상금도 현실적인 수준에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국회는 의료기관 융자사업·손실보상금 예산을 각각 4000억·3500억원으로 결정했다.
복지위에선 융자사업 5000억원, 손실보상 4060억원 등으로 증액했으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특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정부 원안대로 확정됐다.
그러나 의료계에선 예산 규모가 ‘너무나 작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단적인 예가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운영된 의료기관들의 손실 규모다.
최근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운영된 대구 지역 10개 병원이 대구시에 전달한 ‘코로나19 손실액 내역’에 따르면 병원들이 자체적으로 추산한 손실액은 1653억원이다.
병원별로 가장 많은 손실액은 225억원이다. 일반 진료를 보지 않고 감염병 전담병원을 운영하기 위한 비용으로만 한 달에 약 100억원이 소모된 것이다.
전담병원 전환 후 환자 치료를 위한 의료진 위험수당으로는 220억원 가량이 지급됐다. 의료진들이 사용하기 위한 보호구 등 장비와 비품, 진료재료 구입에는 55억원이 들었다.
확진자와 의심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필수적인 시설을 구비하는 데는 33억원이 들었다. 재개원을 위한 복구비용은 이보다 더 많은 103억원이 든 것으로 추산했다.
한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최근 발표한 감염병 전담병원 손실보상금은 66개 병원에 총 1308억원이다. 병원당 약 1억 9천만원 정도의 지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현실적인 보상의 부재 이후를 우려한다.
대구시 손실보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실질적인 보상이 이뤄져야만 감염병 확산 같은 비상사태에서 의료기관이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보상을 위해선 직접손실에 대한 보상 외에 간접손실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이야기한다. 실제 의료현장에서 소모된 비용을 폭넓게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현재 코로나19로 발생한 직접적인 피해 외 간접적인 피해를 입은 의료기관에 손실보상을 강화하는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이종배 미래통합당 의원은 간접손실에 대한 보상을 정하는 감염병 예방·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의료기관장과 사업자가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일시적 사업중단이나 자진폐업하는 경우 사업주와 근로자가 입은 경제적 손실 일부를 지원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법안을 발의하며 이 의원은 “감염병 직접 피해를 입은 의료기관 손실은 손실보상심의위원회를 거쳐 지원되고 있지만 간접 피해를 입은 의료기관이나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제도가 없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의료기관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이 이뤄질 수 있을지 법안의 향방에 의료계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