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 합격 기쁨도 잠시···웨이팅 간호사 서러움
3명중 1명 평균 1년정도 대기, 나비효과 부작용으로 중소병원 고충 심화
2016.04.08 19:35 댓글쓰기

[기획 3]“합격통보 받은 지가 벌써 햇수로 2년째네요. 정식 발령까지는 앞으로 몇 달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요? 아직 제 앞에도 많은 인원이 남아있거든요.”

대학교 4학년 재학시절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대형병원 한 곳에 합격한 김모씨. 그는 “합격의 기쁨은 잠시”였다고 했다. 정확한 채용날짜도 모른 채 병원의 부름을 기다리며 돈과 시간과의 싸움을 견뎌야 하는 시간, 바로 ‘웨이팅간호사’의 삶이 시작된 거다.

“주변 친구들은 해외여행이나 취미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김 씨는 그럴 수도 없다”고 했다.

김 씨는 타 지역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는데다 더 이상 부모님께 손 벌릴 수도 없어 중소병원 파트타임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파트타임에 합격한 첫 병원은 결국 갈 수 없었다.

그는 “지원한 중소병원에서는 면접 후 당장 일하기를 원하는 상황이었고 합격한 병원에서는 웨이팅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기개발 교육이 있다는 통보를 받았었다. 결국 처음 파트타임을 지원한 곳은 포기하고 다시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고 전했다.

최근 ‘간호사 3명 중 한명’꼴로 평균 1년가량 대기발령을 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대한간호협회가 90개 교육기관의 지난 2009년 졸업생 801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간호(학)과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93%인데 평균 1년가량 대기 발령으로 있는 예비 간호사들이 33%에 달했다. 3명 중 1명은 취업 대기상태라는 것이다.

2년 전 서울 소재 K대학병원에 입사한 간호사 강모씨는 병원취업 준비 이후 부산 소재 대학병원에 정식발령까지 1년, 지금 다니고 있는 병원에 들어가기까지 약 6개월을 기다렸다.

강 씨는 “큰 병원은 들어가는 것도 어렵고, 옮기는 것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처음 들어간 병원 내에서 마찰이 있었고 결국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간호사 바닥이 좁은데 이상한 구설수에 오르는 건 아닌지 고민도 많았다. 처음 병원 입사 때보다 더 심리적으로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간호사들의 대기발령(waiting)은 대형병원들이 새내기 간호국시 합격자들을 한꺼번에 채용한 뒤 ‘대기’를 걸어 놓고 인력상황에 맞춰 필요한 인력만 취업시키는 행태를 말한다.

대형병원들의 간호사 수요 급증 및 예비간호사들의 대형병원 선호가 맞물리며 빚어진 현상으로 점점 고착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빅5병원은 간호인력을 대거 빨아들이는 ‘블랙홀’과도 같다. 매년 ‘세자릿 수’에 달하는 인원을 신규 간호사로 채용하고 있다.

병원면접 때 단골로 등장하는 질문도 ‘웨이팅 동안 뭐할 계획이냐’, ‘어느 병원에 지원했고 발표는 언제 나느냐. 다 붙으면 어디로 갈 것이냐’, ‘웨이팅 뜨고 다른 병원으로 발령 나면 어떻게 할 거냐’  등이다. 

병원들은 ‘갑작스러운 인력공백에 대비하기 위한 방책’이라는 입장이다. 즉, 한 해 동안 필요한 인력을 예상해 뽑아놓고 자리가 날 때마다 웨이팅간호사를 순번대로 정식 발령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형병원 간호사 대기발령 관행은 ‘나비효과’를 일으켜 중소병원의 고충으로 이어진다.

웨이팅간호사들에게 중소병원은 버스가 올 때까지 잠시 머무는 정거장일 뿐, 대형병원는 부름에 근무하던 간호사들이 예고도 없이 사직서를 내기 일쑤다.

중소병원 입장에서는 간호사들이 경험 쌓고 훈련받아 제대로 일을 하려고 하면 이직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중소병원간호부성장회 김영애 회장(서울성심병원 간호부장)은 “중소병원은 늘 간호인력 부족에 시달린다. 대형병원 웨이팅 중인 간호사들이 중소병원에 들어왔다 자리가 나면 도망가듯 더 좋은 곳으로 다 가버린다”고 했다.  

김 회장은 “중소병원 입장에서는 급하게 간호인력을 뽑아야 하는 상황이 되고, 갑자기 생긴 공백만큼 원내 간호사들이 떠안아야 하는 업무부담과 근무환경은 열악해진다”고 비판했다.

대한간호협회 김옥수 회장은 “간호수 수가 부족한 게 아니라 간호사 쏠림 현상이 문제”라며 “지방 중소병원들의 간호사 처우가 개선되지 않으면, 아무리 교육을 잘 시켜도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소병원들의 간호사 처우 및 근무환경 개선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병원경영연구원 이용균 연구실장은 “지역에 소재한 중소병원은 경영상의 적자로 쓰러져 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간호사 인건비를 올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나영명 정책실장은 “병원 간 임금 격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 없이는 인력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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