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국가시험과목 중 본초학과 한방생리학을 제외하고 한방재활의학과를 추가하겠다는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이 입법예고 중에 있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한의계 내 찬반 논의가 뜨겁다.
찬성 측은 개정안이 한의학교육 평가체계 개선방안의 일환이며 이를 통해 한의학교육이 발전 동력을 얻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대 측은 공신력 있는 국가시험에서 본초학 과목이 제외되면 한의학의 정체성이 흐려지고 입지가 좁아질 것이 우려된다며 맞서고 있다.
오는 9월21일까지 입법예고가 진행될 예정인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에는 한의사 국가시험과목 중 본초학 및 한방생리학을 제외하고 일선 현장에서 서비스 수요가 큰 한방재활의학과를 추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대신 본초학 및 한방생리학 등은 ‘기초한의학종합시험(이하 기초한의학시험)’이라는 새로운 시험 유형 안에 포함된다. 이 기초한의학시험은 한의대생들이 통상 예과 2학년부터 본과 2학년 사이에 받는 기초한의학 교육이 끝난 후 치러진다.
즉 국시 전에 학생들의 학습 성과를 점검하기 위해 단계별 평가를 거치는 셈이다.
이는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이하 한평원) 및 대한한의사협회 등이 소속된 한의학교육협의체가 올 초부터 논의해왔던 사안으로 한의학교육협의체는 이를 통해 한의학교육의 진일보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한의계 내 의견수렴과정을 거치면서 충돌이 발생했다. 대한본초학회 등이 이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국시에서 본초학이 빠지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의료계 내에서 한의사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열린 ‘한의사 국가시험의 발전 방안에 대한 공개 토론회’에서 대한본초학회 측은 “한의학의 변화와 개혁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법에 의해 국시에 본초학이 명시되지 않는다면 권익을 침탈당할 수 있다”고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또 “본초학 과목이 포함된다는 기초한의학시험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미약하나마 국시에 본초학이라는 과목이 있기 때문에 한의학이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모 한의원 원장도 “약대에서는 본초학을 외려 늘리려는 추세인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본초학 과목을 뺀다는 것은 안방을 쉽게 내 주는 이치”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덧붙여 “한의사는 대부분 자가 조제를 하게 되는데 국시에서 본초학 시험을 보지 않았다고 하면 환자가 그런 한의사를 신뢰하겠느냐”라며 “국시의 힘을 고려할 때 이런 개정안을 너무 성급히 진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개정안을 지지하는 측은 본초학이 포함될 기초한의학시험 또한 충분히 권위 있는 평가 절차로 만들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평원 측은 “우리 스스로 기초한의학시험을 공신력 있는 절차로 이끌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며 “국가시험이 개선되면 이를 의무화된 평가인증과 함께 한의학 교육발전의 양대 축으로 삼아 활용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표준임상진료지침 등의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초과정 때부터 표준화된 교육의 수행이 필요하다”며 “기초한의학시험 등의 도입은 한의학교육 재정비의 일환으로 기초와 임상 역량을 모두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한의사협회 측도 “기초한의학시험의 공신력은 충분한 절차와 방법을 거친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부분”이라며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태도를 보였다.
본초과목 변경에 따른 조제권 침해와 관련해서는 “일견 그런 논리가 있을 수는 있으나 이는 한의계 역량을 우리 스스로 믿지 못하는 것 아닌가”라며 “관련 문제를 개발해 문항에 넣으면 되는 부분이다. 과목명이 빠졌다고 해서 조제권에 피해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날 참석한 전국 한의과대학/한의학전문대학원 학생회 연합은 “학생들은 교육권 개선에 대한 열망이 크다. 국시개편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이런 논의가 활성화돼 본초·방제 문제도 해결책을 찾았으면 한다”고 밝혔다.